100쇄 찍은 은희경, "'새의 선물'은 내게 빛이자 그림자"

김미리 기자 2022. 5. 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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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쇄 기념 개정판 출간한 은희경
"첫 작품이 늘 대표작으로 꼽혀..
난 더 잘 쓸 수 없나 좌절도 했다
27년 전과 현재의 내가 공동 작업"
'새의 선물' 100쇄 기념 개정판을 들고 있는 소설가 은희경. /연합뉴스

1995년 여름 서른여섯 살 주부 은희경은 해발 1000m 산꼭대기 절로 들어갔다. 그해 초 신춘문예에 당선했지만 원고 청탁은 하나도 없었다. 산짐승 울어대는 절간 골방에 몸을 욱여넣었다. 절박함이 문장을 토해냈다.

그렇게 탄생한 첫 장편 ‘새의 선물’. 제1회 문학동소설상을 타며 은희경 이름 석 자를 세상에 알린 이 책이 최근 100쇄를 찍었다. 인기작도 1만 부 넘기 쉽지 않은 요즘, 100쇄는 드문 일.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박경리 ‘토지’, 김훈의 ‘칼의 노래’ 등이 100쇄를 넘긴 대표작이다.

“이 책은 내게 빛이자 그늘이었다. 멀고도 환한 빛이자 길고도 희미한 그림자구나란 생각을 오래해 왔다. 이 책 덕분에 작가 생활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었지만, 내 발밑에 조그만 동그라미가 그어진 느낌이었다.”

30일 열린 100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소설가 은희경(63)이 담담하게 말했다. 손에는 초록빛 새 옷을 입은 개정판이 들려 있었다. “27년 동안 15권을 썼다. 대표작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질문받으면 나는 최근작이라고 했는데 여전히 사람들은 이 책을 꼽는다. 첫 번째 책보다 잘 쓸 수 없는 작가인가 좌절했다.” 솔직했다.

‘새의 선물’은 삼십대 중반 주인공이 1960년대 열두 살 자신을 회상하는 내용의 소설. 27년간 사랑받으며 성장소설의 교본으로 자리매김했다. 작가는 ‘100′이라는 숫자와 함께 ‘27′에도 등가(等價)의 의미 부여를 했다. “27년 동안 내가 소설을 통해 던진 질문에 독자들이 꾸준히 공감해줬다는 얘기다. 독자가 큰 배후(背後) 세력이 된 것이다.”

27년 전으로 태엽을 감았다. “당시 문학동네 대표님이 10만부 팔리면 차를 사주시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다 웃었다. 그런데 진짜 10만부를 넘었다. 차도 사주셨다(웃음).” 은희경은 “돌이켜보면 일생일대 딱 한 번 오는 문운(文運)을 가져다준 선물”이라고 했다.

그 사이 세상도, 독자도 변했다. 작가는 개정판을 내기 위해 처음으로 책을 다시 읽었다. “나는 끊임없이 교정하는 스타일의 작가. 고치고 싶은 게 계속 보여 고통스러워서 한번 쓴 책은 다시 들여다보지 않는다”고 했다.

다시 들춰본 소감? “먼저 나쁜 점부터. 그땐 독자, 평론가, 주변 사람 의식하지 않았다. 나와 글과의 완전한 독대였다. 지금의 내가 보니 뻔뻔하다.” 새어나온 웃음을 밀어넣고 다시 말을 이었다. “고쳐야 할 게 보일 때마다 좋았다. 전반적인 뼈대 바꾼 건 없는데 용어·표현을 주로 바꿨다. 1990년대에는 이런 말을 함부로 타인에게 했구나 싶었다. 사회가 좋아져 내가 바꿀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예컨대 ‘앉은뱅이책상’을 ‘좌식 책상’으로 바꾸는 등 장애·여성 비하 표현을 다듬었다. 욕쟁이 할머니 욕 같은 건 그대로 뒀다. “작가가 시대를 재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대를 해석하는 관점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기준에서 고쳤다고 한다.

“27년 전의 작가인 나와 지금의 작가인 내가 공동 작업한 셈이다. 지금은 누구에게나 선물해도 좋은 책이 됐다 싶다.” 두 은희경이 보내는 ‘새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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