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향미의 '비대칭균형미'에 관하여 [박영순의 커피 언어]

2022. 5. 28. 19:0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커피 향미가 좋은지를 평가하는 지표에 밸런스(Balance)가 있다.

커피 향미는 정점에서 모든 속성을 고르게 펼쳐 낸다.

커피 향미 비평가인 케네스 데이비즈는 "어느 한 속성이 다른 것들을 압도하지 않으면서 서로 특성을 드러내 흥미로움을 일으킬 만큼 복합미(complexity)를 지닌 것"이라고 정의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비대칭의 균형미’를 다룬 알렉산더 콜더의 모빌작품은 한없이 퍼져 나가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는 커피 향미를 은유하는 듯하다.
커피 향미가 좋은지를 평가하는 지표에 밸런스(Balance)가 있다. 향과 맛을 나타내는 속성들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고르게 드러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밸런스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커피의 향미를 머릿속에서 그려 내는 데 요긴하다.

피타고라스는 아름다움을 선의 길이가 일정한 비율을 이루는 데서 찾아냈고, 그로부터 2000여년 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비트루비안 맨’(Vitruvian Man·인체비례도)을 통해 균형이야말로 ‘미의 본질’임을 보여 줬다.

커피가 지닌 향미의 아름다움 역시 균형미로 정의할 수 있다. 여기에서 균형은 조형에서 말하는 ‘적절함’ 또는 ‘균형 잡힘’(well-proportioned)과는 다르다. 온전하게 성숙한 열매들이 품은 씨앗이 발휘하는 극한점에서 향미는 비로소 균형을 이룬다. 그러므로 커피 향미에서 균형이란 완벽함(perfection)이요, 곧 완성을 의미한다.

커피 향미는 정점에서 모든 속성을 고르게 펼쳐 낸다. 신맛이 다른 맛들을 억누르지 않고, 쓴맛도 입안의 어느 한 지점을 고독하게 만들지 않는다. 단맛도 지나쳤다가는 다른 맛들을 지루하게 만들 수 있음을 우려하듯 결코 뽐내지 않으며, 질감이나 무게감은 여러 속성을 연결하고 모아 두는 매트릭스인 양 입안을 가득 채워 준다. 아무리 여린 속성들이라도 제 모습을 드러내 결이 보이는 듯한 경지. 이런 느낌을 주는 커피에 보내는 찬사가 “델리킷(delicate)하고 엘레강스(elegance)하다”는 표현이다.

커피 향미의 균형미는 자연이 선사하는 것을 오롯이 담아내고자 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향미의 균형은 양팔 저울을 맞추듯 한쪽을 더하거나 빼는 식으로는 언제나 부족할 수밖에 없다. 빈방을 가득 채울 때 최대치의 균형을 이루는 것처럼, 한 잔의 커피가 닿을 수 있는 균형미는 이미 씨앗에서 결정된다. 생두가 한 알 한 알에 성분을 꽉 채울 때 향미의 균형은 온전하다.

와인에서 “열매의 숙성도가 균형미의 정점을 결정한다”는 말은 커피에서도 마찬가지다. 덜 익어 성분이 부족하거나 벌레 먹어 성분이 소실된 등급의 커피를 가지고 로스팅이나 브루잉으로 향미를 펼쳐 보일 수 있는 것처럼 꾸며서는 안 된다. 한 알의 생두가 펼쳐 보일 수 있는 향미의 한계치는 이미 나무에서 결정되는 까닭이다.

이를 전제로 한 뒤 밸런스는 다양하게 풀이될 수 있다. 커피 향미 비평가인 케네스 데이비즈는 “어느 한 속성이 다른 것들을 압도하지 않으면서 서로 특성을 드러내 흥미로움을 일으킬 만큼 복합미(complexity)를 지닌 것”이라고 정의했다. 스페셜티커피협회(SCA)는 “향미와 여운, 산미 등 여러 속성들이 서로 보완하고 대조를 보이면서 펼쳐지는 다양한 양상”이라고 했으며, 컵오브엑셀런스(COE)는 간략하게 “향미 속성들이 조화를 이루는 정도”라고 봤다. 균형을 이룬 커피만이 사유를 끝없이 이끌어 준다는 점에서 하나의 정의가 더 필요하다. 밸런스는 멈춰 있는 정적의 순간이 아니라 우리의 관능에 스며드는 동적인 울림(resonance)이다. 그 면모를 시각화한다면 ‘대칭의 균형미’가 아니라 끝없이 확장해 나가는 ‘비대칭의 균형미’다. 그 덕분에 커피 향미가 주는 아름다움은 한이 없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