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年 6번 가격 올린 샤넬 "고객도 이젠 등 돌립니다"

홍다영 기자 2022. 5. 29.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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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클래식 미디엄 블랙은 오픈런(백화점 문을 열자마자 달려가는 현상)해도 구하기 어려운 가방이지만 지난 25일은 아니었다.

서울 강남 백화점에는 오후까지 샤넬 클래식 미디엄 재고가 남아있었다. 직원은 고객에게 “수량이 남았으니 카카오톡 대기 호출 메시지가 오면 10분 내 신분증을 들고 입장하면 된다”고 했다.

샤넬 클래식 미디엄은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선호하는 제품이다. 웃돈을 붙이고 중고로 팔 수 있어 리셀(되팔기) 업자가 쓸어담는다. 일반 고객은 기다려도 매장에 재고가 없어 구매하기 쉽지 않았는데 평소와 다르게 손에 쥘 수 있는 것이었다.

명품 업계에서 월말은 물량이 많이 들어오지 않아 제품을 구하기 어려운 시기다. 월말에도 인기 제품이 남았다는 것은 그만큼 찾는 사람들이 줄었다는 의미다.

코로나로 해외 여행을 갈 수 없게 된 사람들이 명품에 몰렸지만 거리두기가 해제되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샤넬 가방이 버스나 지하철에서 흔해져 더이상 특별하지 않다”는 반응이 젊은층 사이서 나왔다.

명품은 그간 한국에서 눈치보지 않고 값을 올렸다. 시장 조사 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작년 한국의 명품 시장 규모는 141억6500만달러(18조원)로 세계 7위다.

상류층이 됐다고 착각하며 명품에 열광(파노폴리 효과)하는데 기업이 잇속을 챙기는 건 당연했다. 샤넬은 작년 4차례·올해 초 2차례 가격을 인상했다. 루이비통은 작년 5차례·올해 1차례 값을 올렸고 에르메스도 새해부터 인상을 단행했다.

샤넬을 예로 들면 클래식 미디엄 가격은 2008년 270만원에서 현재 1180만원까지 치솟았다. 14년간 수익률 337%로 코스피 수익률 41%보다 8배 이상 높다.

주식보다 높은 수익률에 고객부터 업자까지 달라붙었다. 가격이 계속 비싸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새벽부터 백화점 앞에서 간이 의자·돗자리에 앉아 수십여 명씩 대기했고 줄 서기 대행까지 등장했다.

돈이 있어도 원하는 제품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인기 제품은 소량 입고되고 재고가 바닥나기 일쑤였다. 고객은 재고가 언제 들어오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저 원하는 가방을 매장에서 운명처럼 만날 때까지 새벽마다 줄을 설 뿐이었다.

샤넬 매장에서 원하는 제품을 사지 못한 고객이 소란을 피워 경찰이 출동한 일도 있었다. 일부는 “내 돈 1000만원 주고 사는데 길바닥에서 이래야 하나” “현타(현실 자각 타임) 온다”고 했다.

기업이 제품 값을 올리는 것은 자유지만 문제는 이중적 태도다. 명품 기업은 매출은 한국에서 올리고 이익은 해외 본사로 보냈다.

샤넬코리아는 작년 매출 1조2238억원, 영업이익 2489억원인데 기부는 7억원만 했다. 해외 법인에 690억원을 배당금으로 보냈고 배당 성향(당기순이익 중 배당금 비율)은 39%였다.

루이비통코리아는 작년 매출 1조4681억원, 영업이익 3019억원을 기록했지만 기부금은 0원이었다. 해외 본사에는 1560억원(배당 성향 69%)을 보냈다.

에르메스코리아는 작년 매출 5275억원, 영업이익 1704억원으로 기부금은 4억6000만원, 해외 배당금은 960억원(배당 성향 76%)이었다.

한국에서 사회 공헌도 활발하진 않았다. 루이비통을 갖고 있는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는 코로나가 퍼지자 500만유로(67억원)어치 마스크 1000만장을 프랑스에 무상 공급했고 중국 적십자에 230만달러(29억원)를 기부한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이만큼 사회 공헌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샤넬은 취약 계층을 후원하고 에르메스는 문화·예술을 지원하지만 해외와 비교하면 한국에서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격을 계속 올려도 명품을 구매하던 소비자도 해도 너무한 태도에 하나둘씩 혀를 차기 시작했다. 소비자를 호구(虎口) 취급하는 기업의 제품을 구매할 고객은 없다. 기업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로 고객에게 다가가는 것도 결국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다.

글로벌 명품업계 대표들의 가장 큰 걱정이 한국 소비자들이 자신들에게 등을 돌릴 때라고 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전세계 명품 매출에서 한국 소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럴수록 한국 소비자에게 더 베풀어야 하는데, 오히려 자신들의 콧대를 높이기 위해 1년에 가격을 6번이나 올리는 정책을 쓰지 않았던가. 거품 빠진 명품 기업이 한국 고객에게 어떤 책임있는 태도를 보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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