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수평적 연구문화가 절실한 이유
유럽연합(EU)의 소속 국가들과 함께 하는 국제공동연구에 참여해 새로운 연구 경험을 쌓는 과정에서 몇 가지 느낀 점이 있었다. 예를 들어본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연구소, 기업, 대학 등과 국제공동연구를 하면서 느낀 차이점은 연구 문화의 차이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수평적인 연구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유럽의 워크패키지(Work package) 중심 연구수행이 눈에 들어온다. 연구의 주요 내용별로 여러 개의 워크패키지를 구성해 리더를 중심으로 수행한다. 하나의 연구과제에 여러 명의 리더가 있고 이들이 독립적으로 소주제의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다. 독립적이기는 하지만 상호 협력 관계가 있어 최종 목표의 달성이나 성과확산 등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 연구수행도 대부분 주기적인 토론과 회의를 통해 진행한다. 우리 연구진은 토론 중심의 회의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가 영어도 능숙하지 못해 과제수행 초기에는 유럽의 연구자들이 회의를 주도하였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국내 연구진도 빨리 적응해 적극적인 회의 참여가 이루어졌다. 특히 젊은 연구원들은 실전을 통한 실력이 두드러지게 향상되었다.
이와 달리 국내의 연구수행은 총괄책임자의 지휘 하에 일사불란하게 최종 목표를 위한 수행이 이루어지는 수직적인 연구 문화에 기반하고 있다. 이것이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하는 면에서 장점이 될 수도 있으나 유럽 수행 방식인 여러 워크패키지 리더들의 다양성에 기반한 창조, 혁신 등의 측면에서는 보완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다음으로 토론 중심의 평가 방식을 주요한 차이점으로 들 수 있다. 우선 평가자들이 연구자들과 토론을 할 수 있는 전문가다. 게다가 평가는 보통 하루 일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질문, 답변, 의견 교환은 향후 연구수행의 나은 방향을 제시하기에 적합하다.
과제가 일단 선정되었다면 평가의 기능은 연구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투입된 연구비를 잘 활용하는 방안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평가 방식도 점수를 매기고 서열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연구수행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조정이 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국제공동연구를 통해 몇몇 차이점을 보았지만, 국적이나 인종을 넘어서는 연구자로서의 동질성도 느꼈다. 이를 다른 말로 과제 성공을 위한 '집념'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보통 과제 제안을 통해 수행 기간 전체에 대한 실행계획을 준비한다. 막상 주요한 마일스톤이 다가올 때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지난해 말 필자 연구실의 상황을 돌이켜보면, 예정된 시연 날짜가 다가오는데 유럽의 테스트베드와 국내를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연결이 되지 않고 있었다. 시연이 불과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비상이 걸렸다. 이렇게 지연이 발생한 이유를 찾자면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발생한 여러 제약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었다. 우리 연구진은 유럽 파트너의 실행계획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고 유럽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과적으로 3년 동안 준비한 시연이 이루어지지 못할 위기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시연 하루 전에 극적으로 네트워크 연결이 이루어졌고 예정된 시연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 오랜 기간 준비한 서비스를 하나라도 더 보여주겠다는 모든 연구진의 의지와 집념을 느낄 수 있었다. 과제 성공에 대한 열정은 동서양의 구별이 없음을 보았다.
국내의 연구를 수행하는 방식은 오랜 기간 개선을 거듭해온 것이기에 필요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여전히 완성형이 아닌 진행형이다. 연구 과정에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적용함으로써 보다 효율적이고 감동을 주는 연구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수평적인 연구 문화를 가능케 할 연구수행 시스템으로 한 단계 높일 수 있다면 국제공동연구를 통해 얻은 우리의 느낌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교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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