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L 영원히 기억될 그 이름, 은퇴 선언한 '돌파의 달인' 정영삼

김우석 2022. 5. 29.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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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파의 달인’ 정영삼(39, 187cm, 가드)이 은퇴를 선택했다.

정영삼은 은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구단(한국가스공사)와 작은 오해가 있었지만, 작은 해프닝으로 일단락되며 자신의 생각대로 현역에서 떠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돌파라는 키워드를 통해 KBL 최고봉에 올랐던 정영삼은 지난 14시즌 동안 KBL에서 남긴 족적을 뒤로 한 채 선수 생활을 마감한다.

1984년 생인 정영삼은 한국 나이로 39세다. 불혹을 앞두고 있는 고참 선수였다. 2007년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에 입단해 엘리펀츠를 거친 후 지난 시즌부터 대구 한국가스공사 유니폼을 입고 15년을 지나쳤다.

탁월한 돌파력을 장점으로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슈팅력을 꾸준히 개선했던 정영삼은 국가대표 경력 뿐 아니라 ‘인천의 심장’이라도 불리워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인천과 전자랜드에서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결과로 인천에서 많은 팬덤을 갖고 대구로 떠날 수 있었다. 정영삼은 인천 시절 경기 후 인터뷰에서 늘 ‘인천 팬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구단 매각 후 터전을 잡은 곳은 자신이 중고 시절(계성 중학교, 계성 고등학교)을 보낸 대구였다. 정영삼은 인터뷰에서 ‘나는 정말 행운 가득했던 선수였다’라는 말로 대구에서 마지막을 보낸 것을 축복으로 여겼다.

지난 14시즌 동안 정영삼이 KBL에서 남긴 기록은 600경기 출전에 평균 21분 56초를 출전, 7.83점 1.66리바운드 1.61어시스트를 남겼다. 데뷔 시즌은 강렬했다. 2007-08시즌 평균 31분 10초를 출전해 10.82점 1.88리바운드 2.63어시스트를 기록한 것. 농구 선수 정영삼이라는 이름을 확실히 알린 당시였다.

건국대 출신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를 확실히 씻어낸 ‘돌파의 달인’ 정영삼이었다.  

정영삼은 본지와 전화 통화에서 “사실 일찌감치 은퇴를 결정했고, 합의도 끝냈었다. 전자랜드 마지막 시즌부터 준비를 했었다고 생각한다. 그 시즌(2020-21) 시작할 때 계약 기간이 2년 남았었다. 준비하면서 운동도 많이 했다. 구단이 매각되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기업에 갈 수 있도록 집중도 했다. 다행히 잘 풀렸다. 그러면서 구단이 인수되었다. 대구를 연고지로 한 팀인 행운이 따랐다. 1년 더 ‘잘 마무리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시즌 후에 바로 감독님과 식사 자리에서 은퇴와 관련한 뜻을 같이 했다. 구단이 처음이라 조금 착오가 있었을 뿐이다.”라고 전했다.

정영삼은 FA 협상 과정에서 ‘계약 미 체결’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고, 많은 이들의 궁긍즘을 자아냈다. 선수 생활 내내 ‘모범’을 키워드로 점철해온 선수였기 때문에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는 순간이었다.

잠시였다. 바로 은퇴 소식을 전해오며 앞선 이틀 동안의 오해(?)를 풀었던 정영삼의 마지막 행보였다.

정영삼은 “느낌이 오더라. 시즌 준비 과정에서 ‘은퇴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프로의 훈련을 소화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더라. 받아 들여야 했던 시즌이었다.”고 은퇴와 관련해 마지막 이야기를 남겼다.

지난 14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을 듯 했다. 구단에 변화가 있었지만, 한 팀에서 14시즌을 보낸 원 클럽맨이기 때문이다.

정영삼은 먼저 입단 당시를 떠올렸다.

“당시에 황성인, 조우현, 김성철 선배가 있었다. 구성이 탄탄했다. ‘한 경기라도 뛸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저 신인의 자세로 임했야 했다. 죽기 살기로 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최희암 감독님이 잘 봐주신 것 같다. 그리고 자신감은 있었다. 어릴 적부터 1대1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배들의 도움도 컸다”

자신감은 기회로 돌아왔고, 정영삼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당시 전자랜드 감독이었던 최희암 현 고려용접봉 사장의 눈에 들면서 기회를 부여 받았고, 데뷔 시즌 두 자리 수 득점이라는 대단한 활약과 함께 KBL에 등장할 수 있었다.

세 번째 시즌이었던 2009-10시즌 주춤했다. 부상이 주된 이유였다. 어깨였다. 평균 득점이 7.96점으로 떨어졌다.

정영삼 역시 당시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선수 생활 동안 거의 처음 찾아온 시련이기 때문이었다.

정영삼은 “대표 팀에 처음 다녀오고 나서 어깨 부상을 당했다. 2년 차 후반에 어깨를 다쳐서 수술을 했고, 재활을 하면서 많이 힘들었다. 1년 가까이 걸린다고 했지만 조금 빠르게 복귀해서 시즌을 치렀다. 왼팔 사용이 쉽지 않았다. 아픈 것에 대해 실망도 많이 했다. 발전해야 할 타이밍에 큰 부상을 당하면서 주춤했던 당시였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시즌은 언제였을까?

정영삼은 2020-21시즌을 꼽았다. 전자랜드 이름으로 마지막 시즌이었다.

정영삼은 “선수 생활을 되돌아보면 전자랜드 마지막 시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시즌부터 플레이에서 무릎 상태에 대해 자신감이 없더라. 전자랜드에서만 13시즌을 치렀다. 전자랜드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 해였다. 너무 기억이 생생하다. 팀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선수들이 합심해서 정말 노력을 많이했다. 구단 매각과 관련한 상황 때문에 모두 연봉도 넉넉히 받지 못했다. 어려운 때였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 것 같기도 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연이어 정영삼은 “선수 생활을 돌아보면 부상이라는 시련 말고는 정말 운이 좋았던 선수였다. 인천도 그렇다. 신인 때 30분 정도 뛰었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정말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간을 뛰었다. 나는 운동 능력에 휘젓고 다니는 것만 자신이 있었다. 당시 최희암 감독님을 만난 것이 정말 행운이었다. 만나자 마자 슛을 교정해 주셨다. 잘 받아들였고, 많이 개선이 되면서 득점력을 높일 수 있었다. 유도훈 감독님을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유 감독님은 아픈 몸으로 어떻게 하면 농구를 쉽게 할 수 있을 지를 알려 주셨다. 역시 꾀돌이다(웃음) 또, 아기자기한 농구를 하는 방법을 배웠다.”며 행운 가득했던 선수 생활에 더해 덧붙였다.

그렇게 15년이라는 오랜 선수 생활을 접고 평범한 삶으로 접어든 현재에 대한 대화로 주제를 옮겼다.

정영삼은 “지금은 잠시 농구에 대한 생각을 접고 있다. 농구를 12살 때부터 했다. 지금까지 팀 스케줄과 함께 움직이며 그 어려운 훈련을 다 해왔다. 사실 진짜 피곤하고 힘들었던 때도 많다. 지금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행복함을 즐기고 있다. 휴식에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영삼은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첫 째는 유소녀 클럽에서 농구를, 둘째는 인천 송림초등학교에서 엘리트 선수를 하고 있다. 정영삼은 휴식기에 유소녀 클럽에서 농구를 하는 첫 째 딸 농구를 관람하기 위해 자주 대회장을 찾곤 했다. 최근에는 엘리트 농구를 하는 둘째 아들 정찬윤의 경기장에 자주 찾는다고 한다.

정영삼은 “유소년 농구는 내가 했던 재미는 아닌 것 같다. 아이들이 농구장에서 순수하게 뛰어다니는 걸 보면 정말 재미있다.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5월에도 김천에 다녀왔다. 경기를 보다가 답답했던 것 같다. 응원을 하다 나도 모르게 집중했다.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숨어있었다. 참 웃겼다. 아들한테 집에 올라와서 혼났다. 지난 시즌에는 농구를 못해서 딸한테 많이 혼났다. 딸 아이가 ‘그만두라’며 호통을 치기도 했다.”며 밝게 웃었다.

연이어 정영삼은 “당분간은 재미라도 농구를 안하고 싶다. 간혹 후배들이 ‘농구를 하자’라는 전화를 한다. 선을 그어 ‘안한다’고 말한다. 가족에 집중하고 있다. 딸 아이 픽업 다니고, 아들 경기를 보러 다닌다. 너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당분간은 쉴 생각이다. 대화를 많이 해보겠다.”는 말로 가족애를 전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정영삼은 “은퇴 소식이 전해진 후에 DM을 엄청 받았다. 특히 인천 분들이 많았다. 어릴적 때부터 농구장 다녔다고 전하며 이제는 성인이 되었다고 했다. 나를 통해 많은 감동을 받았다는 말들이 주를 이뤘다. 너무 감동 스러웠다. 감사 인사를 전했다. 메시지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어떤 장문 메시지에는 눈물이 나기도 했다.”고 전했다.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정영삼은 “우승 커리어 없이 프로에서 600경기를 해냈다. 감사할 따름이다. 역시 행복하게 은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끼고 사랑해준 인천 팬 분들과 마지막 시즌을 함께한 대구 팬들 때문인 것 같다.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넓게는 농구 팬 여러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는 말로 30분이 넘는 통화를 마무리했다.

‘돌파의 달인’ 정영삼. 흔치 않은 원 클럽맨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그의 이름은 KBL에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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