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21세기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김민규 충남대 동물자원과학부 교수 2022. 5. 3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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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충남대 동물자원과학부 교수

농업국가였던 조선시대에는 벼슬(정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농업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경제가 곧 농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민관(지방관)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권농(勸農)이었다. 다산 정약용도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목민관의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로 권농을 꼽았다. 농토를 개간하고 병해충을 막고 수리시설 등을 갖춰 백성들이 농업소득을 올리도록 독려하는 일, 그것이 훌륭한 목민관의 척도였다. 다산이 황해도 곡산의 수령으로 있던 시절 '응지농정소(應旨農政疏)' 즉, 임금이 질문한 농업문제에 대해 답변한 상소를 통해 농업이 피폐하고 소득이 오르지 않는 문제를 해결할 방안으로 '후농(厚農)·편농(便農)·상농(上農)'의 삼농(三農) 정책을 제시했다.

첫 번째의 후농(厚農)은 농업 소득이 후해야 백성들이 먹고살 수 있다는 뜻이다. 농사지으면서 후한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의 편농(便農)은 말 그대로 편하게 농사지을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손으로 모심고 벼 베고 지게로 져 나르기가 오죽 힘든 일인가. 따라서 기구 개발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요즘 용어로 표현하자면 농업 기계화다. 농사가 좀 더 편하면 소득증대로 이어질 수 있으니 이는 곧 후농과도 같은 개념일 것이다. 세 번째의 상농(上農)은 농민의 지위를 높이자는 의미다. 농민들은 농사지어서 천하고 선비는 그렇지 않아서 지위가 높다면 누가 농사를 짓겠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다산은 선비 역시 벼슬에 있는 시간 외에는 농업에 종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래야 농민과 선비가 평등해지고 더불어 농민들의 지위가 올라간다는 논리였다.

이러한 다산의 정책은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21세기 농업에도 투영되고 있다. 베이비붐세대의 은퇴와 청년 농업인의 도전으로 농업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인구가 증가하여 첨단지식과 기술을 접목한 가공·서비스, 공공 배달앱을 통한 신개념의 소비-유통망을 통해 화이트칼라 농업인이 육성되고 있다. 또한 기존 농업에 빅데이터, 5G 기술. 스마트폰 앱의 보급으로 농업이 첨단화되면서 농촌은 소득이 보장되는 새로운 힐링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산의 삼농정책과 정확히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농업은 기후변화, COVID-19, 전쟁 등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식량보호주의에 대비한 식량자원의 확보에 매우 중요한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한 애그테크(AgTech, Agriculture+Technology)의 연구개발(R&D)은 국가적 차원에서 집중적 지원해야 할 분야임이 틀림없다.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전자박람회 'CES 2022'는 단순 전시회를 넘어 앞으로 IT기술적용이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킬 산업을 보여주는 풍향계 역할을 한다. 올해 CES 2022에 애그테크가 대거 등장하며 주목을 받은 것은 인류의 식량위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CES 2022에 참여한 애그테크 기업들은 자양분이 들어간 물과 IT 패널,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으로 흙과 햇빛 역할을 대체하고, IoT(사물인터넷)와 로봇 등으로 일손까지 덜 수 있는 핵심기술들을 선보였다. 대표적인 것이 가정용 스마트팜과 도심형 수직농장이다. 가정용 스마트팜은 집안에서 농작물을 키울 수 있는 장치들이다. 인도의 알티팜은 집에서 채소를 키울 수 있는 소형냉장고나 와인셀러를 연상케 하는 스페이스박스를 선보였다. LG 전자도 와인셀러 형태의 스마트 식물재배기 '틔운'으로 이번에 CES 혁신상을 받았다. 제3의 녹색혁명이라고 불리는 도심형 수직농장은 작물재배시설을 아파트처럼 층층이 쌓아 올려 좁은 실내에서 농작물을 대량 생산해내는 시설이다. 언뜻 보면 농장이라기보다 공장에 가깝다. 국내 스타트업 엔씽도 참가해 모듈형 수직농장 '큐브'로 CES 혁신상을 받았다.

이처럼 오늘날 농업은 농민소득의 보장과 편의성, 그리고 안정성을 가진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나아가 국가안보와도 연관돼 있는 중요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21세기 제4차 산업혁명과 국민 먹거리를 책임지는 농업은 미래산업의 중심에 있음이 보다 명확해지고 있다. 다산의 농업사상은 오늘날까지도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이 아닌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200년 전부터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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