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기술주 급락-닷컴 버블 붕괴, 같고도 다르다

한겨레 2022. 5. 2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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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형 기술주들의 주가가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최근 소폭 반등하기도 했지만, 몇몇 종목은 분명 거품 붕괴라고 얘기해도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대표적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 넷플릭스 주가는 고점 대비 74% 떨어졌고, 전기차를 만드는 테슬라와 반도체 업체인 엔비디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최강자인 메타(페이스북)의 주가는 모두 50% 정도 하락했다. 기술주를 대표하는 나스닥 지수의 하락폭은 30%에 머물고 있지만, 불과 6개월 전까지만 해도 투자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던 주요 기업 주가가 50~70% 내린 것은 충분히 거품 붕괴로 볼 만하다. 때문에 이번 기술주 급락을 과거 2000년 닷컴 버블 붕괴에 비교하는 이들도 나타나고 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가 2000년 당시처럼 더 떨어질 것이란 주장이다.

일단 두 시기의 유사점이 많다는 점은 우려된다. 1996년 이후 거품이 꺼진 2000년 초까지는 세계적으로 인터넷 기술에 대한 기대와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를 맞는 희망이 맞물리면서 커다란 기술주 거품이 형성됐다. 이번에는 코로나19 이후 4차 산업혁명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인 비대면 기술에 대한 기대가 전자상거래, 오티티, 배터리와 전기차는 물론 가상자산(암호화폐) 관련 기업의 주가를 큰 폭으로 끌어 올렸다. 닷컴 버블 시기 대표 기업인 시스코와 텍사스인스투르먼트 등의 주가가 단기간에 6~7배 올랐다면, 이번에는 테슬라와 엔비디아 주가가 각각 15배, 6배 올라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유동성 공급 측면에서는 오히려 이번이 더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닷컴 버블 시기에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각국의 외환위기를 이유로 기준금리를 1998년 9월 이후 총 0.75%포인트 인하했지만, 코로나19 이후에는 그보다 훨씬 큰 2%포인트의 금리 인하가 단행됐다. 4조달러에 이르는 연준의 양적 완화도 단기간에 실시됐다. 게다가 과거에는 상황이 안정되자 인하를 시작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1999년 6월부터 기준금리를 인상했지만, 이번에는 인상의 시점을 놓쳐 당시보다 더 높은 물가가 빠른 긴축을 재촉하고 있다. 이런 점은 이번에도 기술주가 과거처럼 길고 고통스러운 하락과 횡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이번 기술주 급락이 닷컴 버블 시기처럼 처음 오르기 시작했던 시점 정도로 주가가 되돌아가고 장기간 박스권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는 판단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당시에 비해 지수의 오름폭 자체가 작았기 때문이다. 2020년 3월 저점부터 지난해 11월 고점까지 나스닥 지수의 상승폭은 134%였지만, 닷컴 버블 당시 1998년 저점부터 2000년 고점까지 상승률은 255%에 이른다.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채무이행 유예)에 의해 증시 급락이 있었기 때문에 이후 상승률이 더 높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코로나19라는 사건이 있었고 두 사건의 증시 충격은 공교롭게도 35% 안팎으로 비슷했다.

닷컴 버블 당시 나스닥 지수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의 고점이 170배를 넘었던 반면, 이번에는 고점에서도 30배 정도였다는 점 역시 다른 부분이다. 현재 대형 기술주들의 단기적인 실적 가시성은 매우 높다는 얘기다. 게다가 애플 등 초우량 기업들의 주가수익비율은 주가 하락으로 20배 안팎에 머물고 있다.

불확실성은 남아 있다. 앞으로 경기가 침체 국면에 들어갈 경우에는 주가가 더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기의 주가 하락률은 30%를 넘어서는 게 일반적이고, 변동성이 큰 나스닥 지수는 50% 이상 떨어지기도 한다. 지금처럼 30% 하락한 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는 얘기다. 닷컴 버블 시기에도 2001년 상반기부터 2년간 생산과 소비가 모두 역성장하는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이번에도 내년 이후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면 증시 역시 더 하락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를 예단할 필요는 없다. 작았던 거품의 크기와 이미 내린 가치평가지표 이외에도 미국의 소비와 생산이 아직은 탄탄하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비관하기보다 물가와 경기 상황을 면밀히 검토해 대응해야 할 시점이다.

SK증권 지식서비스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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