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해사 졸업식에서 장진호, 원산 포위, 38선 '눈길'

김태훈 2022. 5. 28.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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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州)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대운동장.

과거 미 해군 및 해병대가 용감하게 싸웠던 전적지 및 전투 이름을 관중석에 큼직하게 새겨놓았는데 '장진호', '원산 포위', '38선' 등 6·25전쟁 당시의 것들도 있다.

중공군의 개입, 그리고 유엔군의 후퇴로 전선이 다시 38선 부근에 고착돼 있던 1951년 2월 미 해군·해병대는 원산 앞바다의 섬들을 점령하고 그때부터 이곳을 근거지로 원산에 함포사격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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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열린 대운동장 관중석에 격전지 이름 새겨져
6·25 당시 '피'로 맺어진 한·미 동맹의 굳건함 상징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대운동장에서 거행된 졸업식에 참석해 행사장 단상에 오른 모습. 멀리 관중석에 ‘장진호’, ‘원산 포위’, ‘38선’ 등 6·25전쟁 당시 격전지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게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 SNS 캡처
장진호(CHOSIN RESERVOIR), 원산 포위(WONSAN SIEGE), 38선(38TH PARALLEL)….

27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州)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대운동장. 4년의 사관생도 생활을 마치고 해군 및 해병대 소위로 임관하는 1000여명의 젊은이들 앞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나타났다. 이날의 주인공인 4학년 졸업생들, 그리고 관중석에 있던 1∼3학년 생도들 및 해군·해병대 기성 장병들이 일제히 미군 통수권자를 향해 거수경례를 보내는 동안 관중석에 적힌 글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과거 미 해군 및 해병대가 용감하게 싸웠던 전적지 및 전투 이름을 관중석에 큼직하게 새겨놓았는데 ‘장진호’, ‘원산 포위’, ‘38선’ 등 6·25전쟁 당시의 것들도 있다.

장진호는 함경남도 개마고원 남쪽에 있다. 근처에 수력발전소를 지으며 생긴 인공호수이다 보니 미국인들은 호수 대신 저수지(reservoir)라고 부른다. 6·25전쟁 발발 첫해인 1950년 11∼12월 이곳에서 미 해병대가 중공군과 영하 20∼30도의 혹한 속에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장진 대신 ‘초신’으로 불리는 건 당시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이 일본어로 된 한반도 지도를 들고 싸웠기 때문이다. 한자 장진(長津)을 일본식으로 읽은 발음이 바로 초신이다.

장진호 전투에서 미 해병대는 엄청난 희생을 치렀으나 중공군의 추격을 따돌리고 동해안 쪽으로 ‘질서있는 퇴각’을 할 수 있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막힌 미군 등 유엔군은 더 이상의 북진을 포기한 채 남쪽으로 이동하기 위한 흥남철수작전에 돌입한다.

미국 버지니아주 콴티코 국립해병대박물관에 있는 장진호 전투 기념비. ‘장진’(JANGJIN) 뒤에 괄호 하고 ‘초신’(CHOSIN)을 병기한 점이 눈에 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원산은 함경남도 남쪽에 있으며 동해와 접한 항구도시다. 중공군의 개입, 그리고 유엔군의 후퇴로 전선이 다시 38선 부근에 고착돼 있던 1951년 2월 미 해군·해병대는 원산 앞바다의 섬들을 점령하고 그때부터 이곳을 근거지로 원산에 함포사격을 가했다. 항공모함과 섬에 건설된 임시 활주로에서 출격한 전투기가 원산과 그 일대를 공습해 북한군 보급물자 수송을 방해하기도 했다. ‘원산 포위’로 불린 이 작전은 1953년 7월 중공군과 북한군, 그리고 유엔군 간의 정전협정 체결로 휴전이 이뤄질 때까지 계속됐다. 이 작전으로 6·25전쟁 발발 당시만 해도 한반도에서 인천, 부산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대형 항구도시 원산은 완전히 잿더미가 됐다.

38선은 말 그대로 38선이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한 뒤 미국과 소련(현 러시아)이 일본 식민지이던 한국을 분할점령하며 그은 경계선이었는데 이후 미군 점령지에선 한국, 소련 점령지에선 북한 정권이 각각 출범하며 일종의 국경선처럼 되어 버렸다. 6·25전쟁 내내 38선 부근에선 미 해병대를 비롯한 유엔군과 중공군·북한군 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6·25전쟁 기간 미국은 연인원 200만명 가까운 병력이 참전했으며 3만6574명이 전사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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