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함께 쓴 소설"

김슬기 2022. 5. 3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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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새의 선물' 개정판 출간
27년동안 100쇄 찍은 데뷔작
"장애나 여성 비하 표현 고쳐
사회 조금이라도 좋아져 다행"
열두 살 소녀 그린 성장소설
젊은 문학도들의 고전으로
'새의 선물'은 은희경(63·사진)에게 선물이었다. 1995년 신춘문예로 등단했지만, 여름까지 청탁 한 편 없었다. 35세의 평범한 주부로 돌아갈까 겁이 나서 절에 들어가 장편을 쓰기 시작했다. 해발 1000m가 넘는 외딴 선방에 누우면 몸이 벽에 닿았다. 그곳에서 탄생한 책이었다.

"그때는 소설을 쓰는 게 정말 재미있었어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이거라는 확신이 나를 끌어줬죠. 2년 뒤에 다시 절에 갔더니, 소설이 안 써져서 3일 만에 내려왔어요. 간절함이 원동력이었나 봐요. 새의 선물은 저에게 문운(文運)을 가져다 준 작품입니다."

은희경의 이름을 한국 문학사에 아로새긴 충격적인 데뷔작 '새의 선물'이 27년 만에 100쇄를 찍었다.

삶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영악한 12세 소녀를 그린 성장소설이다.

1969년 서흥동 감나무집의 할머니에게 맡겨진 진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 소설은 최은영, 박상영, 김초엽 등 젊은 작가들이 자신의 문학적 본류로 꼽는 고전이 됐다. 한국을 대표하는 이 스테디셀러가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됐다.

30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난 작가는 "많은 사람이 나를 첫 책에 가둬놓는다. 그래서 책을 안 읽다가 27년 만에 다시 읽었다. '어쩜 이렇게 뻔뻔스러워'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고쳐야 될 게 보여 오히려 좋았다. 과거에 내가 던진 질문에 내가 답하는 작업이었다. 27년 전 나와 지금의 내가 함께 쓴 소설이 됐다"라고 말했다.

개정판을 내면서 전반적인 뼈대는 바꾸지 않고, 표현이나 편견을 손질했다. 무심코 장애나 여성에 대한 비하 표현을 쓴 것도 고쳤다.

작가는 "1990년대에는 이런 말을 함부로 타인에게 했구나 싶었다. 지금은 사회가 조금이라도 좋아져서 이렇게 바꿀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소설에서 할머니는 욕을 많이 하지만 욕을 빼진 않았다. 하지만 '앉은뱅이 책상'은 '좌식 책상'으로 바꿨다.

그는 "작가의 일이 그 시대를 재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시대를 해석하는 관점을 만들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 관점은 할머니의 욕이나 그 당시 우리가 감추고 싶었던 비루한 모습을 포장하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성장소설의 대명사로 꼽히지만 "스스로 성장소설이라 생각하고 쓰진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책을 처음 낼 때 아이가 12세였다. 어떻게 읽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아이는 제 최근작을 쓰는 데도 도움을 줬다. 픽션의 세계 속에서 저의 아이들도 성장하고, 저도 같이 성장해온 것 같다. 고마운 소설"이라고 했다.

15권의 책을 펴낸 작가는 앞으로 더 부지런해지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더 많이 쓰려고 생각 중입니다. 젊었을 때 쓰고 싶었지만 제 역량이 부족해 못했던 걸 써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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