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광 철학도에서 세계적 거장으로..박찬욱의 작품세계
'올드보이'·'박쥐' 이어 세번째 칸영화제 트로피
서구적 테마와 유려한 미장센 호평..'헤어질 결심' 스타일 변화 시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28일(현지시간) 폐막한 제75회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59) 감독은 세계 영화계가 사랑하는 한국의 대표적 작가주의 감독이다.
박 감독은 열렬한 영화광으로서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작가영화·장르영화·B급영화·컬트영화 등 비상업 영화에 끊임없는 애정을 드러내며 사회적 금기를 건드리고 파격적 형식을 추구한다.
유려한 영상미는 박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그의 영화에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는 핵심 요소다. 특히 칸을 비롯한 유럽 평단은 원죄와 구원이라는 서구적 테마를 완성도 높은 미장센으로 스크린에 옮기는 그의 작업 방식에 주목해왔다.
1963년 8월 23일 서울에서 태어난 박 감독은 영화를 좋아하는 어머니의 영향 아래 성장했다. 1982년 서강대 철학과에 입학한 뒤 교내 동아리에서 영화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 이때 공부한 영화이론을 바탕으로 영화잡지 '스크린'에 아르바이트로 평론을 쓰기도 했다.
25살 때인 1988년 유영진 감독의 영화 '깜동'에 연출부 막내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1992년 직접 시나리오를 쓴 영화 '달은 해가 꾸는 꿈'으로 연출 데뷔를 했다. 가수 이승철이 주연으로 나오는 이 영화는 소수의 호평을 받았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두번째 영화 '삼인조'(1997)를 연출하기까지 5년이 걸렸다. 그 사이 그는 평론가로 활동하며 평론집 '영화보기의 은밀한 매력-비디오드롬'(1994)을 냈다.
'삼인조'는 두 남자와 한 여자가 3인조를 이뤄 강도짓을 한다는 내용이다. 김민종과 이경영·정선경이 주연을 맡았다. 박 감독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영화였으나 역시 흥행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본격적으로 대중에 이름을 알린 출세작은 2000년 개봉한 '공동경비구역 JSA'다. 이 영화는 관객 583만명을 동원해 그해 최고 흥행작이 됐다. 재미와 완성도를 모두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고,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박 감독은 흥행으로 입지가 탄탄해지자 자신의 기호를 유감없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때 나온 영화가 신하균·배두나·송강호 주연의 하드보일드 누아르 '복수는 나의 것'(2002)이다. 이 영화는 나중에 폭력과 구원이라는 주제로 엮이는 '복수 3부작'의 첫 작품이 된다. 평단 일각에서는 그의 최고 작품으로 평가했지만 흥행에서는 다시 참패했다.
박 감독은 그러나 자신의 스타일을 계속 밀고 나가 '올드보이'(2003)를 연출했다. 이 영화로 2004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아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떠올랐다. 팬들이 애정과 장난기를 담아 부르는 별칭 '깐느 박'의 시작이기도 했다.
2004년에는 한·중·일 3국 옴니버스 프로젝트인 '쓰리-몬스터'의 연출에 참여해 향후 '박쥐'를 예견하게 하는 '컷'을 만들었다. 이듬해 '올드보이'에 이어 복수 3부작을 마무리 짓는 '친절한 금자씨'로 제62회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정지훈(비)과 임수정을 내세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는 관객수 73만명으로 부진한 흥행 성적을 거뒀지만 베를린영화제에서 알프레드바우어상을 받았다.
2009년작 '박쥐'는 박 감독을 '거장'으로 자리잡게 한 영화다. 송강호와 김옥빈을 기용해 흡혈귀가 된 신부라는 파격적 이야기를 그렸다. 박 감독은 이 영화로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아 2회 수상 기록을 세웠다. 국내에서 관객 223만명을 모으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그는 '스토커'(2013)로 할리우드에도 진출했다. 배우 웬트워스 밀러가 각본을 쓰고, 니콜 키드먼 등이 주연을 맡았다. 18살 생일에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소녀에게 삼촌이 갑자기 나타나면서 일어난 일을 그린 영화다. 역시 그의 개성이 발휘된 영화였지만 흥행에는 참패했다.
박 감독은 2016년작 '아가씨'에서 특유의 영상미를 최대치에 가깝게 끌어올렸다. 사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가 원작이지만, 배경을 일제강점기 조선으로 옮기고 조선과 일본·유럽의 이질적 문화를 스크린에 혼합했다. 주인공 히데코(김민희)와 숙희(김태리)의 이야기를 통해 죄의식과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뤘다.
'아가씨'는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지만 수상에 실패했다. 이듬해 심사위원으로 칸을 다시 찾은 박 감독은 6년 만의 신작 '헤어질 결심'으로 올해 감독상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는 이 멜로 스릴러에서 폭력과 섹스 같은 시각적 자극 요소를 줄이며 작법에 다소 변화를 시도했다. 박 감독은 "어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어른스러운 영화"라고 했다.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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