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치의 운명

김원철 입력 2022. 5. 30. 18:06 수정 2022. 5. 30.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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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의 차별금지법(평등에 관한 법률) 제정 관련 공청회가 지난 25일 오전 국회 법사위 회의실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편집국에서] 김원철 | 디지털미디어부문장

세상이 달라지는 찰나의 순간이 있다. 음악의 조바꿈(전조)도 그런 순간 중 하나다. 평이하게 흐르던 멜로디가 불현듯 시(C)키(Key·조)에서 에프(F)키로 이동하면 음악은 완연히 색을 바꾼다. 하나의 음을 둘러싼 맥락이 바뀌고, 각 음의 위상도 달라진다. 다장조에선 으뜸음으로 ‘도’라는 이름을 갖던 음은, 달라진 바장조에선 딸림음이 되면서 ‘솔’이라는 새 이름을 갖는다. 이론적 얘기를 모른다 해도 대부분의 사람은 ‘뭔가가 달라졌다’는 걸 눈치챈다. 노래방 생존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도 충분하다.

지난 17일은 그 사건 6주기였다. 그 사건을 여느 살인사건과 다를 바 없다고 여겼던 이들은 이튿날부터 서울 강남역 일대에 불어닥친 거대한 추모 물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물결은 날이 갈수록 거세졌고, 세상을 이전과 이후로 가르는 분기점이 되었다.

2018년 1월29일 현직 검사 서지현이 <제이티비시>(JTBC) 스튜디오에 앉았을 때, 같은 해 3월5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비서 김지은이 같은 자리에 앉았을 때, 그리고 두달 뒤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에 여성 수만명이 모였을 때, 그것은 불쑥 튀어나온 불협화음이 아니라 조바꿈(전조)이었다. 다른 세계로의 이동이었다.

디지털부문에 있다 보면 세상의 작은 변화를 먼저 만날 기회가 잦다. 어떤 변화는 잔잔한 파도만 일으키다 사라지지만, 어떤 움직임은 조류가 되어 심해 밑바닥을 휘젓기도 한다. ‘조가 바뀌었나?’ 싶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원키로 되돌아오는 난해한 재즈곡을 들을 때처럼 미세한 변화들의 맥락을 헤아려 나가기가 벅찰 때도 있다. 그래도 대중가요 후렴구에서 ‘가창력 뽐내기용 반키 올림’류의 뻔한 조바꿈처럼 웬만해선 모를 수 없는 변화 정도는 눈치로라도 따라가야 한다. 노래방에서 마이크 잡으려면 이 정도 눈치는 필수이자 의무다.

지난 25일 국회에선 15년 만에 처음으로 평등법(차별금지법) 공청회가 열렸다. 2007년 노무현 정부 입법으로 차별금지법이 처음 발의된 뒤 소관 상임위원회가 주관한 ‘첫’ 공청회였다. “차별금지법이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진전하게 된 첫번째 자리”(홍성수 숙명여대 교수)였지만, 국민의힘은 참석하지 않았다. “시민사회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고 국민적 합의도 전혀 없는 법안”이라는 게 불참 이유였다. 공청회 자리엔 더불어민주당 법제사법위원들과 민주당 추천 진술인 3명만 자리했다. 같은 시각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보수개신교계 인사들은 국민의힘이 마련한 기자회견에서 “차별금지법이 동성애자와 이슬람 등을 특권층으로 격상시킨다”고 말했다. 심각한 음이탈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3~4일 전국 성인 1000명에게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의견을 물은 결과(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제정해야 한다’는 응답이 57%였다. ‘제정해선 안 된다’는 응답은 절반 수준인 29%였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0년 4월 전국 만 19살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응답자 88.5%가 차별 해소를 위해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런 높은 찬성률은 재즈곡에 등장하는 수준의 벼락같은 조바꿈이 아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2018년 9~10월 전국 만 19~69살 성인 8000명을 조사해 이듬해 2월 발표한 ‘2018 사회통합실태조사’를 보면, 동성애자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49%였다. 앞서 조사에서 그렇다고 답한 비중은 2013년 62.1%, 2014년 56.9%, 2015년 57.7%, 2016년 55.8%, 2017년 57.2%로 낮아져왔다. 차별금지법 제정 찬성이 반대보다 두배나 많은 현실은 ‘동성애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응답이 처음으로 절반 아래로 떨어진 2018년으로부터 무려 4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점진적으로 일어난 변화의 결과다.

음치는 혼자 끝까지 엉뚱한 키로 노래한다. 주변인들이 인상을 찡그려도 씩씩하다. 모두가 노래를 잘할 필요는 없지만 마이크를 잡으려면 어느 정도 노력은 필요하다. 음치를 고치는 방법 중 대표적인 게 ‘바구니 뒤집어쓰고 노래하기’다. 본인의 음이 얼마나 엉망진창인지 깨닫는 게 교정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노래 좀 잘하라’는 기대는 접은 지 오래다. 노래방 떼창을 방해하는 괴성만 내지르지 않는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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