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흑인선수 최초로 PGA 출전.. 1967년 첫 승

오해원 기자 2022. 5. 3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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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프로골프(PGA)투어는 전 세계 다양한 국가에서 모여든 선수들이 자유롭게 경쟁하고 있다.

시퍼드는 프로 경력의 초창기를 PGA투어에 합류할 수 없는 흑인 선수들이 만든 UGA(United Golf Association) 주최 대회에서 보냈다.

시퍼드가 흑인 선수 최초로 PGA투어 출전 자격을 얻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미 PGA투어 선수들과 경쟁에서 대등한 기량을 뽐낸 덕분이다.

시퍼드는 PGA투어에서 경기한 첫 번째 흑인 선수가 됐지만 그를 향한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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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최초의 흑인 선수인 찰리 시퍼드(미국)가 1957년 1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웨스턴애비뉴골프코스에서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시가를 물고 골프클럽을 휘두르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 뉴시스

■ Golfer & Record - 찰리 시퍼드

미국프로골프(PGA)투어는 전 세계 다양한 국가에서 모여든 선수들이 자유롭게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초창기만 해도 PGA투어는 오직 백인만을 위한 무대였다. 백인이 아니면 출전할 수 없다는 조항을 깬 최초의 주인공은 바로 찰리 시퍼드(미국)다.

시퍼드는 1922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서 태어나 13살 어린 나이에 캐디로 골프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하루 일당이 60센트였는데 50센트는 어머니에게 드렸고, 10센트는 자신을 위해 사용했다. 시퍼드는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시가를 구매하는 데 10센트를 사용했다. 캐디를 하며 골프채를 잡은 시퍼드를 보는 이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나이가 어린 데다 흑인이라는 점에서 항의가 빗발쳤다. 이 모두는 부러움의 그릇된 표현이었다. 짧은 경력에도 스크래치 골퍼가 된 데다 16살이 되던 해에는 두 차례나 US오픈에서 준우승했던 프로골퍼 클레이턴 히프너(미국)와 동반 라운드를 할 정도로 실력이 일취월장했기 때문이다.

결국 시퍼드는 필라델피아로 이주해 골프선수의 꿈을 키웠고, 1948년에 프로골퍼가 됐다. 프로 골프무대의 데뷔가 늦었던 것은 세계 2차대전이 벌어지자 입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전쟁이 끝나자 전역했고, 2년 뒤 당당히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다.

프로골퍼가 됐지만 시퍼드는 PGA투어에서 경기할 수 없었다. 시퍼드는 프로 경력의 초창기를 PGA투어에 합류할 수 없는 흑인 선수들이 만든 UGA(United Golf Association) 주최 대회에서 보냈다. 시퍼드는 12년간 경기하며 니그로내셔널오픈에서만 6차례 우승하는 등 UGA 대회에서 총 11회 우승을 거두는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다.

시퍼드가 흑인 선수 최초로 PGA투어에 합류한 것은 1961년부터다. PGA가 1960년까지 백인만을 위한 대회를 유지했으나 시퍼드를 최초의 흑인 선수로 받아들이며 인종의 벽이 무너졌다. 시퍼드가 흑인 선수 최초로 PGA투어 출전 자격을 얻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미 PGA투어 선수들과 경쟁에서 대등한 기량을 뽐낸 덕분이다. 시퍼드는 많은 PGA투어 선수가 출전했던 1957년 롱비치오픈에서 당당히 우승했고, 30대 후반이 되고 나서야 PGA투어에 합류한 뒤에도 1967년 그레이터하트포드오픈인비테이셔널, 1969년 로스앤젤레스오픈에서 우승하며 통산 2승을 남겼다.

시퍼드는 PGA투어에서 경기한 첫 번째 흑인 선수가 됐지만 그를 향한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았다. 오히려 10대 시절 받았던 차별보다 더욱 악랄해진 괴롭힘이 그를 따라다녔다. 대회에 나선 시퍼드가 평정심을 잃게 하기 위해 스윙을 하는 도중 이름이나 별명을 부르는 것은 일상이었다. 욕설하거나 인종차별적인 호칭을 외치는 것은 물론, 몸을 다치게 하겠다는 위협도 당했다.

하지만 시퍼드는 언제나처럼 시가를 물고 용감하게 클럽을 휘두르며 모든 차별과 싸웠고, 많은 재능있는 흑인 골퍼가 뒤를 이어 PGA투어에 합류할 수 있었다. 덕분에 시퍼드는 2004년 흑인 선수로는 최초로 골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2014년에는 백악관에서 대통령 자유훈장까지 받았고, 이듬해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는 지난 2009년 아들이 태어나자 찰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시퍼드를 향한 자신의 존경심을 담은 특별한 결정이었다. 우즈는 “시퍼드가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는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개척자다. 우리 모두는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오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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