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수남은 여고생에게 솔직해지라고 일갈했다..그리고 '몸 값'을 계산한다 [씨네프레소]

박창영 2022. 5. 28.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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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전개 방향을 추측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씨네프레소-35] 영화 '몸 값'

영화를 추천받은 뒤 실제 감상하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인생의 소중한 두 시간을 내주겠다는 결심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소개할 '몸 값'(2015)은 추천을 하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큰 부담이 없는 작품이다. 미쟝센 단편영화제, 부산국제단편영화제, 대단한 단편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한 이 영화는 러닝타임이 14분에 지나지 않는다. 속는 셈 치고 영화를 한 번 본 다음 같이 얘기를 나눠보고 싶은 독자라면 기사 읽기를 잠시 멈추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왓챠에서 '몸 값'을 감상하고 오길 바란다.

`몸 값`은 가평의 모텔에서 처음 만난 남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진 제공=왓챠>
가평의 모텔에서 처음 만난 남녀

영화는 양복 차림의 중년 남성이 모텔 방에 입장하면서 시작된다. 그에게 문을 열어준 여성은 교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봤을 때, 고등학교에 다니는 것으로 추정된다. "나중에 모델 해도 되겠다", "아저씨도 멋있다"는 등 서로 칭찬을 주고받은 남녀는 곧 소파에 앉아 본론으로 들어간다. 관객은 두 사람이 성매매를 위해 만났다는 사실을 알아채게 된다.

남자는 이 떳떳하지 못한 행위를 위해 100만원을 준비해왔다. 그는 해당 금액을 전부 지급하기 위해선 여자가 성관계 경험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 확인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남자는 곧 흥정에 들어가는데, 그건 여성이 중학교 시절 담임교사에게 성폭행당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성폭행 역시 성 경험의 하나'라고 주장하는 남자는 곧 17만원밖에 지급하지 못하겠다고 입장을 바꾼다.

이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은 어떤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는다. 그 태도가 남자 주인공을 더욱 분노하게 한다.<사진 제공=왓챠>
성매수남의 일갈 "거짓말하지 마"

남자는 의심하기 시작한다. 여자가 고등학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쪽으로 생각이 뻗친 것이다. 어느 학교에 다니느냐는 남자의 질문에 여자는 "가평 고등학교"라고 대답하고, 남자는 그것이 여자의 교복에 붙은 마크에 쓰인 내용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한다. 남자는 여성이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에 분노해 "거짓말하지 말라", "사람을 갖고 논다"며 큰 소리로 꾸짖는다.

대부분의 관객은 아마 남자가 뻔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자신이 미성년자 성매수라는 비윤리적인 일을 시도한 것엔 부끄러움을 못 느끼면서, 타인의 진실되지 못함을 비난하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남자는 고교생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여성에게 7만원밖에 주지 못하겠다고 하고, 여자는 쿨한 태도로 이를 받아들인다. 기분이 좋아진 남자는 여성의 태도에 따라 '인센티브'도 줄 수 있다며 싱글벙글 웃는다.

`몸 값`(2018)의 주인공 이주영은 영화 `독전`에서 마약 제조 전문가 농아 남매 중 동생(가운데)으로 출연해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다.<사진 제공=NEW>
"당신도 고기 취급 받아 보니 어때"

영화의 중반까지 같은 구도로 두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을 담던 카메라는 남성이 샤워하러 들어간 사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옥상에는 여성처럼 교복 치마를 입은 사람이 한가득이고, 사람들은 새로운 성매수남과 만남이 잡힐 때마다 장부에 이를 기록한다. 남자가 있던 방에 여자가 돌아가니 남자는 이미 포박된 상태다. 여자는 남자의 몸을 두고 부위별로 경매를 시작하고, 그 자리엔 수많은 원매자가 참여한다.

이 영화는 14분의 상황을 한 숏으로 잡는 롱테이크로 관객의 시선을 홀린다. 하나의 숏으로 담기엔 꽤나 긴 시간임에도 리듬감 있게 연출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는 게 특징이다. 그러나 단지 테크닉뿐이었다면 이 영화가 그렇게 주목받진 못했을 것이다. 이 작품의 롱테이크는 영화가 보여주고자 했던 '뒤집어 보기'를 완벽하게 담아내기 때문에 더욱 빛을 발한다.

`몸 값`으로 연출력을 인정 받은 이충현 감독은 전종서·박신혜 주연의 `콜`(2020)로 첫 장편 상업영화를 찍었다.<사진 제공=넷플릭스>
영화 초반부에 여자 주인공의 몸은 처녀, 여고생, 성인이라는 기준으로 각각 가격이 매겨지던 흥정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여자가 옥상에 다녀온 뒤로는 똑같은 방에서 남자의 몸이 경매에 올라가 흥정의 대상이 된다. 만약 이 영화가 겨냥하는 청자가 성매수자라면 메시지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당신도 몸에 값이 매겨지는 더러운 기분을 한번 느껴보라"는 것이다. 결국 성매매는 장기매매처럼 사람을 고기 취급하고, 몸에 가격을 책정하는 행위가 아니느냐는 질문이다.

영화의 제목 역시 생각할 지점을 남긴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몸값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IT 전문가들의 연봉이 수직 상승하는 국면을 자주 맞닥뜨리며 몸값이란 단어가 '개발자 몸값'과 같이 쓰이는 걸 흔하게 본다. 그러나 이것은 어쩌면 물신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표준대국어사전에 따르면 몸값의 정의는 '팔려 온 몸의 값' '사람의 몸을 담보로 받는 돈' '사람의 가치를 돈에 빗대어 낮잡아 이르는 말' 등이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만큼, 노동에 가격이 매겨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인간이 스스로를 물건처럼 취급하는 사고가 너무 만연해 있는 것은 아닐까.

`몸 값` 포스터.<사진 제공=왓챠>
장르: 드라마
감독: 이충현
출연: 박형수, 이주영
평점: 왓챠피디아(4.1/5.0)
※2022년 5월 27일 기준
감상 가능한 곳: 왓챠
관람가: 청소년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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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프레소 지난 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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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회-"내 아들은 괴물이다, 버려야겠다"…'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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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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