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아픈 아조우스탈 패전, 우크라이나의 선택지는 [강윤희의 러시아 프리즘]
지난 5월 17일 결사항전을 외쳤던 아조우스탈 제철소의 우크라이나군이 결국 항복했다. 러시아군의 집중포화 속에서 더 이상 버티는 데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제철소 지하에 피신했던 민간인을 소개하기 위해 일시적 휴전을 몇 차례 한 덕에 우크라이나군은 시간을 벌 수 있었지만, 상황을 반전시킬 수는 없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아조우스탈의 우크라이나군이 소개됐다고 말했지만, 하얀 띠를 두른 돈바스 반군에게 무기를 내려놓고 신분조사를 받는 모습은 영락없이 항복이었다.
아조우스탈 전투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상기시킨다. 당시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를 포위한 채 소련군과 치열한 시가전을 펼쳤고, 그 결과 도시의 97%까지 장악했다. 소련군은 3%밖에 남지 않은 작은 지역으로 몰렸지만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버텼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아조우스탈 전투의 차이점은 전자의 경우 스탈린그라드를 포위한 독일군을 크게 우회해서 다시 포위하는 소련군의 진격이 있었다는 것이고, 후자는 그런 구원군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소련군의 승리로 귀결되었으나 아조우스탈 전투는 우크라이나군의 패배로 끝났다.
러시아군의 아조우스탈 완전 점령 이후 우크라이나 동부전선의 상황은 우크라이나군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하르키우에서 러시아군을 몰아내고 러시아 국경 지대까지 다다랐다는 승전보가 전해지기도 했지만, 동부 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이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루한스크 및 돈바스 지역 전투는 더욱 치열해졌고, 러시아군의 진격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 두고 서방의 언론은 러시아의 공세가 "점점 더 작아지고 있다"고 표현했지만, 핵심은 점점 더 많은 지역이 러시아군의 점령하에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크라이나군의 승전보를 열심히 홍보하던 우크라이나 정부조차 동부의 상황이 매우 나쁘다고 인정했다.
개전 3개월이 지났다. 전쟁 초기에는 우크라이나군의 예상치 못한 강한 저항과 반격 때문에 전 세계인이 우크라이나에 박수를 보냈고 내심 승리까지 기대했다. 푸틴의 오판과 지리멸렬한 러시아군을 조롱하면서 말이다. 이때만 해도 서방이 무기를 적절히 지원하기만 하면 우크라이나는 버틸 수 있고 심지어 승리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또 서방의 강력한 경제제재로 인해 러시아의 경제는 곧 무너질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러시아 디폴트설이 얼마나 자주 나왔던가?
그런데 3개월 지난 현재 러시아는 흑해 및 아조우해 연안의 우크라이나 남부 4개 지역을 점령했고, 그중에서도 이번 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돈바스와 루한스크 전 지역을 곧 완전히 장악할 것으로 보인다. 군사적 전투 못지않게 치열한 경제전쟁에서도 러시아 정부는 잘 대응하고 있다. 전쟁 개시 후 1달러당 139루블까지 떨어졌던 루블화 환율이 현재 전쟁 전 수준인 80루블을 넘어서서 64루블까지 올라갔다. 루블화가 급등하자 러시아 중앙은행은 루블화 방어를 위해 20%까지 올렸던 기준 금리를 3차례에 걸쳐 급히 11%로 낮추어야 했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의 향후 선택지는 무엇이 될까? 흥미롭게도 아조우스탈 패배를 전후로 우크라이나 정부나 영국은 우크라이나의 최종 승리, 즉 크림반도를 포함한 모든 영토의 회복을 전제한 승리를 목표로 한다고 선언했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너무 당연한 목표가 되겠지만, 현 군사적 상황을 고려하면 현실감 없는 목표처럼 들린다.
여기서 질문은 '왜 하필 지금 이러한 전쟁 목표가 선언됐을까' 하는 것이다. 아마도 군사적으로는 러시아에 밀리더라도 외교적으로는 밀리지 않기 위해 포석을 까는 것 아닐까 싶다. 러시아가 평화협상을 좌지우지하게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독일 슐츠 총리의 발언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고 본다. 앞으로 전개될 평화협상을 둘러싼 외교전쟁도 만만치 않게 치열할 것 같다.
강윤희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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