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령 한동훈과 검찰공화국

한겨레 2022. 5. 3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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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6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위원 임명장 수여식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세종/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왜냐면] 이상식 | 전 부산지방경찰청장·전 더불어민주당 대구 수성을 지역위원장

경찰청 정보국장 재임 시절 인사검증 업무를 수행한 적이 있다. 고위 공직 임용 예정자들의 인사검증 자료를 검토하고 청와대로 보고하는 업무였다. 부하들이 작성해 오는 인사검증 자료를 받아 보면 재미나는 것도 많았다. 남들은 모르는 유력 인사의 알려지지 않은 개인사를 안다는 일종의 쾌감(?) 같은 것을 느낀 적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국정원 등 다른 사정기관에서도 청와대로 별도의 보고를 올렸는데, 이를 종합해서 판단하는 것은 민정수석실 몫이었다.

민정수석실이야 원래 막강했지만 경찰청이나 국정원도 검증자료의 유출이나 검증 대상자와의 유착 등 권한 남용이 문제된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사와 관련된 정보는 민감하고 중요해 당사자들이 목을 매기 때문이다. 여기에 툭하면 인사정보 수집을 빙자한 민간인 사찰 시비까지 불거져 나와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위협해온 것 또한 사실이다.

이렇듯 인사 업무가 워낙 예민하고 중대한 사안이므로 노무현 정부에서 인사추천과 인사검증 업무를 분리해 각각 인사수석과 민정수석이 맡도록 해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한 이래, 역대 정부에서 여야 막론하고 이 원칙은 지켜져왔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폐해가 크다며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폐지하더니 인사검증 업무를 법무부에서 수행하도록 할 모양이다. 법무부 장관 직속으로 인사정보관리단을 설치해 인사검증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겠다고 한다. 검사와 경찰관도 파견받는다고 한다. 관련 규정들이 개정 절차 중에 있으며 늦어도 6월부터는 시행된다고 한다. 청와대 개방, 민정수석실 폐지 같은 일련의 국정 드라이브 속에 슬며시 끼워 넣어 추진하고 있지만 사실은 국정의 근간과 관련된 중요하고 심각한 사안이다.

윤석열 정부의 의도대로 이뤄진다면 법무부, 더 정확하게 말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과거 해악이 컸다던 민정수석을 훨씬 능가하는 엄청난 권력을 가지게 된다. 최근 고위직 인사를 통해 검찰을 장악한데다 정부 고위 공직 인사검증 권한까지 쥐게 된다면 사실상 총리 이상의 힘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권한이 커지면 남용의 가능성도 커지게 마련이다.

그 폐해를 우려해 민정수석실을 없애겠다던 윤석열 정부가 정작 민정수석실보다 더 무서운, 토머스 홉스가 말한 괴물 리바이어던과 같은 슈퍼 부처 법무부를 탄생시킨 것이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검찰수사관 출신 청와대 인사기획관, 부장검사 출신 인사비서관도 한동훈 장관과 사실상 한통속이다. 한동훈을 몸통으로 한 검찰세력이 인사검증권과 인사추천권까지 모두 장악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흔히들 인사가 만사라고 하지 않는가? 중차대한 정부 인사가 검찰세력의 셀프 추천과 검증이 가능한,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되고 만 것이다. 한마디로 검찰공화국의 끝판왕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그야말로 소통령이 되는 것이다.

이런 한동훈과 그 검찰세력에게 반대의 목소리를 낼 국무위원, 수석비서관, 국회의원 그리고 정부조직이 있을 수 있겠는가? 민정수석을 폐지해 이전 정부와 차별화를 꾀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더 힘세고 문제 많은 소통령 한동훈과 검찰공화국을 통해 국정을 자기들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검수완박에 의해 수사권이 박탈될 지경에 이르자 이제 수사 대신 인사를 통해 검찰공화국의 수명 연장을 꾀한다고 한다면 논리의 비약일까? 검찰세력에 의한 국정농단이 우려된다면 지나친 걱정일까?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잣대와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가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또 그들만의 리그에 속한 편중된 인사로 급변하는 세상의 흐름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도 의문스럽다.

이제 한동훈에 의한 한동훈을 위한 윤석열의 검찰공화국은 바야흐로 닻을 올린 셈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했는데 앞으로가 걱정이다. 한동훈과 검찰세력의 선의를 믿어달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개인의 선의는 믿을 것이 못 된다. 이제 권력에 대한 부단한 감시가 더욱 중요해졌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이 더욱 절실해지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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