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민의 물질과 정은혜의 그림이 유난히 서글픈 까닭('우리들의 블루스')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2. 5. 29.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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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블루스', 한지민과 정은혜의 에피소드가 담은 장애인의 현실

[엔터미디어=정덕현] "물에 들어가면 좋아?" tvN 토일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영희(정은혜)가 동생 영옥(한지민)에게 묻는다. 해녀가 되어 물질에 유독 집착하던 영옥이었다. 너무 집착해 다른 해녀 삼촌들에게 "돈독 오른 년"이라고 손가락질까지 당했던 영옥이었다. 실로 영옥이 물질에 집착하는 이유가 다운증후군 쌍둥이 언니를 부양해야 하는 현실 때문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영희의 질문에 영옥은 의외의 답변을 내놓는다. "응 바다에선 오로지 나 혼자니까." 그가 바다에 뛰어드는 이유는 오롯이 혼자가 될 수 있어서였다. 그렇게 그는 자꾸만 바다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건 영옥이 살아왔던 삶이 해왔던 방식 그대로였다. 부모가 한꺼번에 갑자기 돌아가시고 덜컥 영옥에게 남겨진 영희. 너무 버거운 현실에 영옥은 언니를 지하철에 홀로 놔두고 내린 적도 있었다.

물론 영옥은 언니를 버릴 만큼 모질지 못했다. 그래서 언니를 시설에 맡기고는 일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돈을 더 벌어야 한다는 이유로 더 멀리 도망쳤다. 그가 제주도까지 와서, 그 곳에서 바다 깊숙이 뛰어드는 물질에 집착하는 건 그런 이유였다. 그는 영희로부터 내내 도망 중이었다. 그런데 더 아픈 건 영희가 영옥의 그런 마음을, 영옥이 바다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바다엔 내가 없어서 좋아?"

<우리들의 블루스>가 담은 영옥과 정준(김우빈)의 이야기가 진정으로 담으려 한 건 영희의 존재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걸 피하려 하고 없는 존재들인 것처럼 치부하고 차별을 일상화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영희로부터 끊임없이 도망 중이지만 결코 도망칠 수 없는 영옥의 입장은 아마도 장애인을 둔 가족들이 가진 솔직한 감정일 게다. 함께 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버거워할 수밖에 없는.

정준과 영희와 함께 식사를 하러 왔다가 옆 테이블의 아이가 자꾸 뻔히 쳐다보고 놀리듯이 흉내를 내는 걸 보고는 그러지 말아달라고 그 부모에게 정중히 부탁했지만 대놓고 "장애인" 운운하며 "밥맛 떨어졌다"고까지 말하는 사람들을 겪으며 영옥은 꾹꾹 눌러왔던 감정이 드디어 폭발한다.

"나도 이해해. 사람들이 영희 같은 애를 잘 못 봤으니까. 이상하니까. 자기도 모르게 자꾸 눈이 가겠지. 근데 왜 사람들이 영희 같은 애 길거리에서 흔하게 못 보는 줄 알아? 나처럼 다른 장애인 가족들도 영희 같은 애를 대부분 시설로 보냈으니까." 그 말에는 장애인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가가 담겨 있었다. 없는 존재처럼 치부함으로써 차별받고 또한 그 돌봄의 부담을 온전히 가족들이 버텨내야 하는 게 그 현실이었다. 그 현실을 영옥은 조목조목 쏟아냈다.

"한땐 나도 같이 살고 싶었어. 근데 같이 살 집 얻으려고 해도 안 되고 일도 할 수 없고. 영희. 어쩌면 일반 학교에서 계속 공부했다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었어. 근데 일반학교에선 잴 거부하고, 특수학교는 멀고, 시내 가까운 데는 특수학교 못 짓게 하고. 어쩌라고. 시설에 보내면 보낸 날 모질다고 욕하고 안 보내면 오늘 같은 일을 밥 먹듯이 당해야 돼. 대체 날더러 어쩌라고."

영옥이 늘 정준에게 선을 그었던 이유가 그거였다. 좋아해도 결국은 이 버거운 현실을 마주하고 떠났던 전 남자친구들을 겪으며 영희는 선을 긋는 데 익숙해졌고 더 이상 미래를 생각하지 않게 됐다. 그리고 영희조차 이런 현실을 다 알고 있다는 걸 영옥도 알고 있었다. "영희도 다 알아. 개도 고양이도 감정이 있는데 영희도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는 거 다 안다고. 내가 20년도 훨씬 전에 자길 지하철에 버리려고 했던 것도 다 안다고. 다 기억한다고.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 영희는 다 알아. 내가 자기를 얼마나 버거워 하는 지 다 안다고."

세상은 영옥이 일부러 모질게 말하듯 장애인을 "감정도 없고 머리도 모자라서" 이런 말들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치부한다. 그걸 심지어 가족에게 강요한다. 그래야 사랑하는 가족이라도 시설로 보낼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런 취급을 받아온 영희는 과연 감정도 없고 머리도 모자라 이런 취급을 당연히 받아왔을까?

영희가 영옥에게 물에 들어가는 게 좋냐고 물으며 '고독'에 대해 말했던 대목이 새삼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싫은데 고독. 난 니랑 같이 있는 게 좋은데." 영희는 영옥이 물질에 집착하는 이유가 홀로 있고 싶어서 그래서 차라리 고독한 게 좋아서라는 걸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옥은 영희가 얼마나 고독했을지 과연 알았을까.

영희가 애써 일찍 짐을 챙겨 나와 저 스스로 시설로 돌아가겠다며 떠난 후, 영옥은 영희가 얼마나 깊은 고독 속에서 살아왔는가를 그가 남겨온 그림들을 통해 확인한다. 어린 나이 때부터 현재까지의 영옥을 담은 그림들에는 영희가 그간 홀로 감내했을 외로움과 고독은 물론이고 그걸 넘어서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는가가 담겼다. 그림을 통해 영옥에 대한 영희의 사랑을 확인한 영옥은 오열한다. '대체 사람이 얼마나 외로우면 얼마나 보고 싶으면, 영희 같은 애가 이렇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건지.' 영옥의 내레이션은 먹먹한 슬픔과 더불어 장애인을, 아니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없는 것처럼 치부하는 우리 사회에 대한 따끔한 일침을 담고 있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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