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투 기업 폐업'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김지환 기자 2022. 5. 29.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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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셀코리아, 갑작스러운 철수 발표..노조는 천막농성
회사의 폐업 통보로 해고 위기에 처한 다이셀코리아 노동자들이 지난 5월 18일 경북 영천시청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폐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 금속노조 제공

정민욱 금속노조 다이셀지회장은 공장이 전면 휴업을 시작한 지난 5월 2일 오후 7시 14분 회사로부터 노사간담회 요청 공문을 문자메시지로 받았다. “회사의 경영에 관한 중대한 결정 사항을 설명하는 자리”이니 반드시 참석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정 지회장은 회사가 5월 말까지로 예정한 휴업 기간을 더 연장하거나 희망퇴직을 실시하겠다는 내용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의 예상과 달리 회사는 지난 5월 3일 노사간담회에서 6월 30일부로 폐업하겠다는 계획을 통보했다. 133명의 노동자가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을 상황에 처했다. 정 지회장은 “폐업 시점은 공장 부지 무상임대 기간(10년)이 끝나는 때”라며 “폐업 가능성을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통보할 줄은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 회사는 노사간담회 이후 ‘전 직원 폐업 관련 설명회’를 열고 “누적적자로 인해 2021년 자본잠식 뒤 본사의 회생불가 판정으로 6월 30일 기준 재직자 전원을 사직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량해고로 이어지는 외국인 투자 기업 폐업

경북 영천시 채신공단에 있는 일본계 기업 다이셀세이프티시스템즈코리아(다이셀코리아)는 에어백에 공기를 채우는 인플레이터를 만드는 공장이다. 강제동원 전범기업인 다이셀코포레이션이 이 회사의 주식 100%를 보유하고 있다. 2011년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의 ‘외국인 투자유치 1호 기업’으로 주목을 받은 다이셀코리아는 공장 준공을 거쳐 2013년 12월부터 양산을 시작했다.

다이셀코리아는 외국인투자촉진법 등에 따라 공장 부지 4만2696㎡(약 1만2000평) 10년간 무상임대, 법인세·소득세 3년 면제, 취득세 15년간 면제 등 각종 혜택을 받았다. 아울러 2011년 영천시와 다이셀코리아가 체결한 투자유치 계약서에는 “회사와 종업원 간 노동분쟁 발생 시 지방자치단체는 회사 측에 협력한다”는 ‘독소조항’까지 포함돼 있었다.

회사는 폐업 계획 통보 이후 희망퇴직 신청을 5월 말까지 받고 있다. 회사는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는 사람은 퇴직위로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공지했다. 위로금을 받고 나가는 게 유리하다는 압박이다. 지난 5월 11일부터 공장 앞에서 천막농성 중인 다이셀지회는 폐업 철회를 요구하며 희망퇴직자 모집에 응하지 않고 있다.

대구·경북 지역에선 2년 전에도 미국계 기업이 일방적으로 폐업을 통보한 뒤 철수한 사례가 있었다. 대구 달성공단에 있는 자동차 부품 제조사 한국게이츠가 2020년 7월 폐업하면서 노동자 147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특히 30년 역사의 한국게이츠는 연평균 60억원가량의 흑자를 내고 있었기 때문에 ‘흑자 폐업’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147명의 노동자 중 19명은 희망퇴직에 응하지 않고 500일 넘게 싸움을 벌였다. 끝내 고용 승계를 이끌어내진 못했다. 한국산연 해고노동자들은 모회사인 일본 산켄전기가 2020년 7월 마산자유무역지역에 있는 공장을 폐업하겠다고 결정한 뒤 680일 넘게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2015년 ‘기술 먹튀’ 논란을 빚은 경기 이천의 하이디스 공장 폐쇄, 2018년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등도 외국인 투자 기업 사업장에서 대량해고가 벌어진 대표적 사례다. 문제는 앞으로 외국인 투자 기업들이 수익성 등을 이유로 철수와 진입을 반복하는 ‘글로벌 공급망 구조조정’이 더 자주 일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자본은 인건비가 더 낮은 국가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등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를 누린다. 이에 반해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다른 사업장이나 국가로 쉽게 이동할 수가 없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구호는 외국인 투자 기업이 이동의 자유를 누릴 때 드리워지는 그늘엔 주목하지 않는다. 이 그늘을 조금이라도 걷어내기 위한 법·제도 개선 시도는 ‘통상조약 위반일 수 있다’는 벽에 가로막혀 있다. 아울러 외국인 투자유치가 ‘절대반지’인 상황에서 규제를 위한 목소리는 좀처럼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11일 서울 신도림역 대성산업 본사 앞에서 한국게이츠 해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통상조약에 막힌 규제법안

한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 투자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듬해인 1998년 외국인투자촉진법 제정을 시작으로 빠르게 늘기 시작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매년 발표하는 ‘2021 외국인 투자 기업 경영실태조사 분석’ 자료를 보면 2020년 말 기준 외국인 투자 기업의 수는 1만4696개, 고용 규모는 76만5061명이었다. 외국인 투자 기업이 국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4%였다.

외국인 투자 기업의 철수 결정엔 초기 투자비용, 기업 규모, 재무적 성과, 생산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임은정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이 2020년 4월 발표한 ‘외국인 투자 기업의 철수 결정요인과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재무적 성과가 좋지 않은 기업의 철수 확률이 높다. 높은 경영 성과를 내고 있는데도 본사의 구조조정 정책으로 현지 생산을 중단하고 기업 규모를 감소시켜 철수하는 기업도 물론 있다.

외국인 투자 기업의 철수는 해당 기업 노동자뿐 아니라 다른 영역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2019년 말 발표한 ‘다국적 기업 철수의 영향과 정책대응 방안’ 보고서에서 “외국인 투자 기업이 사업을 축소할 때, 동일산업 및 후방산업의 고용도 감소한다”며 “특히 자동차 산업 등 종합기계산업의 경우와 같이 전방산업에 중소기업 협력사들이 다수 존재할 때 지역경제에 미치는 추가적 파급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그간 수차례 외국인 투자 기업 규제 법안이 발의됐지만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통상조약 위반이라는 지적이 꼬리처럼 따라붙기 때문이다. 정부의 규제 재량권이 매우 제한적인 실정이다.

외국인 투자에 대한 규제는 사전 규제와 사후 규제로 나뉜다.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 10월 대표발의한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은 ‘경제질서 및 고용안정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사항’에 대해 외국인 투자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투기성 외국 자본의 무리한 구조조정이나 적대적 인수합병 등으로 인한 고용불안을 방지하려는 것으로 사전 규제에 해당한다. 채수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법안 검토 보고서에서 “투자제한 규제 강화는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S) 등에 저촉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김정호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6월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일정 규모 이상의 외국인 투자 기업에 대해 폐업신고 의무를 부과하고, 신고 내용에 대한 심의·조사와 시정명령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외국인 투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명시하기 위한 것으로 사후 규제에 해당한다. 산업부는 이 법안에 대해 “외국인 투자 기업에 폐업 사전신고제를 도입하는 것은 국내 기업에 없는 제한을 부과하는 차별적 조치로서 자유무역협정(FTA), WTO 규범인 ‘내국민 대우’ 위반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외투 기업 철수에 어떻게 대응할까

통상조약 충돌 가능성이란 제약이 있지만 외국인 투자 기업의 철수가 가져올 고용위기를 막으려면 종합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우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을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이 가이드라인을 수락한 국가는 국내연락사무소(NCP)를 설치해야 하며, 이 사무소는 가이드라인 위반으로 제소된 사안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가이드라인은 “집단 정리해고를 수반하는 사업장 폐업처럼 고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업 운영의 변화를 고려하고 있다면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최대한 완화하기 위해 노동자 대표 및 적절한 정부 당국과 협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을 상황에 처한 노동자들은 이 규정을 근거로 다국적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할 수 있다. 법적 구속력은 없다는 한계가 있다.

사전적 고용 보호 장치를 두자는 제안도 나온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국인 투자 기업 대상으로 고용안정기금을 조성하도록 정부가 권고하고 이를 기존의 각종 혜택 등과 연동시키는 조치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가 2014년 기업의 사업장 폐쇄를 어렵게 하는 방식으로 지역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플로랑주법은 주목할 만한 사후 규제 장치다. 이 법은 상시 노동자 1000명 이상인 기업이 사업장을 폐쇄하려는 경우 해당 기업이 인수자를 알아봐야 하며, 적합한 인수기업이 나오면 이를 노동자들과 상의해야 한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이렇게 내·외국 기업 모두에 적용되는 법을 만들 경우 통상조약 위반 논란이 불거지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이런 규제는 외국인 투자유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나원준 교수는 “거시경제학적으로 볼 때 한국은 자본축적이 과잉 상태이기 때문에 예전만큼 외국인 투자에 목맬 필요가 없다”고 짚었다.

외국인 투자 기업이 세금 부담을 줄이려고 ‘이전가격’을 조작하는지 더 엄밀하게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전가격은 다국적 기업이 해외 자회사와 원재료 또는 제품을 거래할 때 적용하는 가격이다. 예를 들어 한국 자회사가 해외 본사에서 들여오는 부품에 비싼 가격을 매기고, 다른 나라로 수출하는 제품에는 싼 가격을 책정하면 한국 자회사 수익을 본사로 이전시킬 수 있다. 국세청이 2013년 르노삼성, 한국지엠의 이전가격 조작을 확인하고 세금을 추징한 사례도 있었다. 한국지엠의 경우 5년 뒤인 2018년에도 이전가격 조작 등으로 추징을 당했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이전가격 조작으로 한국 자회사의 수익이 줄어들 경우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다국적 자본의 이전가격 조작 방식이 점점 진화하고 있어 규제 당국이 의지를 갖지 않으면 이윤 빼돌리기와 먹튀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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