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음파로 차 상태 확인.. 작년에 1만대 팔린 벤츠 '인증 중고차'

내년부터 현대차·기아도 인증 중고차 사업 시작

지난 20일 서울 성동구에 있는 교학모터스 서비스 센터 수리 설비(워크베이)에 하얀색 메르세데스-벤츠 ‘E300′이 보닛을 올린 채 점검을 받고 있었다. 교학모터스가 얼마전 개인 소비자로부터 매입한 무사고 중고차다. 임지훈 엔지니어는 차에 진단기를 연결하고 내부 전자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엔진과 브레이크 성능은 문제가 없는지 하나하나 체크한 뒤 차를 높이 올려 하부 상태도 점검했다.

차량 내외부 상태와 기능을 확인하기 위해 점검해야 하는 항목은 총 198개. 차체 구조와 도장 상태, 엔진 배기 제어 시스템, 휠과 타이어, 엔진·변속기 성능, 앞뒤 차축 브레이크, 진동 및 소음, 전기차인 경우 배터리 보증 기간 안내 여부 점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임지훈 엔지니어는 “벤츠의 공식 서비스 센터에 기록된 정비 이력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초음파 검사로 내부 알루미늄 패널과 도료 사이 거리를 측정해 사설 업체에서 정비를 받았는지 여부도 가려 차에 대한 모든 정보를 파악한다”고 설명했다. 일부 차량 소유자는 사고 뒤 사설 업체에서 정비를 받고 정비 이력이 안 남는다는 점을 악용해 사고가 없는 것처럼 속여 중고차 시장에 내놓기도 한다.

교학모터스 서비스 센터의 인증 중고차 전용 워크베이 모습./연선옥 기자

종합 점검이 끝나면 파손되거나 노후화된 부품을 교체, 수리한 뒤 판매 가격을 책정해 전시장으로 옮겨놓는다. 이곳 인증중고차 전시장에 들어오는 차량은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MBK)가 공식 수입한 차량 중 구매 후 6년 이내 또는 주행거리 15만㎞ 이내 무사고 차량이다. 지난 2011년 MBK가 ‘메르세데스-벤츠 인증 중고차’ 브랜드를 국내에 공식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4만대 이상이 전국 인증 중고차 전시장을 통해 판매됐다. 코로나 사태와 반도체 공급난 영향으로 중고차 수요가 늘어나면서 지난해에는 약 1만대의 벤츠 인증 중고차가 판매됐다.

벤츠의 인증 중고차 사업은 MBK가 아니라 딜러사가 추진하는 사업이다. MBK는 수익과 직접 연관이 없지만, 이 사업 관리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대표적인 ‘레몬마켓’(불량 시장)으로 여겨지는 중고차 시장에 맡겨두지 않고, 직접 품질을 인증해 중고차를 판매하면서 소비자 신뢰가 높아졌고 모델의 감가가 줄어드는 등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던 차를 인증 중고차로 되팔고 다시 벤츠 신차를 구매하는 판매 선순환이 이뤄지고, 신차보다 가격이 낮은 인증 중고차가 고급 브랜드 벤츠의 구매 문턱을 낮추기도 한다.

MBK는 인증 중고차 사업을 확대하는 동시에 전기차 판매가 늘어나는 상황을 감안해 지난 2019년, 인증 중고차 점검 항목을 기존 178개에서 198개로 개편했다. 인증 중고 네트워크도 지속적으로 확대하면서 5월 기준 전국에 23개 인증 중고차 전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교학모터스 서비스 센터의 인증 중고차 전용 워크베이 모습./연선옥 기자

벤츠를 포함한 수입 브랜드 대부분은 인증 중고차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많은 브랜드가 관련 사업을 강화하면서 시장도 확대되고 있다. 반면 현대차·기아를 포함한 국내 브랜드는 그동안 중고차 판매업이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됐던 탓에 관련 사업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최근 규제가 풀리면서 국내 완성차 업체도 중고차 사업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중고차 업계가 정부에 사업조정 심의를 신청하면서 실제로 국내 완성차 업체가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시점은 내년 5월로 연기됐지만 현대차(005380)와 기아(000270)는 5년, 10만㎞ 이내 자사 브랜드 차량을 매입해 200여 개 항목의 품질 검사를 통과한 차만 인증해 온라인으로 판매하겠다며 중고차 시장 진출을 공식화했다. 현대차는 정밀 진단, 정비를 전담할 인증중고차 전용 하이테크센터도 구축하겠다고 했다.

현대차그룹을 필두로 내년 국내 브랜드의 인증 중고차 사업이 시작되면 중고차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찌감치 사업을 시작한 수입 브랜드들은 단기간 중고차 시장을 크게 키웠다”며 “국내 완성차 판매의 70~80%를 차지하는 현대차그룹이 내년부터 사업을 시작하면 거래가 급증하면서 인력 수요도 늘어나 관련 산업이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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