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인데..'청소년 참정권' 못 따라가는 학교

김민제 2022. 5. 30.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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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지방선거]교육감 선거, 학생 삶과 밀접한데
선거운동 중단 권유 등 권리 침해
정치 이야기 '쉬쉬' 분위기도 여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아트홀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3월 대통령 선거에서 생애 첫 투표권을 행사했지만 곧 있을 교육감 선거에서 한 표를 던지는 게 더 중요하게 느껴져요. 학생들의 삶에 가장 가까운 교육 정책을 다루는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왜 학생이라는 이유로 참정권을 제대로 못 누리게 하나요?”

대전 지역 한 고등학교 3학년 박준우(18)씨는 지난 19일 학교 교장실로 불려갔다. 3월부터 한 대전시교육감 후보 캠프에서 활동한다는 사실이 학교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는 학교의 권위적인 문화를 개선하는데 힘을 보태기 위해 선거운동에 참여하게 됐지만, 교장은 선거운동을 하며 학교명이나 전교회장을 맡고 있다는 것을 밝히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예 선거운동을 중단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권유도 이어졌다.

다행히 ‘2004년 1월생인 박준우는 만18세 이상의 국민으로 선거권이 있으며 (3월 기준) 선거운동도 할 수 있다’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15조 및 58조 등을 인지하고 있던 다른 교사들이 나섰다. 학교에선 그의 선거운동을 더이상 문제 삼지 않았지만, 억울함과 허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박씨는 2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엄연히 선거권과 의사를 표현할 권리를 가진 존재인데 그 권리를 존중받지 못한다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오는 1일 치러지는 전국 시도 교육감 선거는 학생 손으로 직접 교육감을 뽑는 첫 선거다. 2019년 12월 공직선거법 개정안 국회 통과로 선거 연령이 만19살에서 만18살로 내려가면서, 2020년 4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선거일 기준 만 18살이 된 청소년들이 투표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제8회 6·1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경우 2004년 6월2일에 태어난 사람까지 투표할 수 있기 때문에 고3 학생 가운데 상당수가 투표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2021년 12월에는 피선거권을 만 25살에서 만18살로 낮추는 법 개정이 이뤄지면서, 이번 지방선거부터 군의원 등에 직접 출사표를 던진 만18살 후보들이 등장했다. 여기에 정당가입 연령도 만16살로 내려가면서 청소년 참정권은 더욱 확대되는 모양새지만 이를 뒷받침할 학교의 변화는 더디다. 교육부는 지난 2월 학생의 정치활동을 제한하는 학칙을 정비하고 6월까지 학교 자체 점검과 개정을 마무리하라고 발표했다. 박씨의 학교는 이보다 앞선 지난해 12월 교외활동의 하나로 학생의 정치활동이 가능하도록 학칙을 개정했으나, 정치활동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학칙보다 더 큰 벽으로 작용했다.

교육 현장에서 정치적 민감성 등을 이유로 선거 이야기를 ‘쉬쉬’하는 분위기도 여전하다. 경기도 지역 고교 3학년 전지민(18)씨는 올해 1월 만18살이 되면서 투표권이 생겼고 대통령도 뽑아봤지만 여전히 선거가 낯설다. 그는 이날 <한겨레>와 통화에서 “수업에서 정치나 선거는 논외다. 입시 준비에 바쁘기도 하고 선생님도 정치나 선거 이야기를 조심스러워 한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의 정아무개(18)씨는 “지방선거를 통해 지방자치단체장·지방희회 의원, 교육감 등을 한꺼번에 뽑는지도 몰랐다”며 “수업할 때 언급이 안 되니 따로 시간을 내 선거 정보를 알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누리집에 각종 선거 안내서가 올라와 있지만 학생들은 이 사실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실에서 선거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교사들도 현실에선 학교장이나 학부모 반대 등 여러 제약에 부딪치고 있다. 충북 지역 한 고등학교에서는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학생들이 가상공약 만들기 활동을 진행했다. 이러한 활동을 지원한 교사 조아무개(39)씨는 “선거 교육을 하려면 공약을 살펴봐야 하는데 교사들은 공약을 다루는 과정에서 한 발언이 자칫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까봐 민감해 한다”며 “이러한 까닭에 후보들의 실제 공약을 다루는 대신 모의공약을 만들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도 지역 고교 사회 과목 교사인 김준민씨도 “선거가 사회에 참여하는 한 방식이자 중요한 의사결정임을 알려주려고 선거가 돌아올 때마다 수업시간에 선관위 누리집을 띄워놓고 학생들과 함께 우리 지역 후보자들을 소개하는 등 선거 수업을 하려고 한다”면서도 “민원에 취약한 직업 특성상 학부모 항의를 받으면 매우 곤란하다”고 말했다.

특히 2020년 1월 선관위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서울시교육청이 추진하던 모의투표에 대해 “국·공립학교 교원이 선거권이 있는 학생을 대상으로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 지지도를 조사하고 발표하는 것은 공무원 선거 참여를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86조에 위반된다”며 선거교육을 위축시킨 바 있다. ‘선거권이 없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 모의투표에 대해서도 “선거가 임박한 시기에 교원이 교육청 계획 하에 모의투표를 실시하는 것은 행위양태에 따라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해 선거법에 위반될 수 있다”며 막아섰다. 다만, 모의투표 대신 학생에게 후보자 공약을 객관적 기준으로 비교·분석하도록 하는 수준의 교육은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수(교육정책학)는 “학교에서 적극적인 선거 교육이 이뤄져야 학생도 비판적 사고력을 통한 시민성을 갖추고 확증편향적 사고를 할 위험도 줄어든다”며 ‘한국형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통해 선거 교육 가이드라인 마련해 학교와 교원에 제공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1976년 독일에서 학자와 교육 주체들이 모여 만든 정치 교육에 관한 합의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교사에 의해 강압적인 정치적 교화를 금지하고, 논쟁적 주제를 회피하지 않고 토론하고, 판단은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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