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목록' 작가 "관심이 오지랖 되지 않길, 성소수자 편견없이 인정해야"[EN:인터뷰]

박수인 2022. 5. 2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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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박수인 기자]

한지완 작가가 '살인자의 쇼핑목록'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한지완 작가는 최근 뉴스엔과 서면으로 진행한 tvN 드라마 '살인자의 쇼핑목록'(극본 한지완/연출 이언희) 종영 인터뷰를 통해 집필 의도와 메시지 등을 밝혔다.

'살인자의 쇼핑목록'은 평범한 동네에서 발생하는 의문의 살인사건을 마트 사장, 캐셔, 지구대 순경이 영수증을 단서로 추리해나가는 슈퍼(마켓) 코믹 수사극.

앞서 SBS 드라마 '원티드', KBS 2TV 드라마 '오늘의 탐정' 등 장르물을 집필한 바 있는 한지완 작가는 "'살인자의 쇼핑목록'은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따뜻한 코미디’를 잘 구현하는 게 중요했다. 약간 삐딱한 유머와 소동들 가운데 주인공 대성(이광수)이와 아희(설현), 명숙(진희경) 뿐 아니라 다른 마트나 동네 인물들도 모두 저마다의 사연과 결점을 가졌지만 본성이 따뜻한 사람들로 그리고자 했다"고 집필 의도를 전했다.

유쾌한 장르물로 풀어낸 이유에 대해서는 "대본을 쓰다보면 인물들의 입장에 깊이 몰입할 때가 생각을 할 때가 많은데, 그러다 보니 어두운 장르물을 몰입해서 쓰다 보면 실제로 힘든 경험을 하기도 한다. 또 '살인자의 쇼핑목록'이라는 원작에서 마트 캐셔가 살인자의 쇼핑목록으로 살인자를 잡는다는 모티브만 가져온 셈인데, 대형마트나 도시를 배경으로 하면 CCTV 등으로 쉽게 잡을 수 있고, 사건이 일어나는 동네의 범위도 넓어져서 일반 추리물이나 장르물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래된 동네를 배경으로 하고 마트 물건들로 동네 사람들을 죽이는 범인을 마트 사람들이 잡는다는 이야기로 만들었더니 본격 스릴러나 미스터리보다는 장르적으로 '코지 미스터리'에 어울리는 이야기가 되었다. 이야기의 성격이 장르를 결정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8부작의 장점과 아쉬움을 터놓기도. 한지완 작가는 "8부작은 이야기를 빠르게 전개할 수 있고, 군더더기 없이 몰입감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반면 인물과 용의자가 많아서 그들에 관해 다루느라 추리하는 과정이나 개연성, 논리, 복선 등을 촘촘하게 집어넣기에는 시간이 좀 부족했다. 그래서 선택과 집중을 하느라 추리극의 재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털어놨다.

분량상 삭제된 장면도 있을까. 한 작가는 "처음부터 8부작 60분 이내의 포맷을 정해두고 쓰기 시작했기 때문에 대본상에서는 분량 때문에 삭제한 내용이 없지만 대성과 아희의 관계나 대성 엄마와 아빠의 관계, 대성의 현재 시점의 생활 등등에 대해서 애초에 쓰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쉽다. 8부작이어서 아쉬운 점보다는 마지막회는 원래 한 회 전체가 '나홀로 집에'나 '이퀄라이저'처럼 마트라는 공간 안에서 대성과 마트 사람들이 천규(범인)을 마트 물건들을 이용해 잡는 컨셉을 기획했고, 실제로 그 내용으로 여러 버전의 대본을 썼지만 세트를 비롯한 여러 상황이 허락하지 않아 대본을 수정해야 했는데 그 부분이 제일 아쉽다"고 답했다.

극 중 연쇄살인범을 잡는 과정에서 경찰 지원 요청을 하지 않거나 마트 사람들이 무방비 상태로 집에 들어가는 설정 등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일부 시청자들도 있었다. 이와 관련 한 작가는 "정식 수사 절차나 합법적인 수사를 하는 것은 이 드라마의 기본 설정상 애초에 불가능하다. ‘코지 미스터리’라는,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 동네의 사건을 수사하는 장르물의 특징상 어느 정도 허용되는 일들이기도 하다. 사실 범죄 사건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이 어떤 사건을 ‘수사’한다고 생각할 때, 무리한 일을 감행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들은 누가 범인인지 의심을 하는 것도 허술하고, 그걸 알아보는 과정에서도 살인범을 상대한다는 실감이나 확신도 적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일을 저지르는데, 그것 역시 재미의 한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성이 위험한 일을 할 때는 대체로 아희가 상황을 알고 있다. 아희는 이 드라마 속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일을 하는 경찰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개인적인 명장면으로는 대성과 아희가 범인을 찾다 옥상에서 장난감 세탁기로 소맥을 말아 마시는 장면을 꼽았다. 한 작가는 "이 작품의 대본을 쓰면서 대체 왜 대성이 범인을 잡으려고 그렇게 애쓰냐는 말을, 작품 속의 인물들도 작품 밖의 인물들도 많이 했다. 저는 그게 대성의 트라우마 때문도 아니고, 대성이 슈퍼를 지키고 싶어서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성은 첫번째 피해자 권보연과 그저 마트 캐셔와 단골 손님의 관계일 뿐이었지만, 권보연이 대성에게 장난감 세탁기로 소맥을 말아먹으면 혼자 마셔도 쓸쓸하지 않다고 말했던 그 한순간을 대성은 기억한다. 권보연이라는 사람을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아니라 ‘사람’으로 느끼기 때문에, 죽은 시체로서의 모습보다 그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기억하기 때문에 범인을 잡고 싶어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옥상에서 세탁기 소맥을 먹는 장면은 그런 대성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자 아희가 그런 대성의 마음을 찰떡같이 이해해 주는 장면이라서, 각별히 애정을 갖는 장면"이라고 답했다.

민생범죄를 다룬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한 작가는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가렛 미드는 문명의 시작을 ‘부러졌다 붙은 다리뼈’라고 말한 적 있다. 먹이사슬과 본능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다리가 부러진 사람은 쉽게 먹잇감이 되어 죽을 수 밖에 없는데, 부러졌던 다리가 회복되었다는 건, 곁에서 그를 지켜주고 돌봐준 다른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같은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사람들끼리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돌봐주며 올바른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고 밝혔다.

이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자신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나 그로 인한 행동을 ‘오지랖’ , ‘민폐’ 등으로 뭉뚱그려 표현하면서 전부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에는 맞아서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아무도 돕지 않고 몇 시간이나 지나친 사건도 있었고 장애인들의 교통 시위를 출근길 방해로 여겨 비난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이런 사회에서,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들을 보호하고 위험에 처했을 때 지켜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실제로 그렇게 돌보고 돕는 사람들로 인해 사회가 조금씩이라도 바뀐다고 생각한다. 특히 아동학대나 스토킹 같은 경우는 피해자를 구하기 위해서는 주위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고, 반면 트랜스젠더 등 성 소수자에 대해서는 주변이 편견없이 그에 대해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성과 마트 사람들을 통해 그런 모습들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사진=tvN 제공)

뉴스엔 박수인 abc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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