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출세했다!" 이지은 '브로커'로 그린 특별한 인생 한페이지
"칸에서 만난 팬들, 몰래 카메라 아닌가 했어요"
배우 이지은이 칸 레드카펫을 밟았다. 톱클래스 가수 아이유이자 배우 이지은으로, 브라운관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올라운더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한 이지은의 스크린 데뷔 무대는 '영화인들의 꿈' 칸영화제가 됐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선택을 받은 이지은은 베이비 박스를 둘러싸고 관계를 맺게 된 이들의 예기치 못한 특별한 여정을 그린 '브로커'에서 미혼모 소영 역을 맡아 어둡고 깊이 있는 연기를 펼쳤다. '엄마 역할을 해보고 싶다' 생각할 때 받았던 러브콜. 이지은은 "뭔가 평범한 엄마는 아니라 엄마 연기를 또 해보고 싶다"고 전했다. 영화계에서는 신인이지만 글로벌 인지도는 이미 정복한 모양새. '브로커' 공식 레드카펫 현장에는 "아이유!"를 연호하는 팬들이 빼곡히 자리해 칸 관계자들은 물론, 국내 관계자들까지 깜짝 놀라게 했다. 이지은은 "녹초가 돼 호텔에 들어가 가만히 하루를 돌이켜 보는데 생각나는 한 장면은 팬 분들과 마주한 것이더라. 인생에서 잊지 못할 특별한 하루로 남을 것 같다"고 진심과 애정을 동시에 표했다.
-칸에서 뜨거운 반응을 예상했나.
"전혀. 정말 예상 못했다. 나 뿐만 아니라 스태프 분들, 회사 식구들 다 너무 놀랐다. 입국 할 때부터 공항에 팬 분들 나와 계시니까 벙 쪄서 정신이 없더라. 영상도 찍혔던데, 매니저 오빠는 '아이유 팀이에요?'라는 바보 같은 소리도 하고 그랬다.(웃음) 레드카펫 현장에서도 팬 분들이 CD를 들고 나와 계시길래 '몰래 카메라인가?' 했다. 하루에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졌는데, 녹초가 돼 호텔에 들어가서 가만히 돌이켜 보니 생각나는 건 팬 분들과 인사하고 사인한 순간이더라. 진심으로 좋았다."
-그 유명한 칸영화제에 왔다. 어떤 마음인가.
"솔직히 실감이 하나도 안 난다. 눈 떠보면 '여기 계세요, 저기 서세요'에 따라서 정신없이 뭘 하고는 있는데, 아무래도 많이 즐기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도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일어나나?' 싶은 마음이 크다. 나름 활동을 꽤 오래했는데 월드 프리미어 날은 인생에서 특별한 하루로 남을 것 같다. 얼떨떨하고 긴장도 많이 했다.(웃음)"
-완성된 영화는 칸에서 처음 봤다고.
"맞다. 근데 시작할 때부터 영화를 영화로 감상하기 보다는 '아, 시작하자마자 나 나오는데. 첫 장면부터 난데'라는 생각만 엄청 하고 있었다.(웃음) 영화를 보면서도 '이거 다음에 난데' '이 장면은 여기 붙었네?' 그걸 쫓아가느라 급했다. 다 끝나고 박수를 칠 때는 '내가 영화를 본 건가? 한국 가서 빨리 다시 봐야겠다' 싶기도 하더라. 그래도 영화를 보기 전까지 걱정을 엄청 많이 했는데, 걱정했던 것에 비해서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웃음)"
-공식 상영 후 살짝 울컥한 것 같던데.
"그게 되게 애매한 게, 감동 한 것도 맞고, 벅찬 것도 많지만 눈시울이 붉어지지는 않았다. 하하하. 내 몸이니까 내가 가장 잘 알지 않나. 눈 쪽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그래도 감격한 건 맞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외신에서는 '여우주연상으로 손색 없다'는 이야기도 하고 있다.
"기사들이 다 영어로 났을 것 아닌가. 옆에서 이야기 해주는 것을 듣고, 번역 된 내용 정도만 봤는데 당연히 기분은 좋다. 너무 좋다. 한국에서도 좋은 반응이 있었으면 좋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선택을 받았다. 부담감도 컸을테지만, 한편으로는 행운 아닌가.
"엄청난 행운이다. 그 만큼 걱정도, 긴장도, 부담도 많았던 시간이었다. 리딩 할 때가 제일 떨렸다. 마스크를 쓰고 했는데 마스크 안으로 땀이 떨어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감독님부터 선배님들까지 너무 거장들이시니까. '이 클럽에 껴 있다니, 출세했다!' 좋으면서도 '내가 여기서 허점이 되면 안 될텐데'라는 마음이 나를 가장 많이 힘들게 했다. 현장에서도 잘 즐기지 못했다. 선배님들께 이거 저거 여쭤보면서 편하게 같이 보냈으면 좋았을텐데, 대기 시간에도 긴장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말한대로 대선배들과 함께 했다. 어떤 현장으로 기억될 것 같은가.
"연기적으로도 많이 배우고 느끼고 했지만 '현장에서 송강호 선배님은 저렇게 계시는구나'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선배님과 아무 상관없는 내 장면인데도 '너 중요한 장면이잖아!' 하면서 와 주셨다. '나는 저 선배님의 연차가 됐을 때 누군가에게 저런 선배님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배)두나 선배님도 개인적으로 감동을 너무 많이 받았다. 선배이기 전에 멋진 여자다. 마음 속으로는 매일 '따봉'을 외쳤다.(웃음) 나랑 (이)주영 언니가 막내 라인이다 보니까, 아주 단적인 예로는 술을 마실 때도 '아이, 너네는 마시지 마! 내가 다 마실게!!'라고 하시더라. 진짜 진짜 멋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뭐랄까 해야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진심이다. 세 분에게 너무 감동 받았다. 강동원 선배님은 한국의 뭐라 그래야 하지? 뭔가 특이한 인물이지 않나. 하하. 20년 가까이 강동원은 다른 수식어 없는 강동원이다. 나도 연예계 생활을 10년 넘게 했지만 쉽게 볼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근데 실제로는 진짜 소탈하고, 쉴 때는 선글라스, 모자 하나 안 쓰고 보드 타고 수영하면서 인생을 즐기시더라. 무엇보다 현장에서 아이들을 진짜 잘 챙기셔서 '나도 저렇게 연차가 되면 저런 여유가 생기는 걸까' 또 생각했다. 주영 언니와 그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우리도 10년 후에는 저런 선배 되자'고 했다."
-엄마 역할을 하고 싶을 때 '브로커' 제안을 받았다고. 왜 엄마 역할이 하고 싶었나.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음 작품을 골라야 할 타이밍이었는데, '내가 지금 어떤 것을 하고 싶나' 생각 했을 때, 다른 장르보다도 엄마 역할이 하고 싶었다.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엄마 롤을 맡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며칠 후에 '브로커' 제안을 받고 신기했다."
-소영은 쉬운 캐릭터가 아니다. 복합적인 설정과 서사가 부여됐다.
"당연히 겁나는 부분이 있었다. 다른 드라마를 할 때, 이런 저런 서사도 담아내 보고, 큰 롤도 많이 맡아보고 했는데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소영이 가진 서사와 설정이 많아서 고민이 많이 됐다. 하지만 고레에다 감독님의 작품을 많이 본 한 관객으로서 감독님이 연출을 노골적으로 하시는 분도 아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고레에다 감독은 '나의 아저씨'의 지안을 보고 이지은에게 소영을 맡겼다고 했다. 어느 정도 지안과 이어지는 소영의 모습을 원했을 것 같은데.
"나도 '완전히 다른 역할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감독님이 '나의 아저씨'를 보고 제안을 하셨기 때문에 비슷한 부분 많을 것이라 예상했다. 근데 생각보다 표현법 자체가 좀 다르더라. 감독님도 '지안과 소영이 왜 결국 다른 인물인지'에 대해 촬영 전에 설명을 해 주셨고, 나 역시 촬영을 하면서 실질적으로 느꼈다. 일단 지안이는 참을 때까지 참고 표현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영이는 단 한 순간도 참지 못하고 뭐든 말한다. 훨씬 표현이 많은 캐릭터다. 1차원적으로 너무 달라서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안일한 생각을 갖고 들어 갔다가 촬영을 하면서 고민이 더 많아졌다."
-동수(강동원)와 소영의 묘한 감정선은 어떻게 이해했나.
"서로가 서로에게 서로의 상황을 투영해서 생각하니까. 나의 엄마이고, 나의 아들일 수 있는. 초반에는 부딪히다가 점점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은 아주 자연스러웠다고 생각한다."
-원했던 엄마 역할을 해보니까 어땠나.
"소영이가 매우 개성이 강한 엄마 아닌가.(웃음) 엄마 역할을 했지만 '브로커'가 끝난 다음에 '엄마 역할을 더 해보고 싶다. 또 다른 엄마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영은 단순히 '엄마'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규정 지어 질 수 없는 많은 전사가 있고 그 와중에 엄마인 것이니까. 우성의 엄마로서, 그 외 살아온 한 명의 개인이자 여성으로서 모든 모습이 개별성이 강해, 한 신을 표현 할 때도 세 가지가 다 들어가 있게 해야 해서 그 점이 어려웠다."
-고레에다 감독이 '아이유가 캐스팅 된 후 자장가 신을 추가 했다'고 밝혔다.
"그게 또 떨리더라. 하하. 리딩 자리에서도 불렀는데, 그 신이 다가올 수록 심장이 막 장난 아니더라. '사람들이 기대할텐데. 바이브레이션을 넣어야 돼?' 생각을 하다가도 그냥 깨끗하게 불렀다. 거기에선 선배님들이 막 박수를 쳐 주셨는데, 그래서인지 실제 현장에서 더 떨리더라. 최대한 무심하게, 감정 없이, 노래가 아닌 것처럼, 작게 부르려고 했다."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는 신도 어렵지 않았나.
"처음부터 느꼈다. '아, 이거 되게 중요한 신이구나' 긴장이 되지는 않았다. 다행히 현장에 많이 녹아 들었을 때 촬영할 수 있어서 캐릭터들의 마음과 상황이 온전히, 그대로 느껴졌다. 그래서 모를 땐 '아주 슬프게 해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막상 현장에서는 '슬프게 할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내 입장에서는 담담히 하는 게 맞는 것 같았고, 의외로 큰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었다."
-앞선 기자회견에서 '브로커'에 참여하면서 공부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살아가는데 있어 작게 나마 어떤 영향이 될 것 같은가.
"아이는 당연히 낳아본 적 없고, 미혼모인 적 또한 당연히 없다. 어떻게 보면 '내 삶만, 자기 삶만 딱 살고 있었구나' 생각했다. 내가 처해보지 않은 환경이라 경각심도, 관심도 많이 없었다. 베이비 박스나 아이들이 모여있는 보육원 등에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됐다. 사실 예전부터 연이 닿았던 보육원이 있는데 '보육원 아이들이 이 영화를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더라. 그래서 어려웠던 점도 있었던 것 같다."
-노래도 잘하는데 연기도 잘한다.
"하하. 아직도 못하는 건 너무 못한다. 다만 '가능성이 있겠다' 싶은 부분은 죽어라 열심히 한다. 그래서 운이 좋아 좋은 환경, 연출가 분을 만났을 땐 나도 마음을 편하게 먹고 갖고 있는 것을 발휘할 수 있는 것 같다. 진짜 못하는 건 여전히 정말 못한다. 그래서 잘하는 것을 더 잘하고 싶고, 잘하는 부분은 더 많이 보여 드리고 싶다."
칸(프랑스)=조연경 엔터뉴스팀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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