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내뿜는 탄소중립 연료 '이퓨얼'의 비밀

안태호 2022. 5. 30.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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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이산화탄소' 합성한 이퓨얼
공기 중 탄소 포집해 순배출 '0' 달성
2050년에도 내연기관 차량 60% 존재
배터리·수소만으로 탄소 중립 어려워
경제성 확보 관건..현재 리터당 10달러
이르면 2040년 휘발유 가격 수준 하락

탄소를 내뿜는 탄소 중립 연료가 있다. ‘이퓨얼’(e-Fuel)로 불리는 재생합성연료다. 물을 전기분해해 얻은 그린수소(H₂)와 이산화탄소(CO₂)로 제조한 액체 연료다. 이퓨얼은 탄소 발생량을 줄이지는 못해도 더 늘리지는 않는다. 연소 과정에서 탄소가 배출되지만, 공기 중으로 날아가거나 이미 공기 중에 포함된 탄소를 잡아다가 만들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탄소 순배출이 ‘0’이 되는 것이다.

이퓨얼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연료가 탄소 중립에 필요한 수준을 넘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독일·일본 등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국들도 일찌감치 연구에 나서고 있다. 금방이라도 전기차가 도로 위를 점령할 것처럼 주목받고 있는 이때, 이퓨얼이 탄소 중립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일까.

■ 2050년에도 내연기관차량 60%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2035년까지 내연기관 차량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공약했다. 공약이 현실화하면, 도로 위를 달리는 모든 내연기관 차량이 사라질까? 그건 아니다. 자동차 회사들이 2035년부터 휘발유·경유차 등 내연기관 신차를 판매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기존 내연기관 차량은 그대로 운행된다. 중고차 시장에서도 거래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탄소 중립 시나리오에 따르면, 2050년 내연기관 차량 비율은 전체의 60%에 달한다.

항공기·대형선박·대형트럭 등도 걸림돌이다. 장거리를 운항해야 하는 이들 운송수단의 특성상 배터리 탑재 방식으로는 액체 연료 수준의 효율성을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뉴욕을 오가는 항공기는 편도 비행 때 연료 무게만 총 중량의 절반인 약 150t에 이른다. 같은 수준의 에너지를 배터리에 담으려면, 지금의 기술 수준으로는 120배 무거운 1만9천t 무게의 배터리를 실어야 한다.

니켈·리튬 등 배터리 제조에 쓰이는 광물의 수급난도 이퓨얼의 필요성에 힘을 보탠다. 배터리는 전기차 가격의 30∼40%에 달해 배터리 가격 하락이 전기차 보급 속도의 열쇠를 쥐고 있다. 당초 배터리 가격이 하락하면서 전기차 보급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봤지만, 그 예상이 빗나가고 있다. 최근 전 세계 완성차 업체 최고경영자들도 이를 경고하고 있다. 카를로스 타바르스 스텔란티스 최고경영자는 지난 10일(현지 시각) 미래 차 컨퍼런스에 참여해 “2025~2026년 전기차 배터리 부족 현상이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올리브 집세 베엠베(BMW) 최고경영자도 지난달 “배터리 원자재 가격이 계속 치솟고 있고, 설령 가격이 내려간다 해도 과거처럼 저렴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배터리 핵심 소재인 니켈 가격은 지난 3월 t당 4만5795달러(5880만원)까지 올랐다. 지난해 말 2만925달러의 두 배 이상으로 급등했다. 리튬 가격도 2020년 7월 ㎏당 34위안(6414원)에서 지난해 7월에는 80위안, 올해 1월에는 264.5위안으로 폭등했다. 지난 3월에는 472.5위안을 기록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정재우 한국자동차연구원 수석연구원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전기·수소차가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주요 수단이긴 하지만, 두 방식이 모든 수송분야를 커버할 수 없다”며 “상당 기간 존재할 내연기관 차량과, 전동화가 불가능한 영역에서 이퓨얼을 통해 탄소 중립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이퓨얼의 역할이 주목된다. 수송 동력원이 전력에만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천재지변·정전·전시 상황 등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에너지 안보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정부가 관용 차량을 수소·전기차 등 친환경 차량으로 전환한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군용 차량은 전환 대상에서 제외한 이유다. 배충식 카이스트(KAIST) 기계공학과 교수는 “에너지 안보는 에너지의 공급·활용 쪽에서 멈추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에너지원 다변화를 위해 배터리·수소와 함께 이퓨얼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수출경쟁력 위해 이퓨얼 연구 필요”

이런 이유로 유럽·일본 등에서는 정책적으로 이퓨얼 연구에 투자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항공기의 경우엔 배터리 방식의 운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이퓨얼 혼합 의무화 방안을 제시했다. 일본 정부도 지난해 6월 향후 10년간 이퓨얼 기술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2040년까지 상용화를 마치고, 2050년에는 이퓨얼 공급 가격을 휘발유 가격 이하로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기업들도 앞다퉈 나서고 있다. 독일 아우디는 2017년 이퓨얼 연구 시설을 설립했다. 자동차 연료인 이(e)-가솔린, 자동차·선박 연료인 이(e)-디젤 등 탄소 중립 연료 및 엔진을 실험하고 있다. 포르쉐도 지멘스와 함께 이퓨얼 생산 플랜트를 건설 중이다. 2026년 연간 5억ℓ 규모로 이퓨얼을 생산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일본 도요타·닛산·혼다도 2020년 7월 탄소 중립 엔진 개발을 위한 연구계획을 공개했다.

전문가들은 독일과 일본이 이퓨얼 분야에 빠르게 뛰어든 배경을 잘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유럽과 일본은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 강국이다. 이는 곧 엔진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의미다. 그간 쌓아온 엔진기술력과 새로 개발될 이퓨얼을 무기로 친환경 차 보급 속도가 느리고, 관련 인프라 구축이 더딘 시장을 공략하려는 포석으로 본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유럽이 주도적으로 탄소 중립을 이끌고 있고, 미국은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다음에 탄소 중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나머지 국가들은 탄소 중립과 관련된 선언을 하지 않았다”며 “한국은 수출과 해외 생산이 굉장히 중요한 나라로, 2035년부터 내연기관 차량 생산을 중단한다면 (수출 경쟁력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자동차 정책에 관여했던 정부 관계자도 환경정책과 수출 및 판매 전략은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독일과 일본이 이퓨얼에서 가장 앞서고 있다. 중국도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이퓨얼) 연구를 하고 있을 것”이라며 “국내 자동차 정책의 방향을 정할 때는 독일·일본·미국·중국을 늘 신경 써야 한다. 전 세계 자동차 생산 강국은 이들 나라와 한국을 포함해 5곳뿐이다. 4개 나라의 판매 정책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소 늦었지만 국내에서도 관련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퓨얼 연구의 필요성에 공감한 정부는 산업·학계·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연구회를 꾸려 지난해 4월부터 6차례 회의를 진행했고, 올해 1월 연구 보고서를 냈다. 곧 워킹그룹을 만들어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국내 기업들도 연구에 뛰어들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달 30일 사우디의 아람코와 이퓨얼 공동연구 협약식을 맺고 연구개발에 착수했다. 한국조선해양과 현대오일뱅크도 이퓨얼 연료 및 선박 개발에 나섰다.

다만, 아직 경제성이 확보되지는 않았다. 주유소에 들러 휘발유·경유를 구매하듯 이퓨얼을 손쉽게 얻으려면 저렴한 가격이 필수다. 현재 이퓨얼 가격은 ℓ당 10달러에 달한다. 수소 생산 비용이 큰 탓이다. 학계에서는 이르면 2040년, 늦어도 2050년이면 현재 휘발유 가격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본다. 한국화학연구원에 따르면, 2050년이 되면 ℓ당 0.94달러 수준에 근접할 것으로 예측된다. 배충식 교수는 “실제 이퓨얼 가격은 신재생에너지 및 원자력 기반의 수소 생산가격과 기술 개발 속도, 이산화탄소 가격 등에 좌우될 것”이라며 “배터리·수소·이퓨얼 모두 아직 경제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로, 서로 경쟁하며 탄소 중립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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