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생존해줘서

한겨레 2022. 5. 29.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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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밤엔 동네 실내포장마차를 찾았다 . 우리 동네 술전문가 동글이가 강추한 곳이다 . 마을 잡지에도 동네 맛집으로 소개돼 전부터 꼭 가봐야지 하고 벼르던 곳이기도 했다 . 모둠회 , 오징어볶음 , 달걀찜 등 주문한 안주는 역시 푸짐하고 맛깔스러웠다 . "전부터 꼭 와보고 싶었는데 , 코로나 때문에 미루다 이제야 왔어요 . 그동안 힘드셨죠 ?" 안주 맛에 연신 감탄하며 사장님에게 말을 건넸다 . "말도 못하게 힘들었지요 . 포차라는 곳이 원래 2차로 오는 곳이잖아요 . 그런데 영업시간이 9시 , 10시로 제한되니까 , 하루에 한두 테이블 겨우 굴러가는 날이 많았어요 . 월세도 감당 못해서 접을 생각도 여러번 했지요 ."

사장님은 잊지 않고 찾아주는 손님들이 고마워 안주 가격도 2년 전과 똑같이 받는다고 했다 . "물가가 무지 올라서 남는 것도 적지만 당분간은 안 올리려고요 . 다들 살기 힘든 시절이잖아요 ." 계산하면서 사장님께 진심을 담아 꾸벅 인사했다 . "엄혹한 시절 견디고 살아남아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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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사의 어쩌다 마을]

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장태희

[김여사의 어쩌다 마을]

“‘스며듦’이 문을 닫았나 봐. 불이 계속 꺼져 있네. 용케 버틴다 싶었는데 ….” 며칠 전 남편의 말이었다.

‘스며듦’은 우리 부부가 애정하는 동네 초밥집이다. 4년 전 개업 때 첫인상이 카페 같아서 인상적이었던 가게다. 남편이 요리하고, 아내가 서빙했다. 음식이 신선하고 정갈했다. 정성스레 대접받는 느낌도 좋았다. 한쪽에 비치된 부부의 그림일기장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애틋함, 찾아온 손님에 대한 고마움 같은 감정들이 진솔하게 담겨 있어서 더욱 마음이 갔다. 진심이 통했는지 단골도 늘고 테이블도 제법 차 보였다. 내 마음도 흐뭇했다. 그런데 어쩌나, 코로나 충격을 비켜 가진 못했나 보다.

지난 금요일 밤엔 동네 실내포장마차를 찾았다. 우리 동네 술전문가 동글이가 강추한 곳이다. 마을 잡지에도 동네 맛집으로 소개돼 전부터 꼭 가봐야지 하고 벼르던 곳이기도 했다. 모둠회, 오징어볶음, 달걀찜 등 주문한 안주는 역시 푸짐하고 맛깔스러웠다. “전부터 꼭 와보고 싶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미루다 이제야 왔어요. 그동안 힘드셨죠?” 안주 맛에 연신 감탄하며 사장님에게 말을 건넸다. “말도 못하게 힘들었지요. 포차라는 곳이 원래 2차로 오는 곳이잖아요. 그런데 영업시간이 9시, 10시로 제한되니까, 하루에 한두 테이블 겨우 굴러가는 날이 많았어요. 월세도 감당 못해서 접을 생각도 여러번 했지요.”

코로나 터졌을 때가 포차를 시작한 지 7년쯤 지났을 때였단다. 단골도 늘고 빚도 겨우 갚았을 무렵 코로나가 닥쳤다. 결국 다시 빚더미에 올랐다. “생활비는 소상공인 지원 명목으로 7천만원을 대출받아 해결했어요. 처음엔 이자가 2%였는데, 2~3년 지나니 3%대로 올라 부담이 만만치 않아요.” 먹는장사라 손님이 없어도 재료는 늘 꽉 채워 준비해야 한다. 해산물처럼 보관이 어려운 재료는 버리는 경우도 많아서 이중삼중으로 손해를 입었다. 사실은 저 대출로도 모자랐다. 300만원가량 하는 월세를 못 채울 때가 많았다. 다행히 직장 다니는 아들이 월세 절반을 보태서 버틸 수 있었다.

3월 이후 매출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지만 아직은 예전과 비교하면 매출이 60% 정도에 그친다. “전에는 다음날 새벽 5시까지도 손님이 있었는데, 요즘은 새벽 1시쯤이면 손님이 거의 끊겨요. 코로나 뒤로 많이 달라졌어요.” 집에서 마시는 홈술, 혼자 마시는 혼술 등 라이프스타일이 변화하면서 예전같이 ‘좋은 시절’은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그렇게 힘들면 그만두실 수도 있었잖아요. 왜 그렇게 버티셨어요?” “우리 부부가 60이 넘었는데 노후준비는 안 돼 있고, 자식들에게 부담 주고 싶지도 않고. 결국 여기서 버틴 거죠. 다른 대안이 없었어요.” 생각해보면 당연한 대답이다. 서민에게 버티는 것 외에 무슨 답이 있으랴. 안쓰러워 물었을 뿐.

사장님은 잊지 않고 찾아주는 손님들이 고마워 안주 가격도 2년 전과 똑같이 받는다고 했다. “물가가 무지 올라서 남는 것도 적지만 당분간은 안 올리려고요. 다들 살기 힘든 시절이잖아요.” 계산하면서 사장님께 진심을 담아 꾸벅 인사했다. “엄혹한 시절 견디고 살아남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코로나 직격탄을 입은 업종 중에는 카페도 있다. 나의 동네 단골 카페 루비는 다행히 살아남았다. 인스타 감성 충만한 공간으로 제법 입소문이 났던 곳이지만, 위치가 조용한 주택가라 단골 아니면 찾기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어렵사리 살아남은 비결이 뭘까? 자기 건물이라 월세가 안 나갔지만, 그만큼 은행이자를 물었다. 비결은 딴 데 있었다. “6년 동안 딱 3일 쉬었어요. 처음 3년은 명절에도 일했고요. 매일 9시 30분에서 밤 9시까지요. 이 카페는 언제나 열려 있다고 생각하니까 손님들도 안심하고 찾아주신 듯해요. 하루 종일 테이블을 차지하는 카공족들도 코로나 때는 고맙더라고요. 나가서 점심도 먹고 산책도 하고 오는데, 그래도 고마워요.” 이 카페도 2년 전과 가격이 동일하다. 그렇게 버텼다.

포차도, 카페도 제 살을 깎아서 엄혹한 시절을 견뎌냈다. 빚을 내고, 도움도 받고, 휴일도 없이 일해서 겨우 살아남았다. 제 살을 깎아도 결국 못 버틴 이들이 많다. 동네 자영업자의 ‘자기 착취’ 위에 우리의 편리한 생활이 있다. 고맙고 미안하다. 자영업자들이 스스로 착취하지 않아도 좋은 세상이 되면 좋겠다. 엊그제 집에 오는 길에 보니 초밥집 ‘스며듦’에 불이 활짝 켜져 있었다. 테이블도 꽉 차 있었다. 한 며칠 쉬었던 것인가 보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고맙다, 살아남아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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