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백서', 쌉싸름한 첫맛 후 느끼는 달콤한 뒷맛

아이즈 ize 조성경(칼럼니스트) 2022. 5. 30.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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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조성경(칼럼니스트)

사진제공=카카오TV

결혼은 판타지다. 드라마도 판타지다.

소위 MZ라고 하는 요즘 젊은 세대는 셈도 빠르고 주관도 뚜렷해 결혼에 대해 이렇다저렇다 훈수 두는 일 따위는 하면 안 될 성싶다. 자칫 조금이라도 신경을 거스르는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집중포화를 맞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결혼백서'(극본 최이랑 극본,  연출 송제영·서주완)이라면서 카카오TV에서 웹드라마를 내놓았다. 세상에, 백서라니! 이런 거창한 제목을 붙일 배포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뭘 얼마나 보여주려는 걸까. 딱딱한 네 글자 제목만으로는 궁금증과 우려의 마음이 뒤엉킨다. 

그런 마음을 단숨에 녹여주는 건 이진욱과 이연희라는 훈훈한 캐스팅이다. 무엇보다 드라마로는 정말 오랜만에 로맨스물에 나서는 이진욱이 작정을 한 듯 달달한 미소를 연신 날리며 여심을 공략한다. 여기에 소녀 같은 미모와 순수함이 전매특허인 이연희가 어우러지면서 어느덧 시청자들의 마음은 무장해제되고 만다.

게다가 35분 내외의 짧은 분량 안에 군더더기 없이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를 월,화,수요일, 주 3회 풀어내는 방식도 시청자들의 환심을 산다. 지난 23일 첫회에서 프러포즈로 포문을 연 '결혼백서'는 2회에서는 상견례, 3회에서는 결혼예산과 경제권 이야기로 속전속결 이어지며 30대 커플의 결혼 준비 과정을 주요 골자로 보여주고 있다.

사진제공=카카오TV

주인공들이 결혼식에 골인하기까지 준비 과정에서 벌어지는 현실적인 이야기로 공감대를 이루겠다는 게 '결혼백서'의 계획이다. 그러나 찬찬히 뜯어보다 보면 아직 극 초반이란 걸 감안하더라도 과연 '현실 공감'이라는 표현이 맞을까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엄밀히 말하면 소재만 현실일 뿐 나머지는 죄다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당장 주인공들의 면면부터 비현실적인 선남선녀이다. 매회 에피소드의 마무리 역시 판타지 그 자체다.  카카오TV의 전작 '며느라기'처럼 결혼의 쓴맛을 보여주는 '비혼 조장' 드라마를 만들 의도는 없어 보인다.   

남자주인공 서준형(이진욱)은 훈훈한 외모에 신의 직장이라는 공기업에 다니고 집안도 풍족해 신혼집 전세자금도 부모님으로부터 지원받을 예정이다. 그런 부분들은 차치하고라도 준형은 매회 결혼 준비와 관련해 여자주인공 김나은(이연희)을 심란하게 만들다가도 마지막 순간에는 나은의 마음에 쏙 드는 모습으로 태세를 전환한다.

나은의 말이라면 뭐든 들어주겠다는 모습으로, 나은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다는 마음으로 나은을 안심시키며 훈훈하게 마무리를 지어준다. 그 순간에는 준형이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신랑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화 속에서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하고 도장 찍듯 해피엔딩을 만들어주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사진제공=카카오TV

나은 역시 조바심이 나는 상황에서도 늘 침착하고 차분하게 준형을 기다려주는 현명한 모습이 이상적이다. 물론 연애하는 2년 내내 주도권을 쥐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결혼을 앞두고는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워 절절매는 모습이 현실적이라면 현실적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신데렐라를 비롯해 많은 동화 속 착한 여주인공에게 모든 어려움을 일거에 해소해 주는 왕자님이 있듯 나은에게도 준형이 그런 존재인 듯해 결국은 판타지라는 것이다. 

조연들의 대사에서는 결혼 준비는 "고행길 시작"이라고도 하고, "결혼은 돈으로 시작해서 돈으로 끝난다"고도 하며 현실적인 이야기로 이목을 집중시키기는 한다. 예물, 예단, 결혼자금, 경제권 등 예민할 수밖에 없는 단어들이 언급되며 귀를 쫑긋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전공서를 기대했는데, 교양 입문서 수준으로 운만 띄우고 마는 이야기가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애초에 결혼이라는 우주만큼 방대한 주제를 다루는 것이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 금세 수긍이 되기도 한다.

사진제공=카카오TV

더욱이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드라마'라는 점을 생각하면 판타지로 노선을 정한 게 잘한 결정이지 싶다.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 주인공은 이왕이면 예쁘고 잘생긴 배우여야 한다는 생각들을 무의식중에 가지고 있다. 이는 이미 드라마가 판타지이기를 기대한다는 사실을 내포한다. 만일 진짜 현실을 보여준다면 시청자들은 "내가 드라마를 본다 했지, 현실을 보고 싶댔나! 그럴거면 그냥 다큐를 보고 말지"하며 역정을 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민감하고 노골적인 이야기를 꼼꼼히 다루지 않는다고 해서, 지지리 궁상을 떨거나 징글징글 싸우는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고 해서 '결혼백서'가 실망스러운 것은 결코 아니다. 만일 이진욱과 이연희를 캐스팅해놓고 둘이 얼굴 붉히며 적나라하게 싸우는 모습을 연출했다면 오히려 그게 더 아쉬웠을 것이 분명하다.
 
이진욱과 이연희가 굳이 결혼에 대한 로망을 산산이 부서트리는 현실을 보여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현실에서 결혼이라는 장르가 호러물 또는 판타지물라면,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는 판타지로 그려지는 게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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