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를 찾아서] 오지영 건대병원 교수 "극희귀질환 'hATTR', 약 한 알이면 정상인처럼"

김명지 기자 입력 2022. 5. 29. 06:02 수정 2022. 5. 3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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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명당 1명 발생 극희귀질환 'hATTR'
손발저림에 원인 모를 설사, 감각이상
20~50대 성인 주로 발병..관심 못 받아
심부전으로 급사하는 희귀병도 당뇨처럼 관리해야
건국대병원 신경과 오지영 교수. /김명지 기자

지난해 4월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은 고인의 유산 26조원 가운데 현금 1조원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밝혔다. 7000억원은 감염병전문병원 건립에, 3000억원은 소아암 희귀질환 어린이 환자를 위해 쓰기로 했다.

재벌가의 의료 기부 사례는 있었지만, 이 정도 규모는 처음이었다. 그로부터 1년여 만에 감염병전문병원 건립 사업은 윤곽을 드러냈다. 서울대병원은 소아암과 희귀질환 치료를 위한 인공지능(AI) 플랫폼 구축을 ㅜㄴ격화했다.

그런데 어린이 희귀질환 치료 연구 목적으로 기부를 받은 서울대병원을 부러워하는 의사가 있다. 희귀질환 중에서도 극(極)희귀질환으로 분류되는 ‘hATTR(유전성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 다빌신경증⋅에이티티알)’을 진료하는 오지영 건국대병원 신경과 교수 얘기다.

‘hATTR’은 유전자 돌연변이로 몸속 신경 세포에 비정상적으로 아밀로이드(단백질 찌꺼기)가 쌓여서 생기는 병이다. 신경에 찌꺼기가 쌓이면서 심장 등 주요 장기가 점차 기능을 잃게 된다. 대부분의 유전병은 영유아 때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 병은 20~50대에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한번 걸리면 원래 상태로 되돌릴 치료제가 없고, 환자의 기대 수명이 7~12년에 불과한 위험한 병이다. 처음에는 손발 저림, 설사 같은 작은 증상으로 시작해서 전신 마비, 심부전 등으로 급사(急死)한다. 초기 증상이 경미한데, 병의 진행 속도가 빠르다 보니 진단과 치료가 어렵다.

희귀질환 중에서도 매우 특이한 케이스지만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은 못 받았다. 성인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병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오 교수는 “‘희귀병 환자가 50세까지 살았으면 많이 산 것 아니냐’는 말도 들었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선 ‘자식이 희귀병에 걸린 부모는 발 벗고 나서지만, 부모가 희귀병에 걸린 자식은 냉정해진다’는 말도 있다.

10년 전만 해도 치료제가 없는 난치병으로 통했지만, 2012년 글로벌 제약사인 화이자가 아밀로이드 축적을 늦추는 신약(빈다켈, 성분명 타파미디스)을 개발했다.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못하지만, 증상이 악화되는 건 막을 수 있다.

오 교수는 지난 2011년 국내에서 이 질환을 처음 진단하고, 치료를 시작했다. 이화여대에서 신경과 박사까지 마친 오 교수는 현재 건대병원 임상시험센터장과, 대한신경과학회 학술이사를 맡고 있다. 오 교수를 지난 20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병원 진료실에서 만났다.

一 hATTR은 어떤 병인가.

“전신에 아밀로이드가 비정상적으로 축적되는 병이다. 아밀로이드가 신경에 쌓이면 몸에 움직임에 이상이 오고, 심장 쪽에 쌓이면 부정맥으로 급사할 수 있다. 심장 근육에 아밀로이드가 쌓이면, 심장이 부풀어 오른 것처럼 보인다. 심장 크기가 커지면 좋을 것 같지만, 움직임이 둔해져서 혈액을 잘 짜주지 못하고, 그것 때문에 사망한다.”

一 초기 증상은 어떤 것들이 있나.

“양발이 저리고, 손목터널 증후군 같은 흔한 증상이 초반에 나타난다. 일어설 때 어지러운 ‘기립형 저혈압’ 증상과 함께 잦은 설사와 같은 증상이 한꺼번에 나타난다. 몸의 어떤 부분에 아밀로이드가 쌓여서 문제를 일으키느냐에 따라 증상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딱 ‘이거’라고 의심할만한 증상은 없다. 어떤 사람은 시신경에 아밀로이드가 쌓여서 시력이 갑자기 떨어져서 찾아오기도 한다.”

一 hATTR 질환을 국내에서 처음 발견했다고 들었다.

“내가 처음은 아니다. 나도 내가 제일 처음인 줄 알았는데, 얼마 전 ‘1980년대 우리나라에도 hATTR 질환이 있었다’는 학술 보고서를 찾았다. 다만 1980년대 당시에는 국내에 유전자 검사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아서, (진단은 못 한 것으로 안다). 내가 발견한 건 2011년도였다. ”

一 그래서 어떻게 발견하게 됐나.

“말초 신경병증으로 내원한 환자였다. 이 환자가 이유없이 혼절을 하는 등 자율 신경계에 이상 증상을 보였다. 혹시나 하고 여러 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심장이 크게 부풀어 오른 것을 발견했다. 그 순간 과거에 책에서 배웠던 그 병(hATTR)이 생각났다. 한국에 이런 질환이 발견된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사를 해 보자고 했다.”

一 환자를 보자마자 hATTR이라고 의심을 했나.

“그렇진 않았다. 50대 남성 환자였는데, hATTR로 진단하기 전에도 몇 번 내원했지만, 그때는 의심을 못 했다. 환자의 증상을 보고 (그 증상이 일반적이다보니) ‘괜찮으실 거다’라고 돌려보낸 기록도 몇 차례나 있었다.”

一 10년 전이면 검사 자체도 어려웠을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상업적으로 유전자 검사를 해 주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유전자 검사에 관심 있는 연구소를 수소문한 끝에 가톨릭 대학교에 기초연구를 하는 교수님을 찾아가서 검사를 받았다. 환자는 물론 환자의 형도 유전자 변이를 확인했다.”

一 하지만 그 당시에 치료제가 있었나.

“화이자 치료제(빈다켈)가 유럽 허가를 받고, 국내에 들여올 준비를 할 때쯤이었다. (확진 판정 이후) 환자에게 미안한 마음에 치료제를 적극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약값이 연간 2억원가량이 든다고 했다. 가격 때문에 약을 시도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건국대병원 신경과 오지영 교수. /김명지 기자

一 병을 알아도 치료를 못 하는 상황이었던 건가.

“병명도 알고 치료법도 아는데, 정작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밀로이드 환자에 대한 유전자 치료제 임상시험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환자에 대한 내 논문을 보고 제약사 쪽에서 먼저 연락을 해 왔다. 그래서 앞뒤 재지 않고 (환자를 설득해) 곧바로 ‘임상에 참여하겠다’라고 답했다.”

一 그래서 그 환자가 임상에 참여했나.

“안타깝게도 치료제를 써 보지도 못하고 사망했다. 국내 임상을 준비하는 과정이 1년 정도 걸렸는데, 그사이에 돌아가셨다. 심장 쪽에 문제가 생겨서 급사했다. 이후 같은 질환을 앓는 그 환자의 형님을 모시고 임상을 시도하려고 했는데, 이분도 갑자기 돌아가셨다.”

一 그 이후에 어떻게 진행됐나.

“그렇게 연거푸 환자를 놓치고 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가 이 질환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그때부터 더 적극적으로 환자를 찾기 시작했다. 다른 병원 교수님들에게 연락해 비슷한 증상이 있는 환자는 유전자 검사를 하고, 우리 병원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했고, 그렇게 내원한 환자에게 첫 치료를 시작했다.”

一 그런데 보통 이런 유전질환은 영유아 때부터 증상이 나타나지 않나.

“그래서 이 병이 어렵다. 증상이 20~50대에 처음 나타난다. 진료한 환자 중에서 가장 어린 사람은 15세 중학생이었는데, 이 환자는 병의 진행 속도가 굉장히 빨라서 미처 손을 써보기도 전에 사망했다.”

一 그러면 어떻게 발견해서 치료해야 하나.

“가족력으로 접근해야 한다. 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으니, 한 가족은 비슷한 연령대에 증상이 나타난다. 아버지나 형제 중에 환자가 있었다면, 이상 소견이나 특별한 증상이 없더라도 정기적으로 검사를 해서 아밀로이드가 축적되지 않았는지 수시로 확인하는 식이다.”

一 희귀질환인데, 사회적으로 그렇게 큰 주목은 못 받은 것 같다.

“부모가 희귀병에 걸리면 자식은 냉정해지지만, 자식이 희귀병에 걸리면 부모는 그렇지 못하다는 말이 있다. hATTR은 성인이 다 되어서 증상이 나타난다. 남편이나 아내, 자식들이 환자를 열심히 돌보긴 하지만, 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처럼 헌신적으로 나서지는 않는다. ‘희귀병 환자가 50세까지 살았으면 많이 산 것 아니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소아 희귀질환으로 고(故) 이건희 회장의 기부금을 받은 서울대병원이 많이 부럽다.”

아밀로이드신경병증 참고 이미지

一 환자들에게 약값이 부담이 되지는 않나.

“2018년부터 조직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고, 유전자 검사에서 변이가 발견되면 건강 보험 급여를 받을 수 있다. 약값의 10% 정도만 환자가 부담하게 된다. 문제는 이런 건보 급여가 질환 초기에만 적용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정작 치료제가 필요한 환자들은 약을 써 보지도 못하고 사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一 건보 혜택 조건이 까다롭나.

“크게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혼자 힘으로 걸을 수 있어야 하고, 아픈 부위에서 조직 검사에서 아말로이드가 검출돼야 한다. 유전자 검사에서 변이가 나타나야 한다. 이 중에서 조직 검사가 문제다. 몸속 어느 부위에 아말로이드가 쌓이는지 사전에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조직 검사에서 아밀로이드가 검출되지 않아 4번씩 검사를 받는 환자도 있었다.”

一 조기에 병을 발견해서 치료에 성공한 낸 환자도 있나.

“조기 검진으로 유전자 변이 초기부터 치료제를 쓰기 시작한 환자가 있다. 보통 hATTR 환자는 진단받고 5~ 12년 안에 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환자는 진단받고, 현재까지 아무런 증상의 변화 없이 정상인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 사실 이 치료도 성공이라는 표현을 쓰기 애매하다. 약이 병이 악화되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지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고혈압이나 당뇨를 치료하는 것처럼 하루에 한 알 치료제만 먹으면 정상인처럼 살 수 있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一 아밀로이드를 표적해서 없앨 수는 없나.

“아밀로이드는 매우 질긴 섬유조각이다. (아밀로이드를 없애는) 그런 신약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

一 아밀로이드가 쌓이는 부위에 따라서 증상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병의 명칭도 달라질 수 있는 건가.

“그렇진 않다. 신경에 문제가 생겨서 발견했는데, 심장 문제로 사망하기도 한다. 신경계 이상으로 우리 병원을 찾은 환자 중에서, 상태가 악화되면서 심장에 문제가 생겨 사망하는 사람이 자꾸 나온다.”

一 심장에 문제가 생긴 환자를 위한 치료제도 따로 있나.

“같은 약(빈다켈)의 용량을 높여서 처방하는 식이다. 글로벌 임상에서 빈다켈과 같은 성분인데 주요 성분 용량을 늘린 약(빈다맥스)을 hATTR질환으로 심장 건강이 악화된 사람에게 투여했더니 증상이 개선됐다.”

一 용량을 높여서 해결된다면, 건보 적용을 받는 약을 여러 개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러려면 네 배 분량의 약을 복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약값이 네 배가 되고, 제도적으로 한 환자에게 네 배 분량의 약을 처방할 수도 없다. 의료진이 마음대로 복용량을 늘려서 처방할 수도 없다.”

hATTR질환의 발생 기전. /환우회 홈페이지

빈다켈과 빈다맥스는 같은 약이지만 주요 성분인 타파미디스의 용량이 각각 20㎎, 61㎎로 다르다. 그런데 이렇게 같은 성분이지만,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각각 다른 질환으로 허가를 받은 것았다. 그래서 심장에 문제가 생긴 환자는 빈다켈 여러 알을 처방 받을 수 없다.

여기에 빈다켈은 건보 적용을 받지만, 고용량 제품인 빈다맥스는 건보 문턱을 넘지 못했다. 빈다켈 한 알의 국내 가격은 14만원. 하루에 한 알은 건보 적용을 받아 1만 4000원 정도만 부담하면 되지만, 심장까지 hATTR이 침범한 환자는 3알을 추가로 복용해야 한다. 이 경우 하루에 드는 약값이 43만원으로 1년에 1억 5480만원을 약값으로 내야 한다.

오 교수는 국제학회에서 만난 일본 대학병원 신경과 교수와의 일화를 들려주며 “우리나라와 일본은 희귀질환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 자체가 아예 다르다”고 말했다. 두 사람 대화의 발단은 일본인 신경과 교수가 오 교수에게 hATTR 환자를 치료할 때 어려운 점을 질문하면서 시작됐다.

오 교수는 한국의 건강 보험 급여와 약가 협상 문제가 어렵다고 답하고, 한국에서는 증상이 경미한 초기 환자들만 건보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경제성 평가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일본인 교수는 “그 환자들은 치료제가 유일한 희망인데, 돈 때문에 그걸 뺏겠다는 건가”라고 답했다.

오 교수는 일본인 교수의 답변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아찔했다고 한다. 지난 23일은 희귀질환 극복의 날이었다. 2017년 희귀질환 관리법을 제정한 이후 올해로 벌써 6년이 됐다. 우리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일 지는 생명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달렸다. 오 교수는 우리에게 말한다. ‘50살까지 살았으면 많이 살았다’는 말이 앞으로는 더 들리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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