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철 칼럼] 윤 대통령, 발달장애인 가족 만나라

장인철 2022. 5. 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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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의 책임 있는 누군가가 응당 관심을 표명하고 답변을 해주는 게 '상식'이라고 생각했다.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를 요구하며 연일 처절한 시위를 벌여 온 장애인단체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반응 얘기다.

5월 10일 윤 대통령 취임에 앞서 발달장애인 지원체계 요구가 전야를 밝힌 셈이 됐다.

다만 그렇다 해도, 윤 대통령은 당선 직후 한국노총을 찾았던 것처럼, 어떤 식으로든 장애인, 특히 발달장애인 가족의 참극을 직시하고 그들의 요구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갖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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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달라’ 애끓는 시위에도 묵묵부답
장애인단체 대선서 이재명 지지 ‘헛발’
그래도 진지하게 포용하는 게 국민통합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이 지난 26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죽음을 강요당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한 추모제'에서 눈물을 흘리며 시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 정부의 책임 있는 누군가가 응당 관심을 표명하고 답변을 해주는 게 ‘상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를 요구하며 연일 처절한 시위를 벌여 온 장애인단체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반응 얘기다.

시위는 외면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어졌다. 지난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4월 19일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청와대 인근에서 소속 장애인과 가족 550명이 참여한 집단삭발 시위를 벌이고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5월 10일 윤 대통령 취임에 앞서 발달장애인 지원체계 요구가 전야를 밝힌 셈이 됐다. 그런 가운데 5월 23일 서울에서 40대 엄마가 6세 발달장애 아들과 함께 자택에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같은 날 인천에선 60대 여성이 중복 발달장애인인 30대 딸을 살해한 후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참혹한 일이 잇달아 벌어졌다.

장애인 가족 참사는 시위에 기름을 부었다. 장애인단체들은 5월 26일 대통령 집무실 인근인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6ㆍ25 상징탑 앞에서 다시 모였다. 근처에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추모하는 분향소’를 설치하고 또다시 시위를 이어갔다. 이들의 요구는 흔한 권리 주장이 아닌, 삶의 막다른 경계에서 터져 나오는 “제발 살게 해달라”는 단말마의 절규다. 하지만 아직 새 정부의 누구도 이들 앞에 서지 않았다.

신속하고 과단성 있는 새 정부의 인상적인 행보와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냉담함과 관련해 장애인단체 ‘원죄’ 얘기까지 나돈다. 장애인단체 대부분이 지난 대선 때 이재명 지지를 선언한 정치적 행보 때문에 이미 정권의 눈밖에 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골자다.

실제 그렇게 볼 만한 일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지난 대선(3.9)을 한 달여 앞둔 1월 25일 서울 여의도에서 ‘이재명 후보 지지하는 장애인 가족’이 주최한 지지선언 기자회견이 열렸다. 플래카드에는 전국 22만3,154명의 장애인 가족이 이 후보를 지지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대선을 불과 일주일 앞둔 3월 3일에는 국회의사당에서 40만1,271명이 지지한다는 더 큰 판이 벌어졌다.

주최측은 이 후보 지지 이유를 “윤석열 후보는 발달장애인 관련 공약이 없는 반면, 이 후보는 중증장애인 지역사회 24시간 지원체계 구축, 5대 돌봄 국가책임제 실현 등의 공약을 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물론 주최측이 실제 전체 장애인과 가족들의 정견을 대표할 수 있는지 여부는 명확히 입증된 게 없다. 상식적으로는 지난 1월부터 이 후보 캠프 내 ‘포용복지국가위원회’란 조직이 전국을 돌며 장애인단체 간담회를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관련 행동가들을 조직화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경위야 어쨌든 대선에서 대놓고 이 후보 선거운동에 앞장선 장애인단체 행동가들의 선택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뜬구름 같은 공약만 믿고 선거판에 줄을 댐으로써, 행동가들은 장애인 문제를 정파적 이슈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요즘은 노조도 그런 식으론 안 한다. 아무리 국가지도자를 뽑는 대선이라지만, 불과 0.73%포인트로 당락이 갈린 박빙의 선거판에서 대놓고 상대 후보 선거운동에 앞장선 일에 어떻게 감정의 앙금이 전혀 없을 수 있겠는가.

다만 그렇다 해도, 윤 대통령은 당선 직후 한국노총을 찾았던 것처럼, 어떤 식으로든 장애인, 특히 발달장애인 가족의 참극을 직시하고 그들의 요구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갖기 바란다. 얄팍한 위로가 아니다. 당장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를 마련하겠다는 호쾌한 대답을 하기 어려워도, 그런 과정을 통해 참담한 현실의 개선책을 찾는 성의를 보이는 게 국가지도자의 책무다.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국민통합 행보를 기대한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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