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원 한장에 당첨 꿈꾸는 복권.. 노인도 고시생도 소소한 행복 찾아

윤예원 기자 2022. 5. 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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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복권집 찾는 노인들 1000~2000원씩 구입
"2~3장 사면 마음이 든든.. 소소한 행복"
전문가들 "복권 소비 늘어나는 것은 개인·사회 불안 심리 커졌기 때문"

“천 원 한 장만 줘.”

지난 25일 오후 7시쯤, 서울 종로5가역 4번 출구 앞 50m 거리에 있는 한 복권집 안으로 노인들이 들락날락했다. 다들 차례를 기다리며 익숙한 듯 주머니에서 지갑을 주섬주섬 꺼내 구겨진 현금 한두 장을 손에 쥐었다. 가게 내부 양옆에 있는 허리와 가슴 사이 높이 탁상 앞에는 머리가 희끗한 노인들이 번호를 신중하게 찍고 있었다.

술기운이 오른 한 노인은 마스크를 쓰는 것도 잊은 채 줄을 기다리며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윽고 만 원짜리 한 장과 로또복권 두 장을 바꿔가며 번호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가게를 나섰다. 이곳은 20년 가까이 된 복권 명당 집이다.

지난 25일 서울 종로5가역 4번출구 근처 한 복권집 내부 모습./정재훤 기자

18년 단골이라는 김종수(63)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이곳을 찾아, 로또복권과 연금복권을 두세 장씩 사 간다고 했다. 용접기사로 일한다는 김씨는 “이렇게 복권을 두세 장씩 사가면 일요일까지는 마음이 든든하다. 허황된 꿈을 꾸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소한 행복”이라고 했다.

이곳을 20년째 지키고 있다는 사장 장수만(54)씨는 어르신들이 주고객층이라고 했다. 장씨는 “주변에 탑골공원이 있어, 어르신들이 하루종일 공원에 계시다가 중간에 한 번씩 들르시곤 한다. 자주 오시는 분은 대부분 얼굴을 익혀 인사도 드린다”고 했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어르신들은 한번에 만 원어치씩 복권을 사는 경우는 거의 없고, 1000원, 2000원씩 산다고 한다. 장씨는 “복권을 사면 괜스레 속이 든든하다는 분들이 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지난 26일 오후 4시반쯤.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 위치한 한 복권집은 손님이 많지 않을 시간이라 한가했다. 작년 1월부터 이곳에서 복권을 팔고 있는 사장 홍대한(38)씨는 고시생 출신이다. 8년 전까지만 해도 국가정보원에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갑작스레 찾아온 뇌졸중에, 지난 6년 동안 재활치료를 받으며 PC방을 운영했고, 이후 복권집을 열었다.

홍씨는 “주민들도 많이 오지만, 고시생들도 찾아온다. 보통 저녁을 먹고 나서 저녁 7시나 8시 사이에 한 번씩 들른다. 한 번 올 때마다 많이는 안 사고, 1000·2000원어치씩만 사가더라”고 했다. 그는 “어떤 손님은 경찰공무원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3등에 당첨됐다고 자랑하러 왔더라”고 말했다.

이날 이곳을 찾은 문모(24)씨는 노무사 시험을 준비한 지 8개월째다. 문씨는 “공부하다 지칠 때, 바람 쐬러 나왔다가 기분 전환할 겸 한두 장씩만 사 간다”며 “물론 살 때마다 당첨에 대한 기대가 하나도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로또복권의 연도별 판매액은 꾸준히 늘고 있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로또(온라인복권) 판매액은 2010년 2조4206억원에서 작년에는 처음으로 5조원을 돌파한 5조1371억원을 기록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로또복권은 당첨에 대한 기대감은 매우 크지만, 미당첨시 금전적 손실에 대한 좌절감은 별로 크지 않다”며 “이 기대감과 희망이 개인에게는 하나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여행을 가려고 미리 비행기 표를 끊어두면 그 순간부터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복권은 적은 돈이지만 구매하는 것만으로도 기대심리가 발생해 행복감을 준다”고 설명했다.

늘어나는 복권 소비를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복권은 경기가 침체할수록 소비량이 커지는 대표적인 불황형 상품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물가상승 등 악재가 겹치면서 사람들이 비교적 저렴하고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복권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임 교수는 “복권 소비가 늘어나는 것은 지금의 한국이 개인과 사회 모두 불안함을 겪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불안 심리가 커질수록 사람들은 복권, 코인 등 위험 자산에 몰리는 경향을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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