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고 정동년 5·18재단 이사장 일제히 애도.."오월정신 잇겠다"

박준배 기자 2022. 5. 30.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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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국민의힘·정의당·진보당·이용섭 시장 등 일제히 추모
광주 동구 금호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 빈소.2022.5.30/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광주=뉴스1) 박준배 기자 =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정치권은 평생을 5·18민주화운동 진실규명과 인권운동에 헌신하다 별세한 고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을 일제히 추모했다.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은 30일 추모 성명을 내고 "마지막까지 오월 현장을 지키다 가신 고 정동년 이사장님의 유지를 잊지 않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고 밝혔다.

광주시당은 "고인은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한 평생 자신을 초개처럼 던진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며 "고인의 삶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였다"고 평가했다.

이어 "오월의 찬란한 미래를 꿈꿨던 고인은 이제 세상을 떠났지만 그 유지를 이어받아 5·18의 진상규명과 오월정신의 확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당대표가 직접 장례식장을 찾아 헌화·분향하고 고인을 추모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장례식을 찾아 "고인은 1964년 6·3항쟁을 비롯해 광주에 있었던 시민운동까지 한 몸으로 담아낸 상징적인 인물"이라며 "정치와 행정에도 참여해 지역을 위해 봉사를 하신 분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5·18은 국민 모두의 것이라고 밝혔다"며 "이사장님과 민주화운동의 주역들을 잘 모실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하겠다"며 강조했다.

이 대표는 방명록에 '가신 뒤에도 저희가 가시던 길 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진보당 광주시당은 "민주 진영의 큰 어르신이신 정동년 이사장의 갑작스런 비보에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고 애통해했다.

진보당은 "고인은 5·18진실규명과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일생을 바쳐오셨다"며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5·18민중항쟁의 온전한 진상규명과 헌법전문 수록을 위해 애쓰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회상했다.

이어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어려운 고비마다 늘 앞장서 오셨던 선생님의 뜻 이제는 후배들이 이어 받겠다"며 "오월정신을 올곧게 계승하고 5·18민중항쟁 진실규명과 헌법전문수록을 위해 더욱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장연주 정의당 광주시장 후보는 전날 추모 성명을 통해 "오월 정신을 온몸으로 실천해오신 정동년 선생님의 뜨거운 발자취를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장 후보는 "청년의 기상으로 정의로운 나라,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투쟁한 선생님의 발자취를 잊지 않겠다"며 "정의당이 5·18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끝까지 싸우고 차별과 소외가 없는 시민 모두의 광주, 정의로운 광주를 만들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이용섭 광주시장도 추모성명을 내고 "고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님의 별세를 온 광주시민과 함께 마음 깊이 애도한다"고 밝혔다.

이 시장은 "평생을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에 헌신하셨던 정동년 이사장님께서 갑자기 별세하셨다는 비보에 가슴이 무너진다"며 "황망함을 금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 땅의 자유와 정의, 민주주의를 위해 걸어오신 고인의 숭고한 삶은 온 국민의 가슴에 잊히지 않을 등불로 남아있다"며 "고인께서 평생 추구해오신 민주주의와 광주 발전의 큰 뜻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고 정동년 이사장은 심장마비로 쓰러져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29일 오전 10시쯤 향년 7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은 1964년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한일굴욕 외교 반대 투쟁을 이끌다 구속·제적됐다.

1980년 복학했으나 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에 따라 예비검속됐다. 전두환 신군부가 꾸며낸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 휘말려 모진 고문을 당하다 군사재판에서 5·18민주화운동 관련 내란수괴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1982년 12월 성탄절 특별사면조치로 석방돼 1984년 전남대에 두 번째로 복학, 그해 가을 학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이듬해 5·3 인천사태 주동자로 구속돼 다시 3년간 옥살이를 했고 1989년에는 조선대생 이철규 사인 규명과 관련해 또다시 구속됐다.

이후 민중항쟁연합 상임의장과 민주주의민족통일 광주·전남연합 공동의장, 5·18기념사업추진위원회 사무국장, 5·18기념재단 이사장 등을 지냈다.

1999년 재보궐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광주 남구청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고인은 생애 마지막까지 5.18민주화운동 진실규명을 위해 헌신했다. 27일 부활제에 이어 28일 열린 제42주년 5·18민중항쟁행사위원회의 마지막 행사 '오월의 밤'에도 참석했다.

그는 부활제 행사에서 "오늘날 우리는 역사의 주인공이 됐고 5·18은 도래하는 민주주의의 이정표가 됐다"며 "살아남은 우리는 민주·인권·평화가 살아 숨쉬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잔혹했던 진실을 명확히 규명하고 널리 알리려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유가족으로는 배우자인 이명자 전 오월어머니집 관장, 아들인 재헌·재철 씨 등이 있다. 빈소는 광주 금호장례식장 301호에 마련했다.

장례는 5·18 민주국민장으로 치른다. 영결식은 31일 오전 10시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에서 거행된다. 노제는 5·18재단과 전남대에서 진행한다. 고인의 유해는 국립 5·18민주묘지에 안장된다.

nofatejb@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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