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다 풀, 엄마들 눈엔 다 먹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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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에 농막을 지어놓고 어른들을 초대했다.
팔순이 다 되신 우리 부모님, 시어머니 모두 자연에 풀어놓으니 '카이저 소제'가 따로 없었다.
엄마가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농막 뒤 산비탈에서 "오가피다! 곤드레다!" 하며 심마니처럼 흥분해 소리치셨다.
우리 눈엔 파란 건 그냥 다 풀인데, 엄마들 눈엔 다 먹을 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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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에 농막을 지어놓고 어른들을 초대했다. 팔순이 다 되신 우리 부모님, 시어머니 모두 자연에 풀어놓으니 ‘카이저 소제’가 따로 없었다. 나물만 보면 생기가 돌아 무릎 관절이 낫고 굽은 허리가 펴지는 기적이 실제로 일어난다.
자작나무에 물이 오를 즈음 아버지가 오셨다. 황무지나 다름없던 밭을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아버지는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고는 흡족해하셨다. 10년 전 내가 심어 제법 자란 소나무와 자작나무를 보고는 가지치기해야 한다며 시내에 나가 톱을 사오셨다. 우리가 한다고 해도 “내가 이런 거 전문이여~” 하며 쑹덩쑹덩 가지를 쳐내신다. 그냥 제멋대로 자라게 둔 나무의 잔가지를 잘라내니 상큼하니 가벼워 보였다. “니들이 이렇게 잘 가꿔놓으니 아버지가 맘이 아주 좋다” 하며 가는 길에 목단을 사다 심으라며 굳이 돈을 주셨다.
4월 말엔 엄마가 오셨다. 한창 초록초록해지기 시작해 사방이 예쁜 계절이었다. 엄마가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농막 뒤 산비탈에서 “오가피다! 곤드레다!” 하며 심마니처럼 흥분해 소리치셨다. 엄마는 당장 장화로 갈아 신고 봉지를 챙기더니 그대로 사라지셨다. 드문드문 돌아와 봉지 가득 딴 나물을 툇마루에 쏟아놓고 다시 사라지셨다. 한 손 가득 꽃다발처럼 두릅을 따서 들고 오기에, 저기 비탈에 두릅이 하나 있는데 나무가 너무 높아서 못 따 아깝다고 하니 엄마는 가서 보고 “내가 따올게” 하고는 가파른 비탈을 네 발 짚고 올라가 높은 두릅 가지를 당겨서 팔을 오랑우탄처럼 길게 천천히 뻗어 꼭대기에 달린 두릅을 뚝 꺾어 들고 흔드신다. 다음날엔 오가피와 곤드레가 잘 자라도록 호미로 잡초와 잡목을 정리하시고는 쑥 꺾으러 또 밭둑에 내려가시더니 점심 먹으러 나가려고 기다려도 엄마가 나타나지 않아 애태웠다.
어버이날엔 시어머니가 오셨다. 여지없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취가 있어야~” 하며 봉지를 들고 사라지셨다. 사라지셨다 돌아와 툇마루에 나물을 쏟아놓고는 “저 아래는 쑥이 있네~” 하며 또 사라지셨다. 다음날엔 정선 장날이라 구경을 갔다. 냉이가 안 보이더라며 냉이 씨앗과 더덕 한 바구니를 사셨다. 장 구경은 시큰둥하시더니 돌아와서는 곧장 더덕 심기에 돌입하셨다. 새끼손가락만큼 자잘한 더덕이 백 개는 되는 거 같았는데, 불편한 다리로 쪼그려 앉아 다 심고 “이제 물 줘라~” 하고는 고들빼기 캔다고 사라지셨다. 집에 가려 짐을 챙기니 나물 자루가 트렁크 절반을 채웠다. 우리 눈엔 파란 건 그냥 다 풀인데, 엄마들 눈엔 다 먹을 거더라.
아버지가 주신 돈으로 진부농원에서 목단 2주를 사다가 조카랑 심었다. 사장님이 꽃망울 달린 거로 골라줘서 심으니 바로 다음주에 꽃이 피었다. 아버지에게 사진을 보내드리니 둘 다 흰꽃이라고 아쉬워하며 빨간 것도 더 사다 심으라신다. 지난주엔 진부에 갔다가 일요일 오전 올라오는 길에 시가에 잠깐 들렀는데 시어머니가 곧장 밥상을 차려주셨다. 그사이 밭에서 캔 고들빼기로 김치를 담가두셨다. 짠 줄도 모르고 한 접시 뚝딱 비웠다.
글·사진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농사꾼들: 주말농장을 크게 작게 하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한겨레> 김완, 전종휘 기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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