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이유 [삶과 문화]

2022. 5. 2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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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필수 능력 중에는 '소통'이 있다.

'공감하는 소통'도 중요하지만 '의사들끼리의 전문적 소통'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의사가 보통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근본적으로 소통이 가장 중요한 능력인 이유는 한 명의 의사가 모든 진료 행위를 끝까지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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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의사의 필수 능력 중에는 '소통'이 있다. '공감하는 소통'도 중요하지만 '의사들끼리의 전문적 소통'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정확히는 자신이 진료한 환자를 의료계의 언어로 다른 의료진에게 공유하는 능력이다. 이 소통은 의료인에게 필수이자 의학 그 자체이기도 하다.

본디 소통과 전달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가령 쓰러진 행인을 발견한 다른 행인은 이렇게 신고한다. "사람이 쓰러졌어요. 큰일 났어요." 시민의식이라는 본질에는 합당하지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누군가 물리적으로 누워 있다는 사실밖에 없다. 언어의 한계는 곧 세계의 한계다. 의료계의 언어를 습득한 사람은 객관적으로 상태를 파악할 수 있게 전달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과학적으로 정의된 용어와 정해진 흐름이 필요하다.

의학계는 동일한 소통 체계를 사용한다. 환자의 연령과 성별, 주 호소 내용, 기저 질환과 현 병력, 계통적 문진과 신체 검진 결과, 추정 진단 순이다. 병원에 내원했다면 검사 결과와 최종 진단, 치료 계획 등을 덧붙인다. 훈련된 의료인은 정확한 용어를 사용해 환자의 상태를 순서대로 기술한다. 차트를 작성하는 방식 또한 같다. 전달받는 사람이 환자를 직접 보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파악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이는 뛰어난 체계인 진단학과도 연결되어 있다. 현대 의학은 이 순서로 정보를 종합해서 의심되는 진단을 도출한다. 그러니까 기록은 진료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 체계가 익숙해지기까지는 많은 교육을 필요로 한다. 우선 기본적 의학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또 용어의 정의와 정확한 용례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현장에서 보고할 수 있도록 언어적 유창함도 필요하다. 의과대학의 교육은 이 소통에 큰 방점을 둔다. 학생이나 수련의가 진료한 환자에 대해 발표하고 교수를 포함한 수많은 의료진은 회의실에 모여서 듣는다. 전달 능력을 배양하는 동시에 의학적인 사실을 바로잡아 동일한 체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 교육 방식이다.

처음 교육받을 때는 최대한 생략 없이 환자를 기술한다. 서술 흐름에 친숙해지고 정확한 진단을 고민하기 위해서이다. 경험이 쌓일수록 내용을 간결하게 다듬으며 요점만을 정확히 전달한다. 의사는 다양한 경우에 있어 이 소통을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의사가 보통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의학계 용어를 최대한 원어로 사용하는 편이 정확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세계의 학자와도 소통이 자유롭다. 또 공통된 정의와 사고 체계는 의학 발전에 대단한 기여를 한다. 동일한 체계를 바탕으로 연구 결과를 공유하거나 반론을 제시하는 것은 과학의 기본 토대가 된다.

근본적으로 소통이 가장 중요한 능력인 이유는 한 명의 의사가 모든 진료 행위를 끝까지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명의 주치의가 평생을 담당하던 일은 중세 시대에서 끝났다. 수많은 의사는 각자의 전문 지식과 병원에서의 업무가 다르다. 서로가 정확히 소통하며 도움을 주고받아야 최선의 진료를 이끌어 낼 수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한 명의 의료인을 만나도 그 의료인이 체계에 접근할 수 있기에 다른 의료인에게 연속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지금 세상에는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이 없다. 우리가 '알아듣기 어려운 언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모두가 같이 당신을 정확하게 돕기 위함이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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