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의 성민과 숙희들

이제훈 2022. 5. 3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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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훈의 1991~2021][이제훈의 1991~2021] _29

성민과 숙희는 영화 속에나 존재하는 사이일까? 그럴 리가. 수만명의 남남북녀가 개성공단에서 10년 넘게 종일 부대끼며 함께 일을 했는데, ‘사랑’이 꽃피지 않을 수 있겠나? ‘법적으로 결혼한 부부’가 탄생하지는 못했지만, 숱한 ‘사랑 사건’이 꼬리를 물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개성공단의 123개 남쪽 기업과 5만5천여명 북녘 노동자들은 그곳에서 물건만 만들지 않았다.

‘남조선 노래가 듣고 싶다’던 숙희의 혼잣말을 놓치지 않은 성민은 엠피(MP)3에 노래를 잔뜩 담아 통일대교를 건너고, 개성공단 식자재 창고에서 이어폰을 나눠 끼고 ‘사랑이야기1’ 따위의 노래를 듣는다. <한겨레> 자료사진

2019년 5월29일 서울 용산역에 있는 극장에서 <기사선생>(Mr. Driver)이라는 24분짜리 단편영화를 봤다. 개성공단을 무대로 남과 북의 청춘이 자기도 모르게 끌려들어간 봄볕처럼 아뜩하고 설레는 사랑 비스무리한 감정이 공단 폐쇄로 더는 깊어지지 못하고 멈추게 되는 이야기다. 개성공단으로 식자재를 납품하러 가는 ‘온달청과’의 성민(배유람)은 통일대교를 지날 때 쿵쾅거리는 심장을 주체하기 어렵다. 난생처음 발을 딛는 북녘이 어색하고 두려워서다. 누구한테든 미지의 세계는 설레거나 두려운 대상이다. 그런데 공단 식당의 영양사인 듯한 북녘 처자 숙희(윤혜리)의 해사한 웃음은 성민의 두려움과 어색함을 설렘으로 물들인다. 숙희의 고장 난 자전거를 고쳐주는 성민, “기사선생, 고맙습니다”라고 답례하는 숙희. 그렇게 남남북녀의 두 마음 사이에 다리가 놓인다. ‘남조선 노래가 듣고 싶다’던 숙희의 혼잣말을 놓치지 않은 성민은 엠피(MP)3에 노래를 잔뜩 담아 통일대교를 건너고, 공단 식자재 창고에서 이어폰을 나눠 끼고 ‘사랑이야기1’ 따위의 노래를 듣는다. 말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공기의 미세한 떨림처럼 섬세한 감정의 파도를 ‘개성공단 전면 중단’(2016년 2월10일) 조처가 완벽하게 가로막는다. 감독 김서윤은 “만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남남북녀의 안타까운 상황으로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분단 현실이 사실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고 싶었다”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성민과 숙희는 영화 속에나 존재하는 사이일까? 그럴 리가. 수만명의 남남북녀가 개성공단에서 10년 넘게 종일 부대끼며 함께 일을 했는데, ‘사랑’이 꽃피지 않을 수 있겠나? ‘법적으로 결혼한 부부’가 탄생하지는 못했지만, 숱한 ‘사랑 사건’이 꼬리를 물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개성공단의 123개 남쪽 기업과 5만5천여명 북녘 노동자들은 그곳에서 물건만 만들지 않았다. 두세기에 걸친 분단의 세월 동안 굳어진 차이와 오해를 이해와 공감으로 풀어냈다. 영화 속 성민과 숙희처럼. ‘성민’과 ‘숙희’는 남과 북 8천만 시민·인민의 다른 이름이다.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이 적절히 묘사했듯이, 개성공단은 “접촉의 공간”이었고, 무엇보다 “통일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차이/오해’와 ‘이해/공감’의 경계는 철벽처럼 완강할 수도, 실개천처럼 쉽사리 넘나들 수도 있다. ‘철벽’을 ‘실개천’으로 바꾸는 힘은 서로의 마음을 보듬는, 필요를 충족시키는 끈기 있는 배려다.

예컨대 이런 식. 개성공단 화장실은 처음부터 양변기였다. 남쪽에선 ‘당연한’ 시설이지만, 개성공단 북쪽 노동자들의 대다수는 양변기를 사용해본 경험이 없었다. 가만히 보니, 재래식처럼 양변기에 올라타서 사용한 흔적이 많았다. 불러모아 지적하지 않았다. 화장실 문 안쪽에 양변기 사용법을 그림으로 그려 붙였다. ‘지적질’은 공감과 이해의 적이자 오해의 친구다.

개성공단과 직접 관련된 일을 하거나 관심이 많은 이들은 개성공단 하면 ‘초코파이’를 가장 먼저 떠올리기 일쑤다. ‘초코파이’는 공식적으론 ‘더 열심히, 효과적으로’ 일을 하는 노동자한테 따로 혜택을 줄 수 없는 개성공단에서 성과급의 다른 얼굴이었다. “개성공단 박 사장”은 2016년 2월 공단 폐쇄 직후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북한 노동자 임금에도 인센티브 개념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자꾸 차등 임금을 하자고 요구하죠. (인센티브와 비슷한) 상금제도라는 게 개성공단에도 생겼습니다. 전에는 무조건 공평하게 나눴는데, 지금은 기본급에 상금을 더해 준다는 것이지요. 그걸 관리할 수 있었던 게 초코파이예요. 임금을 북쪽 총국에 주기 때문에 우리 공장 근로자가 당국에서 실제 얼마를 받는지를 정확히 알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우리가 지급하는 초코파이는 본인이 직접 가질 수 있죠. 초코파이의 진짜 효용은 사람들에게 근로 동기를 주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오전, 점심, 오후 휴식 시간에 하나씩 초코파이를 지급합니다. 통상 하루 세개 지급합니다. 어려운 일, 쉬운 일 하는 일이 다 다르잖아요. 우리 공장에선 먼지 나고 어려운 일 하는 사람은 초코파이를 하루에 세개 더 줍니다. 연장근무 수당도 있습니다. 그것도 기업이 북쪽 당국에 지급하는 것이죠. 연장노동을 하는 직원에게는 라면이나 초코파이를 한시간에 하나 지급합니다. 포장된 남쪽 초코파이, 라면이 북한 전역 장마당(사설 시장)으로 퍼져갔습니다. 그 사람(개성공단 북쪽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먹는 게 아닙니다. 모아서 팔고 생활이 나아지는 것이지요. 초코파이 때문에 오죽 장마당이 활성화됐으면 북한 당국에서 2015년부터 한국산 초코파이, 라면 못 주게 하겠어요? 한국 걸 사서 줬는데 그 돈도 적지 않거든. 북쪽이 자기네들 걸 사서 주라는 거야. 그래서 요즘은 80% 이상 북한 초코파이를 사서 줘요. 그건 뭐 (장마당) 유통이 안 되니까. 한국산 라면은 포장을 뜯고 비닐봉지에 주는 것은 허용하겠대요. 그렇게 나간 라면은 반값이라고 합디다. 초코파이와 라면 대신 요즘은 기름과 조미료(MSG)로 대체가 됐어요.” 하여 ‘초코파이’는 ‘박 사장’과 북쪽 노동자를 한배에 태운 ‘시장경제’이자, 가족한테 더 좋은 것을 챙겨주고 싶은 북쪽 노동자의 ‘가족 사랑’이다.

그렇게 남과 북의 시민·인민은 개성공단에서 양변기와 초코파이 따위, 어찌 보면 보잘것없는 물건을 매개로 서로를 도우며 이해와 공감의 폭과 깊이를 더해갔다.

사람은 물이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 개성공단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개성공단 사업은 남과 북의 수자원 공동 개발·활용으로 이어졌다. 잇단 태풍·집중호우 피해로 망가진 황해북도 장풍군 월고저수지를 남쪽의 자재·장비·재원으로 재정비해 개성공단과 개성시에 깨끗한 물을 공급했다. 2007년 9월13일은 북쪽 월고저수지의 물을 남쪽의 기술로 정수 처리한 수돗물을 개성공단과 개성시의 40만 남짓한 시민한테 처음으로 공급한 역사적인 날이다. 생명의 어머니인 물은 월고저수지와 개성공단과 개성시를 이어주었고, 그렇게 남과 북은 깨끗한 물을 함께 나눠 마시는 사이로 거듭났다. 월고저수지 물을 정수해 쓰기 전, 개성공단에선 우물을 파서 지하수를 끌어다 썼다.

개성공단엔 남과 북을 잇는 광케이블 통신 회선도 1300회선 깔렸다. 남북 합의에 따라 2005년 7월 민간 차원으로는 처음으로 남과 북 사이 광케이블을 연결해 그해 12월 303회선을 개통한 뒤 공단 규모 확대에 따른 남북 사이 연락 수요 증가로 1300회선까지 늘렸다.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의 ‘7·7 특별선언’으로 물꼬를 튼 30년 남북 교류협력사에 개성공단에 비견할 만큼 대량의 통신 수요를 창출한 사업은 없다.

개성공단에선 ‘불’도 많이 났다. 공장 123곳이 가동되고 남북의 수만명이 어우러져 일하는 곳이니 어찌 화재가 없었겠나. 공식 확인된 것만 추려도 100건이 넘는다. 한해 10건 남짓한 화재가 발생한 셈이다. 과반은 입주기업 공장에서 났다. 건설 현장에서도 전체 화재의 20%를 넘길 정도로 불이 자주 났다.

개성공단에선 초기부터 자체 소방대를 설치·운영했다. 공단 가동 초기인 2005년 2월 남쪽 2명, 북쪽 12명으로 첫 소방대가 꾸려졌고, 입주기업의 증가와 함께 소방대 규모도 커졌다. 2012년 9월엔 종합상황실을 갖춘 ‘개성공업지구 소방서’가 준공됐다. 남쪽의 119안전센터 한곳 크기다. 남쪽 사람들은 소방서의 전반적인 운영·관리와 소방기술 교육 따위를 맡았고, 화재 진압은 북쪽 소방대원들이 전담했다. 북쪽 소방대원들은 15명씩 2개 조로 나눠 24시간 비상대응체계를 꾸렸다. 개성공단 가동 기간에 100건 넘는 크고 작은 화재가 발생했지만, 다행히도 사망자는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 개성공단 소방서에서 남과 북은 함께 불을 끄며 재난에 공동대처하는 마음과 기술과 태도도 배우고 축적했다. 남과 북은 2016년 2월 중순부터 2017년 여름에 걸쳐 개성공단 소방서를 기존의 3배(119안전센터 3곳) 규모로 증축하려는 계획을 세워뒀으나, 2016년 2월 공단 전면 폐쇄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개성공업지구 사업을 배양기 삼아 남과 북이 10년 넘게 어렵사리 키워온 상호 이해와 공존의 디딤돌들이 2016년 2월11일 개성공단 문이 느닷없이 닫힌 뒤로 방치돼 있다.



이제훈 |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1993년 한겨레에 들어와 1998년부터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사업의 시작과 중단, 다섯차례의 남북정상회담, 여섯차례의 북한 핵시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3세 승계’, 두차례 북-미 정상회담, 사상 첫 남·북·미 정상회동 등을 현장에서 취재·보도해왔다. 반전·반핵·평화의 한반도와 남북 8천만 시민·인민의 평화로운 일상을 꿈꾼다.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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