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표준어와 문화어의 싸움은 부질없는 일
현재 ‘표준국어대사전’ 등 많은 국어사전이 비표준어로 밝히고 있는 말 중에는 하루바삐 표준어가 돼야 할 것이 많다. 사람들이 너나없이 쓰는 말에 비표준어의 굴레를 씌우는 것은 우리말을 아끼는 일이 아니라 숨통을 죄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숨통이 막혀 있는 말 가운데 하나가 ‘흐리멍텅하다’이다.
‘흐리멍텅하다’는 우리말을 꽤 잘 안다는 기자들도 많이 쓴다. 신문과 방송에도 수시로 나온다. 하지만 국어사전들은 ‘흐리멍텅하다’를 ‘흐리멍덩하다’로만 써야 한다고 고집한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예전부터 ‘흐리멍텅하다’를 북한의 문화어(표준어)로 다루면서 ‘흐리멍덩하다’로 쓰도록 했는데, 지금도 ‘북한의 문화어’라는 설명만 뺀 채 여전히 ‘흐리멍덩하다’만 바른 표기로 삼고 있다.
이처럼 우리 국민이 흔히 쓰고 있는데도 비표준어로 다뤄지는 말 중에는 ‘북한의 문화어’라는 이유가 붙은 것이 많다. 한 뿌리에서 나온 말이고 우리 국민이 흔히 쓰는 말임에도 북한의 문화어라는 이유만 앞세워 비표준어로 고집하는 것은 옳지 않다.
북한의 문화어 중 우리 국민이 널리 쓰는 말에는 ‘미끌거리다’도 있다. “그렇다고 방어회처럼 기름져서 입천장이 미끌거리는 풍성한 맛도 아니었다” 따위 예문에서 보듯이 ‘미끌거리다’는 “미끄럽고 번드러워서 자꾸 밀리어 나가다”라는 뜻의 말로 흔히 쓰인다.
그럼에도 ‘표준국어대사전’을 비롯한 국어사전들은 ‘미끌거리다’를 ‘미끈거리다’로만 쓰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미끈’을 “미끈한 다리”나 “미끈하게 빠진 복고풍 승용차” 따위처럼 “흠이나 거친 데가 없이 부드럽고 번드럽다” “생김새가 멀쑥하고 훤칠하다” 등의 뜻으로 더 널리 쓴다. 즉 ‘미끈’과 ‘미끌’을 구분해 사용한다.
게다가 국어사전들이 ‘미끌거리다’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미끌미끌’은 인정하고 있다. ‘끔틀꿈틀’과 ‘꿈틀거리다’나 ‘흔들흔들’과 ‘흔들거리다’ 등을 모두 바른말로 삼고 있는 만큼 ‘미끌거리다’도 표준어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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