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윤창호법

차준철 논설위원 2022. 5. 29.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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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서울 시내에서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국내에 운전면허 제도가 도입된 것은 1908년이었다. 음주운전 단속은 1914년부터 시작됐다. ‘마차 취체(取締·단속) 규칙’이 근거인데, 그 14조는 “마부 등은 만취해 영업하거나 승객 등에게 난폭한 언행을 하면 안 된다”고 규정했다. 규칙을 어기면 구류나 과료 처분을 받았다. 지금과 같은 경찰의 음주운전 단속은 도로교통법이 제정·시행된 1962년부터 등장했다. 면허정지 처분을 내리는 음주 단속기준이 혈중알코올농도 ‘0.05% 이상’으로 50여년간 유지되다 2018년 ‘0.03% 이상’으로 강화됐다. ‘도로 위 살인 행위’ 음주운전을 엄벌해야 한다는 사회의 공감대가 반영된 것이다.

2018년 9월, 군 복무 중 휴가 나온 윤창호씨(당시 22세)가 부산 해운대구에서 인도로 돌진한 음주운전 차량에 들이받히는 참변을 당했다. 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81%였고, 윤씨는 사고 46일 뒤 숨졌다. 음주운전이나 음주측정 거부를 반복한 운전자를 가중처벌하도록 하는 이른바 ‘윤창호법’(도로교통법 개정안)이 만들어진 계기다.

지난주 윤창호법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와 파장이 일고 있다. 지난해 11월, 반복된 음주운전에 대한 가중처벌이 위헌이라고 결정한 데 이어 최근 음주측정 거부 전력이 있는 사람을 가중처벌하는 것도 위헌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10년 이상 된 ‘오래전 범죄’까지 재범에 포함시켜 처벌하는 것은 과도하며, 또 죄질을 일률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이다. 입법 당시에도 과잉이라는 지적이 없진 않았지만 여론의 지지가 높았던 법이 위헌이라니 당혹스럽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음주운전 사고자 중 재범 비율은 4.7%로 윤창호법 시행 이전인 2018년보다 늘었다. 가중처벌 조항이 서슬 퍼렇게 발동해도 음주운전 상습범이 줄지 않았다는 말이다. 용케 단속이나 사고를 피하면 습관적으로 저지르게 되는 것이 음주운전 범죄의 특징이다. 헌법재판소의 취지는 과잉처벌을 금지하고 재범 기간 등 법 규정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체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지난해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206명이 사망하고 2만3653명이 다쳤다. ‘윤창호’라는 이름이 잊혀서는 안 된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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