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K이슈] "쉬운 단어로, 숫자로, 분명하게"..'인플레 파이터' 이창용의 소통법

이재은 기자 2022. 5. 29.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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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재, 직설적이고 시원시원한 화법 구사
시장 "구체적인 수치 언급 인상적"
11년 만에 "물가 중심 통화정책 운용" 문구 등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6일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데뷔전을 치렀다. 시장은 이창용 총재의 금통위 기자간담회를 두고 “‘인플레 파이터’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직설적이고 명료하다”고 평가했다.

이창용 총재는 이날 기준금리 인상 결정을 내린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치솟는 물가를 잡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그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을 우려보다는 물가 상방 위험을 더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못박았다. 이 총재는 이날 간담회 질의응답에서 ‘물가’라는 단어만 약 50번 언급했다.

그간 이주열 전 총재를 포함한 ‘정통 한은맨’들이 향후 통화정책 방향에 대한 질문에 큰 그림은 제시하면서도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길 정도로 모호하게 답변했다면, 이 총재는 물가 관리에 중점을 두고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시그널(신호)을 분명히 했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평가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달라진 한국은행의 소통법은 이날 발표된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에서도 확인됐다. 한은은 의결문에서 “물가가 상당기간 목표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앞으로 당분간 물가에 보다 중점을 두고 통화정책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면서 추가 금리인상 의지를 분명히 했다. 통화정책 의결문에 ‘물가에 중점을 두겠다’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은 “물가안정 기조가 확고히 유지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운용할 것’이라는 문구가 사용된 2011년 이후 11년만이다.

한 한은 관계자는 “집행부서에서는 다소 원론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문구를 사용할 것을 건의했지만, 이 총재가 정책 의지가 직접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문구를 다시 작성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국내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이주열 전 총재는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철저하게 사전 조율을 거친 발언만 하는 신중한 스타일이었다면 이창용 총재는 직설적이고 시원시원하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이 총재는 취재진의 질문을 다 받은 뒤에 “끝나기 전에 하나만 말씀드리겠다”면서 ‘오늘 결정 중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한 번 더 정리해서 전달했다. 그는 “현재 성장보다는 물가의 부정적 파급 효과가 더 크게 예상되는 만큼 이를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게 가장 중요한 결론”이라고 했다. 질의응답이 끝나면 자리를 떠난 이전 총재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례적으로 마지막 ‘교통정리’까지 하면서 시장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이 총재가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차용했다고 분석했다. 파월 의장은 ‘쉬운 영어’로 시장과의 소통 효과를 높이는 전략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경제학자들만 이해하는 전문 용어 대신 쉬운 표현으로 통화정책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기구에서 오래 근무한 이 총재는 평소 경제 상황을 설명할 때 영어를 자연스럽게 쓰는데, “영어를 자제해달라”는 한은 안팎의 조언을 받아들여 이번 간담회에서는 영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이 총재가 영어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에 도움이 안 된다”는 출입 기자들의 불만을 공보관실을 통해 전해들은 이 총재가 ‘영어를 사용하지 말 것’이라는 메모를 곁에 두고 간담회에 임했다고 한다.

시장에서는 이 총재가 직접적으로 ‘당분간’이 ‘수 개월’임을 인정하고, 수치를 들어 기준금리 인상이 물가를 어떻게 낮추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 점도 색다르다고 평가했다. 이 총재는 금리인상의 효과를 묻는 질문에 “기준금리를 0.25%p 올리면 2년에 걸쳐 물가를 0.1%p 정도 낮추는 것으로 예상한다”고 답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경제학자답게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금리인상 경로를 설명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이날 금통위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이후 열린 첫 회의이자, 이창용 총재가 지난달 취임하고 처음으로 참석해 주재하는 회의였다. 앞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화려한 문양의 넥타이로 이목을 끌었던 이 총재는 이날 금리 인상을 상징하는 빨간색도, 금리 인상을 인하를 의미하는 파란색도 아닌 밝은 연두색 넥타이를 매고 의사봉을 잡았다.

금통위는 이날 기준금리를 연 1.75%로 0.25%포인트(p) 전격 인상했다. 지난달에 이어 두 달 연속 금리를 올리는 이례적인 결정을 내렸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두 달 연속 인상한 것은 2007년 7·8월 이후 약 15년 만에 처음이다. 그만큼 물가 상황이 심각하다고 보고, 금리 인상으로 선제 대응에 나선 것이다.

그동안 온라인(비대면)으로 열렸던 총재 간담회도 2020년 코로나 확산 이후 2년 4개월 만에 대면 방식으로 전환됐다. 키 190㎝ 장신의 이 총재는 이날 간담회장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았다. 한은 안팎에서는 취재진과 같은 눈 높이에서 소통을 하겠다는 이 총재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장신인 이 총재가 일어서서 간담회를 하게 되면 취재진이 고개를 올려 들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배려했다는 얘기다.

한국은행 총재가 앉아서 금통위 간담회를 진행한 것은 이성태 전 총재(임기 2006~2010년) 이후 약 12년 만이다. 김중수 전 총재(2010~2014년)와 이주열 총재(2014~2022년)는 서서 간담회를 진행했다.

다만, 일부 시장 전문가들은 이 총재의 직설적인 화법이 시간이 지나면서 보다 정제된 표현으로 바뀔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총재도 이달 중순 “우리나라도 기준금리를 0.5%포인트(p) 인상하는 ‘빅스텝’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언급한 이후 채권시장이 요동친 점을 의식한 듯 본인의 소통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제가 말이 많고 빠르고, 워낙 직접적으로 말하는 스타일”이라며 “시장이 (제 스타일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고, (한국은행 총재가 말하는) 패턴이 과거와 다르다면 ‘이거 뭔가 하는 것 아냐?’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직접적인 말과 원론적인 말 각자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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