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중심 공급망 재편·공급자 우위 에너지..모든 방향이 '고비용' 가리켜[돌아온 인플레이션 ④]

이윤주 기자 2022. 5. 29.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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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저탄소를 달성하기 위한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 인구 감소, 지정학적 위협 등이 겹치면서 글로벌 물가가 요동치고 있다. 세계는 당분간 인플레이션 시대를 살아야 할지 모른다.
탄소중립 전환 따른 원유값 상승
우크라 전쟁에 에너지 시장 재편
경제 전체에 ‘고비용’ 내재화

코로나19 사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겹치면서 전 세계가 한동안 잊고 지냈던 고물가의 고통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현재 관심은 치솟는 물가상승률이 언제 꼭대기를 찍고 내려오는가에 쏠려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물가가 내려오기 시작한다고 해도 하강 속도는 예상보다 느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탄소중립으로의 전환, 세계화의 후퇴 등으로 국제 정치·경제 질서가 새롭게 짜여지고 있어서다. 여기다 인구변화도 고려해야 한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 인구가 감소하면서 세계는 앞으로 값싼 제품을 공급받기가 점점 더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저비용·고효율’ 시대가 끝나고 ‘고비용·공급안정’의 뉴노멀 시대가 열리는 것일까.

■ 탄소중립, 값싼 전환은 없다

이상기후에 대처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과제가 됐다. 각국은 탄소중립 목표에 맞춰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을 구체적인 정책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탄소중립 전환 비용은 예상보다 값비싼 청구서를 내밀고 있다. 재생에너지의 공급은 아직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데다, 화석연료 사용 비중을 줄이는 과정에서 원유 생산에 대한 투자도 줄어들어 위기 국면에서 생산량을 늘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원유, 천연가스 등의 에너지 가격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37개 회원국 평균 에너지물가 상승률은 지난해에 15.5% 상승했다. 코로나19로 에너지 공급이 여전히 어려운 상황에서 거리 두기 완화로 소비수요는 빠르게 회복됐기 때문이다. 에너지정보청(EIA) 및 주요 투자은행(IB)들은 브렌트유의 배럴당 가격이 올해 102~103달러, 내년에도 91~92달러 수준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엑손모빌 등 주요 석유기업들은 투자를 계속 줄이고 있다. 코로나 이전까지 저유가 기조가 이어져온 데다 탄소중립정책 강화 등으로 원유생산을 늘릴 이유가 없어졌다. 한은은 “최근 ‘석유수출국기구(OPEC)플러스’의 원유 감산규모 축소 과정에서 실제 생산량이 목표에 미달하고 있는데 이는 글로벌 석유기업들이 화석연료에 대한 수요 감소 전망 등으로 그동안 투자를 축소해왔기 때문”이라며 “미국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시추에 필요한 노동력과 장비가 부족한 상황으로 단기에 생산량을 크게 늘리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공급은 줄어드는 반면 친환경 시설 투자가 동반되면서 원자재 수요는 더 뛰고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는 과정에서 관련 시설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고, 전기차 판매도 크게 늘고 있다. 이에 따라 구리, 니켈, 알루미늄 등 각종 금속 원자재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2020년 재생에너지 발전에 대한 투자는 3588억달러로 전체 전력 부문에 대한 투자의 46.1%를 차지했다.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따르면 2030년 비철금속의 평균수요는 금속 종류별로 2010년의 2~6배씩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나원준 경북대 교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에너지 시장이 ‘공급자 우위 시장’으로 바뀌었다”며 “‘간헐성’을 특징으로 하는 재생에너지는 안정적 공급이 어렵기 때문에 앞으로도 에너지 가격이 올라갈 가능성이 높고, 경제 전체에 ‘고비용’이 내재화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로 공급망 취약 확인
원자재·식량·에너지 탈세계화
물가 상방 압력 요인으로 작용

■ 세계화가 저물고 있다

지난 22~26일(현지시간) 열린 다보스포럼은 ‘전환점에 선 역사’를 주제로 했다. 포럼을 앞두고 세계 기업 경영 지도자들과 투자자들은 세계화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비교우위와 최소 비용을 미덕삼아 경제질서를 주름잡아온 ‘세계화’가 급격히 후퇴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신 원자재·식량·에너지 등의 안정적 수급을 위해 문을 걸어잠그는 ‘탈세계화’ 및 ‘경제안보’가 강화되고 있는데 이 역시 물가에는 상방 압력을 더하는 요인이다. 에어버스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도미니크 아삼은 “세계화가 주도했던 수십년간의 의미있는 생산성 향상이 단기간에 역전되고 있다면 이는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리고 심각한 장기간의 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 통계를 보면 전 세계 수출입 금액의 합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낸 세계 무역개방도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8년 61.32를 정점으로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해 코로나 발생 첫해인 2020년 51.11까지 낮아졌다.

코로나 사태는 가치사슬이라는 이름 아래 흩어져있던 공급망 구조가 위기에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줬다. 탈세계화 흐름에 가속도를 붙이는 계기가 됐다. 각국은 적시 공급을 통해 비용을 최소화하는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 전략에서 비용이 더 들더라도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는 ‘저스트 인 케이스(Just in case)’ 전략으로 노선을 변경하고 있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중국을 필두로 신흥국의 산업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신흥국 생산·선진국 소비’의 성장 모델이 한계에 봉착했고, 선진국의 자국 우선주의 기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선진국의 리쇼어링(생산시설의 자국 이전) 등으로 선진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데이터 분석업체인 센티에오에 따르면 올 1분기 실적 발표와 콘퍼런스콜 동안 니어쇼어링(자국 인접국으로 생산시절 이전), 온쇼어링(해외진출 기업의 자국 복귀), 리쇼어링 등에 대한 언급이 2005년 이후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나원준 교수는 “공급망이 재편되고, 첨단 전략 산업을 중심으로 주요국의 보호무역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면서 “탄소중립, 공급자 우위의 에너지 시장, 세계경제의 블록화 등은 중장기로는 인플레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 중간재 등 대외의존형 경제
물가 상승 때 취약계층 부담 가중
위기에 구조적 변화 대비해야

■ 한국, 구조적 변화 대비해야

한국은 세계화로 수혜를 입어온 대표적 국가다. 정보기술(IT) 제조 강국으로 거듭나면서 세계 각지에 생산기지를 뒀다. 원자재를 수입한 뒤 재가공해 파는 비중이 높아 공급망 차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유엔무역개발협의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국의 중간재 수출 비중은 71.4%로 세계 평균 56.5%를 15%포인트 가까이 웃돈다.

특히 최대 교역상대국인 중국 수출에서 지난해 소비재 비중은 3.8%에 불과하지만, 중간재 비중은 80.6%로 압도적이다. 에너지나 곡물의 대외 의존도 역시 높고, 블록화에 따라 미·중 사이에서 어느 진영 옆에 서야 할 것인지 앞으로 어려운 선택지를 받아들 가능성도 높은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4일 세계가스총회(WGC)에 참석해 “최근 에너지와 원자재 수급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날로 증대되고 있다”며 “수입선 다변화로 자원 비축을 확대하는 한편, 민간이 중심이 되어 해외 투자의 활력을 높이고 해외 자원 개발에 관한 산업 생태계를 회복해 나가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물가가 예상보다 길게 오름세를 나타낼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취약계층의 부담이 가중될 것에도 대비할 필요가 커졌다. 나 교수는 “한국은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한 데다, 물가가 오르면 노동자 가구들을 중심으로 생계비용이 극도로 부담이 될 수도 있다”면서 “임금 보전을 받기 위한 요구가 거세지면서 사회 갈등이 격화하고, 경기도 꺾이는 등의 위기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 시리즈 끝 >

이윤주 기자 run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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