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인플루언서] 공감·위로·매운맛.. 펭수는 진화중

박성기 2022. 5. 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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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드롬 일으키며 단숨에 구독자 200만
한물갔다 평가받지만 콘텐츠 인기 여전
취준생 다독이고 꼰대들엔 시원한 한방
독보적인 캐릭터에 B급 감성 녹여 롱런

2019년 봄, 그가 유튜브를 통해 대중 앞에 처음 섰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어딘가 조금 무서워 보이는 표정 없는 사백안에 불량스러운 말투, 비호감에 가까운 모습에 친근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유튜브 콘텐츠가 하나둘씩 쌓여가면서 인기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그해 말, 그는 구독자 100만 유튜버에게만 주어지는 '골드 버튼'을 획득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선정하는 '2019 올해의 인물' 1위에, 송가인과 BTS를 제치고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온라인에서는 그의 '움짤'과 '어록'이 돌아다녔고, 그의 '굿즈'는 최단기간 최다판매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를 섭외하기 위해 각 방송사와 기업은 물론, 공공기관까지 경쟁적으로 나섰다. 그의 고향인 남극이 인기 여행지로 급부상해, 남극과 가장 가까운 아르헨티나 최남단 우수아이아(Ushuaia)공항 항공권 검색량이 3배가 증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데뷔 이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타'로 꾸준히 언급되고 있는 그. 이 대스타의 정체는 바로 '펭수'다. 펭수는 한국에서 유튜버로 성공하는 것을 꿈꾸며 남극에서 헤엄쳐 온 10살 펭귄이다. 키 210cm, 몸무게 90kg의 거대한 몸집을 가진 이 어린이 펭귄의 현재 직업은 EBS 소속 연습생이다. EBS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와 동명의 EBS TV 프로그램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면서, 연습생에서 '우주대스타'로 거듭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도전기를 선보여 큰 인기를 끌고 있다.

K-Culture 플랫폼 보이스오브유가 제공하는 인플루언서 랭킹(IMR) 자료에 따르면, 2019년 3월 개설된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는 그해 11월 구독자 100만 명을 달성하고 그로부터 2개월 뒤 200만 명의 고지마저 넘어섰다. 현재 구독자 수는 비공개로 하고 있으나 200만 명 안팎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420여 개 동영상의 누적 조회 수는 4억 2400만 회를 기록 중이다. 채널 내 최고 인기 영상인 'EBS 오디션 합격 영상 최초 공개'와 '펭수 정체 공개합니다'는 무려 600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올리고 있다.

키워드 검색량 분석 플랫폼 블랙키위의 권기웅·나영균 대표는 "키워드 '펭수'는 최근 6개월간 월평균 3만 5천 건의 검색량을 기록하고 있는 인기 키워드"라며 "연령대별 검색량을 분석해보면 3040 세대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10대부터 50대 이상까지 모든 연령대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는 것으로 나타난다"라고 전했다.

펭수는 어떤 매력으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펭수 앓이' 하도록 만들며 빠르게 대형 유튜버 대열에 합류했을까. 무엇보다 가장 큰 인기 비결은 펭수 자체가 조금은 생소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독보적인 캐릭터라는데 있다. 바르고 착한 모범생 같은 기존의 EBS 캐릭터들과 결을 달리하는 펭수는 사실상 '불량한 문제아'에 가깝다. 욕망과 감정을 모두 솔직하게 드러내고, 필요할 때는 꼼수도 쓴다. '펭성'(펭귄+성품) 논란이 생길 정도다. 권력과 위계에 굴하지 않고 할 말은 꼭 하고 마는 펭수는 EBS 전·현직 사장의 이름을 존칭도 생략한 채 불러 대고, 선배 캐릭터 뚝딱이가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하며 충고를 할 때면 따박따박 말대꾸를 한다. 하지만 펭수는 결코 선을 넘는 언행을 하지 않는다.

취업에 실패하여 신세 한탄하는 범이에게 "백수가 아니라 꿈을 찾아가는 중인 거지"라며 따뜻한 감성을 담아내고, '펭수의 얼어죽을 고민상담소'편에서 "다 잘할 순 없어요. 하나 잘 못 한다고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잘하는 게 분명 있을 겁니다. 그걸 더 잘하면 돼요"라고 진심을 전하는 말로 지친 현대인들에게 응원을 건네기도 한다. 이런 펭수에게서 속 시원한 대리만족을 느끼는 이들, 감동과 위로를 받는 이들 모두 어느덧 '펭며들며'(펭수에게 스며들며) 펭수에게 꼼짝없이 '입덕'하게 된다.

또 다른 인기 비결로 빅데이터 분석 전문가인 이영미 박사(현 보이스오브유 선임연구원)는 "펭수의 매력과 넘치는 끼가 극대화될 수 있도록 치밀하게 기획해낸 'B급 감성' 콘텐츠"를 꼽는다. 'EBS가 약 빨고 만들었냐'는 칭찬 아닌 칭찬을 듣고 있는 채널 '자이언트 펭TV'는 파격적이면서도 유치하고 엉뚱한 주제의 영상들로 가득해 사랑받는다"라고 평가한다.

이슬예나 PD를 선두로 한 임문식 송준섭 강샘이 이영현 등의 제작진은 'EBS는 교육적이고 진지한 순한 맛 콘텐츠만을 만든다'라는 고정관념을 깨트리고 '매운맛' 나는 '병맛'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펭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엑스레이 촬영을 감행하고 동물 권위자의 증언을 받아내며, 퇴임한 김명중 전 EBS 사장의 집을 찾아가 펭수의 트레이드마크인 헤드셋 수리를 요청하기도 한다. '연반인'(연예인+일반인)화 된 제작진과 EBS 직원들이 종종 영상에 출연해 보여주는 다소 어색한 연기 또한 B급 감성을 더욱 충만하게 해주는 요소다.

아직도 EBS 소품실 한구석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불안정한 신분의 연습생이지만, 지난 3년간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받고 자신의 꿈이던 BTS와도 무대를 함께하며 인간조차 해내기 어려운 수많은 성과를 일궈낸 10살 펭귄, 펭수다.

일각에서는 2019년 발 '펭수 신드롬'의 기세가 한풀 꺾인 듯하다며 그의 인기를 의심하기도 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20년 최선호 캐릭터 2위(13.6%)에 이름을 올렸던 펭수는 2021년에는 3위(6%)로 밀려났다고 발표했다. 상품군별 캐릭터 구매 비율 조사에서도 순위가 크게 하락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최근, 개그맨 이용진은 채널S '신과 함께 시즌3'에서 펭수의 근황을 묻는 말에 "힘들어한대요. 인기 좀 꺾여가지고"라고 평가했다.

어쩌면 '한물갔다'라는 평가가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밀물이 있으면 썰물의 시간도 있는 법이다. 다재다능하고 선한 영향력이 두물 세물로 다가와, 저 멀리서 쓰나미로 다시 밀려오는 중이다. 퇴임한 전직 EBS 김명중 사장을 광주까지 찾아가는 최근 영상이 163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가슴 따뜻한 울림을 주는 등, 펭수는 오늘도 여전히 우리 시대의 아이콘으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내일은 또 어떤 모습으로 '우주대스타'의 꿈을 이뤄갈지, 그의 행보에도 조급함보다 설렘이 더 크다. 제작진도, 펭클럽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박성기기자 watney.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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