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동부 격전지 초토화.."시신 매장도 못한 채 방치"

신기섭 2022. 5. 29.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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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침공]지역 내 최대 도시, 전기와 통신 끊겨
러시아군, 시내 밀집지역 직접 공격
인근 주요 도시에선 피란 행렬
묘지엔 흙만 덮어놓은 시신 160여구
러시아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루한스크주의 리시찬스크에서 28일(현지시각) 기차를 타고 탈출해 도네츠크주 포크로우스크에 도착한 여성이 아이들과 함께 기차에 앉아 있다. 포크로우스크/AP 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주 서부 지역에 맹렬한 공격을 퍼부어, 이 지역 최대 도시인 세베로도네츠크가 초토화하고 인근 리시찬스크에서는 많은 희생자를 제대로 매장하지 못하는 일까지 빚어지고 있다. 두 도시는 루한스크주 내 우크라이나군의 최후 거점이며, 두 도시가 함락되면 루한스크주 전체가 러시아군에 넘어간다.

세르히 가이다이 루한스크주 주지사는 러시아군이 세베로도네츠크 시내에 일부 진입한 가운데 시내 건물의 90% 가량이 포격 등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이 28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가이다이 주지사는 이날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14층 건물이 파괴됐다며 도시 안에 수십명의 의료진이 있지만 포격 때문에 병원 접근도 어려운 상태라고 전했다.

올렉산드르 스트리우크 세베로도네츠크 군정 대표는 국영 방송에 나와 도시 내 이동전화망이 끊겼고 전기도 공급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야외에 노출된 우물에 펌프를 긴급 투입해 주민들에게 물을 공급하고 있지만, 식수를 구하려 모인 주민들이 포격에 노출돼 극도로 위험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세베로도네츠크와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리시찬스크에서는 러시아군의 집중 공격 때문에 주민들이 외부로 빠져나오고 있다고 미국 <시엔엔>(CNN) 방송이 보도했다. 도시를 탈출하기 위해 당국이 마련한 차량에 탑승한 74살의 여성 에카테리나는 집을 떠나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며 “짐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고 어디에 가서 살지도 모르겠지만 살해당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시엔엔>은 야외에서 음식을 조리해 먹으며 지하실에서 버티는 대가족도 목격했으며 이 가정 아이들은 폭격 소리가 들리는 밖에서 그네 놀이를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시내의 묘지에는 시신들이 제대로 매장되지 못한 채 방치됐다. 희생자 시신 160구 정도는 흙으로 대충 덮은 상태로 있었고, 일부 시신은 시신 수습용 흰색 봉투에 이름과 수습한 날짜만 적힌 채 놓여 있었다. 옆에는 시신 추가 수습에 대비해 비어둔 공간도 있었다고 방송은 전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러시아군과 러시아계 분리주의 세력이 돈바스의 전략적 요충인 리만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발표했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하지만 한나 말랴르 우크라이나 국방차관은 리만에서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리만은 세베로도네츠크에서 서쪽으로 60㎞ 떨어진 도네츠크주의 철도 중심지이며 이 도시가 러시아군에 넘어갈 경우 루한스크주 서부 전투 양상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러시아군이 루한스크주에서 느리지만 꾸준히 점령지를 넓혀가면서 이 지역 전투 양상이 미묘하게 변해가고 있다고 <로이터>는 지적했다. 미국의 국방 싱크탱크인 ‘전쟁연구소’의 분석가들은 러시아군이 세베로도네츠크 시내의 건물 밀집 지역을 직접 공격하는 단계에 온 것으로 분석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루한스크주에서 우크라이나군이 고전하는 가운데 올렉시 레즈니코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이날 성명을 내어 미국과 덴마크로부터 155㎜ 곡사포와 하푼 대함미사일을 받았다고 밝혔다. 레즈니코프 장관은 이에 따라 상당한 거리에 떨어진 적에 대한 공격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하푼 대함미사일을 남부 흑해 연안 도시 오데사에 배치해 러시아 흑해 함대 공격용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했다. 두나라 정상은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재개를 위해 오데사 항구 봉쇄를 풀 것도 요구했고, 푸틴 대통령은 곡물 수출 재개 방안을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서방이 제재를 풀 경우 러시아가 곡물과 비료 수출을 확대할 준비도 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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