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온라인 판매 미스터리..박재범 '원소주'는 되고 '막걸리'는 안 된다?
“와인·위스키·브랜디는 전통주다. 하지만 막걸리는 전통주가 아닐 수도 있다.”
“올해 초 판매를 시작한 박재범 ‘원소주’는 전통주다. 하지만 30년 동안 판매해온 ‘백세주’는 전통주가 아니다.”
전통주 업계가 ‘혼란’에 빠졌다. 전통주를 분류하는 애매모호한 기준 탓이다. 단순히 ‘전통주가 맞냐 아니냐’를 두고 펼쳐지는 자존심 싸움만은 아니다. 이권도 걸려 있다. 전통주 요건을 충족하면 다른 주류와 달리 온라인 판매가 가능한 데다 세금을 50% 절감받을 수 있는 혜택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전통주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주류를 취급하지만 전통주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곳도 많다. ‘역차별’ 논란이 나오는 이유다.
▶박재범 ‘원소주’가 쏘아 올린 전통주 논란
▷지역 농민이 해당 지역 원재료만 사용해야 인정
전통주 분류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계속돼왔다. 현재 전통주는 2009년 제정한 전통주 등의 산업 진흥에 관한 법(전통주산업법)과 주세법에 의해 분류된다.
해묵은 이슈가 최근 들어 뜨겁게 달아오른 것은 유명 연예인들의 ‘전통주 러시’ 때문이다. 가수 박재범이 내놓은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 브랜드 ‘원소주’가 대표적이다. 원소주는 온라인 판매 시작 26분 만에 6만병이 팔리는 등 온라인 판매로 이른바 ‘대박’이 났다. 박재범뿐 아니다. 가수이자 배우 임창정 역시 자신의 히트곡 이름을 딴 프리미엄 소주 ‘소주 한 잔’을 오는 7월 선보일 예정이다. 이 역시 전통주 요건을 충족,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다.
현행법에서 지정한 전통주 기준은 뭘까.
크게 세 가지다. ① 국가가 지정한 장인이 만든 술이거나 ② 식품 명인이 만든 술 ③ 지역 농민이 해당 지역 농산물로 만든 술만 전통주로 인정한다. 반면 전통 기법으로 술을 만들었거나 오래전부터 전통주라고 여겨온 술이라고 해도 해당 요건을 채우지 못하면 전통주로 인정받지 못한다.
‘원소주’와 ‘소주 한 잔’은 모두 전통주 기준을 충족한다. 박재범 대표가 설립한 ‘원스피리츠’는 강원 원주시에 증류소 양조장을 둔 영농법인. 100% 국산 쌀인 강원도 원주 인근 쌀을 사용한다. 임창정 ‘소주 한 잔’ 역시 충북 청주에 위치한 양조 업체 ‘조은술세종’과 협업해 만든 국산 쌀로 빚었다.
누구나 ‘전통주’라고 생각할 법한 술이지만 현행법상 전통주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는 술도 많다. 저마다 이유가 있다.
광주요에서 만든 ‘화요’는 ‘원소주’와 똑같은 증류주 감압 방식으로 만든 소주지만 광주요가 농업법인이 아닌 탓에 전통주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백종원 씨가 만들어 화제를 모은 생막걸리 ‘백걸리’도 비슷한 경우다. 발효 과정에서 세 번 술을 담그는 전통 방식인 ‘삼양주 기법’을 적용했지만 양조장이 지방이 아닌 서울에 위치한 데다 제조사가 외식 프랜차이즈 기업 더본코리아라는 점에서다. 6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장수생막걸리’는 지역 농업법인에서 생산하고 있기는 하지만 원재료 요건에서 탈락했다. 한 지역의 농산물만으로는 기존 유통 물량을 충당하기 어려워 수입산 쌀이 들어가는 제품도 있다. 국순당 ‘백세주’ 역시 재료가 문제다. 국산 쌀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전분 등 몇몇 부자재에 수입산이 쓰인다는 이유로 전통주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다.
▶미국인이 만든 소주도 전통주라고?
▷와인·위스키·브랜디도 지역 농민이 만들면 OK
반대로 당연히 전통주가 아닐 것 같은 술 중에서도 전통주에 포함되는 술이 많다.
‘와인’이 대표적이다. 최근 화제를 모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만찬주’는 전체 6개 중 5개가 ‘와인’이었다. 강원도 홍천 사과로 만든 와인, 전북 무주산 머루로 만든 와인 등이다. 지역 농민이 국산 재료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분명 현행법상 전통주에 속하지만 ‘와인이 과연 전통주인가’라는 질문에는 쉬이 답을 내리기 어렵다.
미국인이 만든 전통 소주로 화제가 됐던 ‘토끼소주’ 역시 전통주에 포함된다. 미국인 브랜든 힐 대표가 2011년 뉴욕에서 처음 만든 브랜드지만 국내에서는 전통주다. 2020년 충북 충주에 농업법인을 설립하고 충주 지역의 원재료를 사용해 만들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전통주 업계 관계자는 “와인뿐 아니다. 위스키, 브랜디, 진처럼 당연히 외국 술임에도 불구하고 국산 재료를 사용하면 전통주라는 이름 아래 판매가 가능하다. 그들의 새로운 시도가 나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국민이 갖는 전통주라는 인식 자체에 혼란이 올 수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민속주-지역특산주, 따로 관리해야
▷주류 온라인 판매 전면 허용’도 방법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현행 제도에 손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통주 개념을 지금보다 훨씬 넓혀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다. 한 주류 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전통주 개념이 너무 협소하다. 해당 지역에서 나온 원재료만으로 좋은 술을 양조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전통주법 혜택을 포기하고 본인이 만들고 싶은 전통주를 고집 있게 만들어가는 이들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전통주를 ‘민속주’와 ‘지역특산주’로 분류해 따로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지역 농민이 지역 원재료로 만든 술은 ‘지역특산주’로 관리하고, 막걸리나 백세주처럼 통상 전통주라고 생각되는 주류는 세부 기준을 만들어 ‘민속주’로 지정하자는 의견이다. 남도희 막걸리협회 사무국장은 “현재 지역특산주 업체들이 사용하는 모든 국산 쌀보다 국순당이나 장수막걸리가 쓰는 국산 쌀의 양이 몇 곱절은 많다. 지역특산주는 현행대로 혜택을 유지하고 민속주 범위를 넓힌다면 전통주에 대한 오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물론 농가 진흥에도 더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통주뿐 아니라 아예 모든 주류에 대한 온라인 판매를 ‘전면 허용’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영세한 전통주 시장 파이를 키우는 것은 물론 실력 있는 양조 업체를 가려낼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 생각이다. 맥주나 와인이 아닌, 전통주 업계에 10년 이상 몸담고 있는 전통주 관계자들로부터 나온 목소리라 더욱 눈길을 끈다. 이승훈 백곰막걸리 대표는 “전통주 시장 전체가 굉장한 특혜를 받는 것처럼 오해를 하는 이들이 많은데 실상 따지고 보면 수혜를 받는 것은 전통주 업계에서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미국·일본처럼 온라인 판매를 전면 허용하는 것이 방법이다. 제대로 된 유통망을 갖추지 못했지만 실력은 확실한 영세 전통주 제조 기업들이 더욱 활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자본과 마케팅 파워를 갖춘 대기업이 주류 시장을 더 잠식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지만 그건 현재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나건웅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1호 (2022.06.01~2022.06.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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