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美의 대만 정책..韓은 준비돼 있나[윤홍우의 워싱턴24시]
미국내서도 정책 변화 지지 목소리
한미정상회담 '대만해협 평화' 명시
주한미군 역할 변화 등 국내도 영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말실수를 많이 하기로 유명하지만 같은 실수를 세 번이나 반복했다면 그 말은 진심이 아닐까 곱씹어봐야 한다. 그가 이달 23일 미일정상회담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국 침공 시 대만에 군사개입을 하겠다고 답한 것을 두고 미국 언론과 외교 전문가들이 ‘고의적인 실수’라고 분석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8월 ABC 방송 인터뷰에서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상호방위조약 5조를 언급하며 “일본·한국·대만을 보호할 것”이라고 했다. 그해 10월 CNN 타운홀미팅에서는 ‘중국 침공 시 대만을 지키러 갈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 우리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답했다. 그때마다 베이징이 발끈하고 백악관은 진화에 나서는 모습이 반복됐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런 말실수가 고의에 가깝다고 보는 것은 최근의 국제 정세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이코노미스트의 이코노믹인텔리전스유닛(EIU)은 올 3월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세계 지정학적 질서가 바뀌는 ‘결정적 순간(defining moment)’이라고 명시했는데 이는 미국이 더 이상 다른 패권 국가들을 압도할 충분한 억제력이 없다는 의미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설계자인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같은 이유를 들어 미국이 대만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을 이제는 끝내야 할 시점이 왔다고 주장한다. 그는 미일정상회담 직전인 4월 말 해외 기고를 통해 “대만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은 미국이 이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고 군사력에서 중국이 미국에 크게 못 미칠 때는 잘 작동했다”면서 “그런 날들은 끝났다. 미국의 모호한 정책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불안정성을 조장한다”고 밝혔다.
아베 전 총리의 이런 인식은 미국 내에서도 이미 확산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 대통령의 말이) 실수라는 외교적 수사를 믿지 말라”면서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새로운 규칙이 적용된다는 점을 감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NYT는 특히 1950년 미국이 한국을 방어선에서 제외한 ‘애치슨라인’을 거론하며 미국이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미 의회에서도 ‘전략적 모호성’을 파기하는 듯한 바이든 대통령의 ‘말실수’를 공개 지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밥 메넨데스 상원 외교위원장은 “바이든 대통령의 말이 옳다. 믿을 수 있는 억제는 용기와 명료성을 모두 요구한다”고 밝혔다.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도 “공산주의 중국에 맞서 대만을 방어할 것이라는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은 옳은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 외교가는 이 같은 일련의 상황들을 결국 미국의 대만 정책이 변해가는 ‘과정’이라고 보고 있다. 단시일 내에 ‘하나의 중국’ 원칙을 번복하지는 않겠지만 대만을 ‘고슴도치’처럼 무장시키는 미국의 움직임은 빨라질 것이며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 수위는 거칠어질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강경한 중국 정책을 설계한 맷 포틴저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은) 전략적 명확성에 대한 공식적인 성명은 아니지만 중국은 우리를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사실상의 신호”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이 같은 변화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다. 한미 정상은 지난해부터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미국 측의 요청으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명시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북한군의 위협에 대비하는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까지 같은 문구가 포함됐다. 우리 정부는 일상적인 표현이라고 둘러대지만 이 문구에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데 있어 한국의 ‘안보적’ 역할을 늘리려 하는 미국의 속내가 반영돼 있다.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미국의 대만 정책 변화가 결국 주한미군의 역할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본다. 중국이 수년 내 대만을 침공한다면 주한미군을 붙잡아두기 위해 북한이 움직일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제기될 정도다.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명시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문구의 중압감을 우리 정부가 감당해야 할 시점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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