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선물'은 빛이자 그림자"..100쇄 개정판 낸 은희경, 변한 것과 변치 않은 것

이영경 기자 2022. 5. 30.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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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은희경이 30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에서 열린 장편소설 <새의 선물> 100쇄 기념 개정판 출간 간담회에서 출간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새의 선물>은 저에게 멀고도 환한 빛이자 길고도 희미한 그림자 같은 작품이에요.”

소설가 은희경(63)의 첫 장편소설이자 ‘대표작’으로 불리는 <새의 선물>이 100쇄를 맞아 개정판을 출간했다. <새의 선물>은 1995년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후 27년간 꾸준히 독자들에게 사랑받으며 100쇄를 찍었다. 한국문학에서 100쇄를 찍은 소설은 많지 않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박경리의 <토지>, 조정래의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김훈의 <남한산성> 등이 있다.

30일 <새의 선물> 100쇄 기념 개정판 출간을 기념해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은희경은 “이 책 덕분에 안정적인 작가 생활을 할 수 있었던 면에선 빛이었지만, 저의 ‘대표작’으로 여겨지면서 그 책의 한계라는 동그라미가 발아래 그려진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은희경은 “27년에 걸쳐 100쇄가 된 건 각별한 의미다. 그 시간 동안 제가 소설을 통해 던진 질문에 공감해줬던 독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한 번 쓴 책은 내 손을 떠난 것이라고 생각해 다시 읽지 않는다”는 그는 개정판을 위해 27년 만에 처음으로 <새의 선물>을 재독했다.

그는 고칠 것은 고치고 놔둘 것은 남겼다. 은희경은 “소설의 뼈대는 바꾼 것이 없다. 다만 ‘앉은뱅이 책상’을 ‘좌식 책상’으로 바꾸는 등 장애나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들은 수정했다”며 “고쳐야 할 게 보일 때마다 좋았다. 90년대에는 이런 말을 타인에게 함부로 했구나, 사회가 조금 좋아져서 이런 걸 바꿀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작가는 그 시대를 재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시대를 해석하는 관점을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며 “앉은뱅이책상은 바꾸었지만 할머니의 욕이나 감추고 싶었던 비루한 모습은 포장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소설가 은희경이 30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열린 장편소설 ‘새의 선물’ 100쇄 기념 개정판 출간 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의 선물>은 ‘삶이 시작부터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열두 살 진희의 날카롭고 예리한 시선으로 1960년대 한국 사회의 부조리와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린 작품이다.

은희경은 “개정판에서 변치 않은 부분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부조리이다. 어떤 챕터에서는 여성 문제를 말하고 싶었고, 다른 챕터에서는 계급적 이야기, 군사독재가 일상생활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얘기하고 싶었다”며 “우리가 익숙해져 적응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들이 우리를 자꾸만 부조리함, 오답으로 주저앉힌다는 생각으로 소설을 썼고, 다시 읽으며 그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27년간 수많은 독자들이 <새의 선물>을 읽었다. 은희경은 한 독자가 보낸 편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친구의 부모님이 집을 비운 날, 친구가 무섭다고 해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 집에 자러 갔다. 그날 밤 강도가 들어 피해를 입었다는 독자는 “왜 선의가 악으로 갚아지는지 혼란과 분노에 빠져있을 때 괜찮다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새의 선물>을 읽고 세상의 부조리를 받아들이며 용기가 생겼다”고 편지를 보냈다. 은희경은 “다정하고 따뜻한 것만이 위로가 되는게 아니라, 춥고 어둡지만 그것을 똑바로 봄으로써 내가 강해지는 것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 막연하게 소설을 쓸 때 느꼈던 감정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글을 쓰면서 항상 현재의 작가”라고 생각한다는 은희경은 차기작으로 ‘몸’에 대한 장편소설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몸은 인간의 조건이자 세상이 나를 평가하고 왜곡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한편 탄생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인간의 유한함을 확인하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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