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날레란 무엇인가" 되물어라

한겨레 2022. 5. 2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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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제주의 역사자연유산을 콘텐츠로 활용한 1회 제주비엔날레의 알뜨르비행장 프로젝트 전시 풍경. 최평곤 작가의 대나무 조형물 ‘파랑새’가 보인다. 제주비엔날레 제공

[서울 말고] 이나연 | 제주도립미술관장

김영민 교수는 유명한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에서 “정체성을 따지는 질문은 대개 위기 상황에서나 제기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정체성에 관한 대화는 자유를 선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과연 그러한가 실험해보고 싶을 때가 있다. 미술관에서 일하는 내내 ‘비엔날레’에 관한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기 때문에, 미술관에 “존재규정을 위협할 만한 특이한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간주해, 이 근본적인 정체성 질문을 던져보고 싶어진다. 진짜다.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일한다고 하면 10명 중 7~8명은 “제주비엔날레는 어떻게 되고 있나요?”라고 묻는다.

제주비엔날레는 무엇이고, 비엔날레는 무엇인가? 비엔날레 자체보다, 미술관보다, 잘 알려져버린 제주비엔날레는 어떻게 지금의 유명세를 얻게 되었는가? 우선 비엔날레는 ‘2년마다’라는 뜻을 가진 국제현대미술전시로서 지금 이탈리아에서 성황리에 열리고 있는 125년 전통의 베니스비엔날레가 그 조상이다. 한국에선 1995년 국가 차원의 지원을 받으며 광주비엔날레가 최초로 개최됐다. 이후 부산비엔날레, 대구사진비엔날레,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 창원조각비엔날레, 청주공예비엔날레 등이 잇따라 열리면서 한국의 비엔날레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미술행사의 대명사가 됐다. 그 분위기에 편승해 제주비엔날레도 2017년에 다소 늦게 제주도립미술관이 주관하면서 탄생했다.

별도 조직위원회 없이 미술관이 주관하는 비엔날레가 있는가 묻는다면, 있다. 한국엔 서울시립미술관이 미디어시티서울이라고 명칭을 바꾼 비엔날레를, 대전시립미술관이 대전비엔날레를 주관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 잘 알려진 휘트니비엔날레가 휘트니미술관을 중심으로 치르는 유서 깊은 행사이고, 후쿠오카트리엔날레와 뉴뮤지엄트리엔날레가 각각 미술관 주도로 3년에 한번 열린다. 따라서 미술관이 비엔날레를 개최하는 것 자체가 특이하진 않다.

문제는 여건이다. 비엔날레를 개최할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가는 행사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전시를 개최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전문인력이 모여 있기 때문에, 제주도립미술관이 제주도가 비엔날레라는 행사를 개최하기 위해 최우선으로 고려할 수 있는 기관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술관의 고유 업무를 처리하는 데도 인력부족이 가장 문제였던 상황에서, 비엔날레라는 대형 행사를 충분한 사전준비 없이 치르면서 온갖 잡음이 생기고 말았다. 무리했던 첫 제주비엔날레는 결국 소송으로 얼룩졌고, 2회 제주비엔날레 역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잠정 연기됐다가 결국 예산 미반영으로 취소됐다. 제3회 제주비엔날레가 오는 11월에, 2년 만이 아닌 5년 만에 열리게 된 이유다. 그러나 비엔날레 같은 대형 행사를 치르는 과정에서 이런 사건사고가 흔한 것인가 묻는다면, 그렇다. 베니스비엔날레도 1차 세계대전으로 취소된 기간이 있고, 정권의 정책 취지에 부합되지 않은 기간에도 열리지 않은 바 있다. 부산비엔날레는 2015년 파행운영으로 집행위원장이 사퇴했고, 코로나 상황에도 행사를 치르려던 2021년 광주비엔날레는 전 재단 대표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시끄러웠다.

어떤 행사가 역사를 만들어가며 추진되는 과정에는 늘 수많은 사건사고가 생기기 마련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엔날레를 개최해야 하는 이유가 명확하다면 추진해야 한다. 제주비엔날레의 경우, 지금껏 단 한번도 제대로 치러지지 못했으므로, 이제는 그간의 시행착오를 반면교사 삼아 잘 치러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대의를 모았다. 대규모 국제미술행사를 치를 여건을 갖춰나가는 과정이었다고 겸허하게 지난 시간을 받아들이고, 제주가 가진 여건 안에서 최대한의 역량을 보여줄 시간이다. “현대미술 실험의 장”이라는 비엔날레 원래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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