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글로벌 오피니언리더] 日적군파 "나는 테러범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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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극좌 테러조직 '일본 적군'(赤軍)의 최고 간부가 20년 복역을 마치고 출소하면서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라고 강변했습니다.
29일 TV아사히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적군'의 공동 창립자인 시게노부 후사코(重信房子·사진 왼쪽·77)가 지난 28일 20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면서 수기를 공개했습니다.
'일본 적군'은 일본 좌파 무장조직 '적군파'(赤軍派)의 한 분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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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극좌 테러조직 '일본 적군'(赤軍)의 최고 간부가 20년 복역을 마치고 출소하면서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라고 강변했습니다.
29일 TV아사히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적군'의 공동 창립자인 시게노부 후사코(重信房子·사진 왼쪽·77)가 지난 28일 20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면서 수기를 공개했습니다. 회고록 형식의 수기에서 그는 과거 테러 사건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그는 "우리 자신의 전투를 우선시함으로써 우리는 낯선 사람들과 무고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혔다. 이 기회에 사과드린다"고 밝혔습니다.
또 그는 무장투쟁 노선이 잘못됐다는 점도 인정했습니다. 그는 "당시엔 혁명, 정의, 대의를 위해서라면 어떤 전술이든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투쟁했었다"면서 "테러에 대한 자각 조차도 없었다"고 썼습니다. 특히 그는 "경찰의 일방적인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혁명에 참여한 사람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의도를 잘 읽어냈으면 좋겠다"면서 "나는 결코 나 자신을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일본 적군'은 일본 좌파 무장조직 '적군파'(赤軍派)의 한 분파입니다. 적군파 출신인 시게노부와 교토(京都)대 학생운동 그룹 '교토 파르티잔'의 핵심멤버 오쿠다이라 쓰요시가 71년 2월 창설했지요. 그들은 해외에 혁명거점과 동맹군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일본을 떠났습니다 1970년대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과 손잡고 국제 테러에 나섰습니다. 그 사이 일본 내 적군파들은 1972년 2월 '아사마산장 사건'으로 와해됐습니다.
시게노부는 20년 넘게 붙잡히지 않다가 2000년 11월 오사카의 한 호텔에서 체포됐습니다. 그는 20년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는 체포됐지만 나머지 7명의 회원은 아직 검거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제 그들은 모두 70대가 됐습니다.
시게노부는 일본 패망 직후인 1945년 도쿄(東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른바 '대동아전쟁' 때 만주에서 소령으로 복무했습니다. 그는 고교를 졸업한 뒤 유명한 간장업체 기코만 사에서 공원으로 일하며 메이지(明治)대 야간학부에 입학해 역사와 정치경제학을 공부했습니다. 일본 좌파 학생운동의 전성기였던 60년대, 그는 노동자 출신이라는 '신분'과 지도력으로 금세 리더로 부상했다고 합니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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