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온 베이스 윤희섭 "우리 관객 수준 높아져서 놀랐다"

양형모 기자 2022. 5. 29. 17:1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6월 17~19일 '리골레토' 스파라푸칠레로 관객 만나
20년 간 유럽에서 1000회 이상 오페라 작품 출연
지난해 귀국 후 국내 무대 "다양한 활동 보여줄 것"
“우리나라 클래식 관객 분들의 수준이 굉장히 높아졌습니다.”

성악가 윤희섭(46·한양대·명지대 겸임교수)은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20년 가까이 활동하다 지난해 귀국했다. 독일 함부르크 국립극장 전속 솔리스트, 카셀 국립극장 전속 솔리스트 등 화려한 경력을 지니고 있으며 지금까지 1000회가 넘는 오페라 무대에 선 베테랑이다.

국내 활동을 시작한 그에게는 이미 오페라 출연 요청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만 해도 4월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모차르트 ‘마술피리’(자라스트로 역)에 이어 6월에는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에서 ‘스파라푸칠레’로 관객과 만난다.

6월 17일부터 19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리골레토’는 창단 31주년을 맞은 사단법인 글로리아오페라단의 제1회 대한민국 오페라 어워즈 대상 수상을 기념한 공연이기도 하다. 리골레토(바리톤) 고성현 김동섭, 질다(소프라노) 박미자 강혜정, 만토바 공작(테너) 정호윤 김동원 등 한국 최고의 오페라 가수들이 총출동한 무대이다. 스파라푸칠레(베이스)는 윤희섭 이준석, 두 명이 번갈아 무대에 선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명장 카를로 팔레스키가 지휘봉을 잡고 뉴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이끈다. 메트오페라합창단, 김순정발레단도 함께 해 베르디의 걸작을 국내 무대 위에 완벽하게 펼쳐 보일 예정이다. 예술총감독은 양수화, 연출은 최이순이 맡았다.

윤희섭이 맡은 스파라푸칠레는 군인이었다가 퇴역 후 자객이 된 인물이다. 많은 오페라 연출가들과 성악가들이 스파라푸칠레를 거칠고 험악한 인물(윤희섭의 표현에 따르면 백정의 이미지)로 그려 왔다. 하지만 윤희섭이 해석한 스파라푸칠레는 많이 다르다.

“사실 베르디는 스파라푸칠레에 대한 정보를 뚜렷하게 주지 않았어요. 결국 성악가는 연출가와 상의해 가사와 음악을 갖고 캐릭터를 분석해야 합니다.”

주인공인 리골레토는 궁정광대로 호색가인 만토바 공작의 엽색행각을 앞장서서 돕지만 자신의 딸(질다)은 공작의 눈에 띄지 않도록 숨기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윤희섭은 스파라푸칠레에게서 ‘집행자’의 모습을 끌어냈다. 덕분에 스팔라푸칠레는 이 작품이 지닌 풍자와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드러내는 데에 매우 중요한 인물로 기능하게 됐다. 스파라푸칠레가 비록 돈을 위해 자객이 되었지만 한때 군인이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도 해석의 중요한 실마리가 되었다.

오페라가 뮤지컬과 다른 점 중 하나는 성악가의 파트에 따라 배역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은 그 역할에 합당하다면 어떤 배우나 맡을 수 있지만 리골레토는 바리톤, 만토바 공작은 테너로 정해져 있다. 그런 점에서 베이스 역인 스파라푸칠레는 윤희섭에게 매우 익숙한 캐릭터이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도 두 시즌이나 ‘리골레토’에 출연했다. 대구에서 연기한 ‘마술피리’의 ‘자라스트로’ 역시 그의 ‘편한 옷’이다. 이밖에도 바그너 ‘탄호이저’의 ‘란트그라프’, 차이코프스키 ‘오네긴’의 ‘그레민’, 베르디 ‘맥베드’의 ‘반코’ 등이 윤희섭이 다수 맡은 대표적인 배역들이다.

윤희섭은 이 중에서 ‘탄호이저’의 ‘란트그라프’를 애착이 가는 역할로 꼽았다. 독일의 바그네리안(바그너의 열렬한 애호가들을 지칭하는 말)들 중에는 윤희섭의 팬들이 많다. 이와 함께 베르디 ‘돈 카를로’의 필리페 2세도 윤희섭이 “너무나 사랑하고 좋아하는 역할”이다.

오페라는 대표적인 종합예술장르이다. 독창, 중창, 합창과 오케스트라가 빚어내는 거장들의 음악. 여기에 무용, 아크로배틱 등의 퍼포먼스에 조명, 무대장치가 더해져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예술작품’을 완성해낸다. 하지만 오페라를 감상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수 시간이 걸리는 긴 공연시간도 “빨리 빨리”를 외치는 현대인들에게 부담이 되지만 무엇보다 이탈리아, 독일 등의 원어로 노래와 대사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클래식 음악감상의 마지막 종착역은 오페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윤희섭의 얘기는 달랐다. “대구에서 마술피리를 하면서 놀란 것은 우리 관객들의 수준이 대단히 높아졌다는 점이었습니다.” 많은 오페라들이 원어의 벽을 낮추기 위해 노래는 원어로 부르더라도 대사는 한국어로 하는 경우가 많다. 관객들의 이해를 돕고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노래와 대사가 모두 원어였다.

“자라스트로의 대사를 다 하고 났는데 관객들이 너무 좋아하면서 박수를 치더군요. 순간 ‘어, 이게 뭐지?’ 했습니다. 관객들이 이 작품을 잘 알고 있었던 거죠.”

오페라를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는 노하우에 대해 윤희섭은 두 가지를 조언했다. 하나는 공연장을 찾기 전 오페라 작품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해두는 것. 모든 예술작품이 다 그렇지만 오페라야말로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리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캐스팅이다. 이번 ‘리골레토’도 그렇지만 보통 오페라 공연은 하나의 배역에 2~3명이 공동 캐스팅된다. 성악가에 따라 캐릭터에 대한 해석과 표현이 다르다. 이 재미를 알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오페라의 팬이 되어 버린다. 게다가 같은 작품이라고 해도 연출가에 따라 놀라울 만큼 다양하게 변주된다.

요즘은 성악가들도 클래식 음악만을 고집하지 않는 시대다. 성악가들이 대중가요, 팝, 크로스오버와 같은 다른 장르의 음악을 노래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보던 시대는 끝난 지 오래다. 1000회 이상 오페라 무대에 서 온 윤희섭의 생각은 어떨까.

“독일은 (클래식과 비클래식이) 확실하게 구분이 되어 있는 편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무엇보다 대중이 좋아하고 있고요. 저 역시 기회가 된다면 얼마든지 열린 마인드로 다가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윤희섭은 ‘음악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가 생각하는 음악의 본질은 ‘음악을 듣는 사람도, 음악을 하는 사람도 모두 행복하고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다. “하모니라는 말 자체가 화합”이라고 했다. 그는 “음악가는 음악을 하면서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직업이 아닐까”라고 되물었다.

6월 17일 개막을 앞두고 윤희섭은 요즘 연습에 매진 중이다. 오페라 공연은 A팀과 B팀으로 공연팀이 나누어질 경우 출연진의 인지도와 기량 면에서 두 팀 간 차이가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번 ‘리골레토’는 그렇지 않다. A팀과 B팀에 모두 최정상급 성악가들이 캐스팅됐다.

“공연 기간 중 언제 보셔도 즐겁고 좋은 시간을 보내실 수 있을 겁니다. 많은 분들께서 공연장을 찾아 성원해 주시고 사랑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오페라 ‘리골레토’는 6월 17일(금) 오후 7시 30분, 18·19일(토·일) 오후 3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을 올린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사진제공 | 글로리아오페라단

Copyright © 스포츠동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