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윤석열 대통령 지각논란' 보다 중요한 건 투명한 일정공개
[민언련 종편 모니터 보고서]
[미디어오늘 민주언론시민연합]
윤석열 대통령이 5월11일부터 서초동 자택에서 용산 집무실로 출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용산 집무실 출근시간이 5월11일 8시34분에서 12일 9시12분, 13일 9시55분으로 점점 늦어지자, 16일 야당에서 비판이 나왔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공동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 당 중앙선거대책위 회의에서 윤 대통령의 늦어지는 출근시간을 지적하며 “시민들은 9시까지 출근하기 위해 새벽 별을 보며 집을 나서고 지각을 면하려고 비좁은 버스와 지하철에 올라 몇 번의 환승을 거쳐 기진맥진 출근한다”고 발언한 것입니다. 강인선 대통령실 대변인은 “윤 대통령의 출퇴근을 포함한 취임 이후 동선은 온 국민이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 “대통령의 업무는 24시간 중단되지 않는다. 출퇴근 개념이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정혁진 “사장님이 너무 열심히 일해도 문제가 된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5월16일부터 17일까지 종편4사 평일 오후 시사대담프로그램 JTBC <정치부회의>, TV조선 <이것이 정치다>, 채널A <뉴스TOP10>, MBN <뉴스와이드>를 살펴본 결과, 종편4사 모두 이른바 '대통령 지각논란'을 관심 있게 다뤘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문제 발언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백운기 앵커 : 정혁진 변호사, 대통령의 출퇴근 시간 문제 삼는 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혁진 변호사 : 일단 저는요, '사장님이 너무 열심히 일해도 회사가 문제가 된다'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왜냐하면 그 최고 위에 있는 사람은 사람을 잘 쓰는 게 중요하지, 본인이 이렇게 시간 딱딱 맞춰가지고… (하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한가.) (중략)
박진영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 : 글쎄요, 우리 저기 정 변호사님 말씀이 맞는 듯하면서도 좀 그런 게, 이 개인 회사 사장이면 그래도 되는데 대통령도 공무원이거든요? 정시에 출근하는 게 맞죠.
MBN <뉴스와이드>(5월16일)에서 정혁진 변호사는 윤석열 대통령을 '회사 사장'에 비유하며 “사장님이 너무 열심히 일해도 회사가 문제가 된다”, “최고위에 있는 사람은 사람을 잘 쓰는 게 중요하지, 본인이 시간 딱딱 맞춰가지고 하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한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회사 사장이 아니라 국군통수권자입니다. 국무총리·국무위원·국회의원 등과 더불어 국가의 정무직 공무원입니다. 모든 공무원은 국가공무원법 제56조(성실 의무)를 준수해야 합니다.
대통령 6시 출근은 안 된다?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 : 자, 그러면 대통령이 나인 투 식스(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로 그럼 출퇴근을 할까요? 그러면 (오후) 6시 이후에는 일을 안 받아도 됩니까? 대통령은요. 어떤 상황이 생기면 잠자다가도 뛰어나오는 어떤 직위에 있습니다. 대통령이 매일 마치 9시, 6시 거기에만 일을 합니까? 대통령의 24시간은 그냥 다 열려 있는 시간이에요. 그래서 대통령한테 많은 경호가 붙고 많은 참모들이 있는 겁니다. (중략) 그러면 대통령이 6시에 딱 끝나면 그다음부터는 집에 가서 쉬어도 되는 겁니까? 아니잖아요. (중략) 요즘 세상에 진짜 나인 투 식스를 이야기하는 분이 있다는 게 이 시대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요즘 직장인들은요, 기본적으로 출퇴근 시간 자기가 정합니다. 중요한 건 성과예요.
채널A <뉴스TOP10>(5월16일)에서는 '대통령 지각논란' 대담 중 출연자 발언이 상황에 따라 바뀌기도 했는데요.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대통령의 24시간은 그냥 다 열려 있는 시간”, “그래서 대통령한테 많은 경호가 붙고 참모들이 있는 것”이라며 사실상 강인선 대통령실 대변인 발언과 맥을 같이 하는 발언을 내놨습니다.
김준일 뉴스톱 대표 : 일단 성과가 중요하다는 이현종 위원님의 의견에 저도 동의를 합니다. 다만 성과만큼의 태도도 사람들이 많이 본다는 거예요. (중략) 그래서 업무 지금, 특히 서초동에서 출근하는 게 한 달 정도는 최소한 해야 되잖아요. 제가 뭐 그럴 일은 없지만 제가 대통령이라면 만약에 저는 새벽 6시에 나올 것 같습니다. (중략) 제가 보기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오히려 (시민들 출근길) 교통이 막히니까 조금 늦게 나오시는 것 같아요. (중략) 그래서 아예 그냥 일찍 나와서 굉장히 좀 한 달, 두 달 정도는 그런 식으로 조금, 그런 태도를 중요시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조금 신경을 더 쓰시는 게 좋지 않을까. (중략)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 : 대통령이 6시에 나오면요. 청와대 직원들은 몇 시에 나와야 되는지 아십니까? 4시, 3시에 나와야 돼요. 그건 또 어떻게 할 겁니까? 그러니까 대통령의 출근시간만 따질 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대통령실이 제대로 굴러가는 문제를 따져야지, 대통령이 출근 6시에 하시면 그러면 참모들은 새벽 3시, 4시에 나와서 준비를 해야 돼요. 그게 대통령이 그러면 9시에 퇴근하면 직원들은 더 늦게 퇴근해야 합니다. 그럼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고요? (중략)
김준일 뉴스톱 대표는 “성과만큼 태도도 사람들이 많이 본다”고 말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시민들 출근길 교통혼잡을 우려해 늦게 출근하는 것 같은데, 외교부 공관이 대통령 관저로 수리되기 전까지 자택에서 아예 일찍 나오는 건 어떠냐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앞서 “대통령의 24시간은 그냥 다 열려 있는 시간”, “그래서 대통령한테 많은 경호가 붙고 참모들이 있는 것”이라고 발언한 이현종 논설위원은 김준일 대표 발언을 반박하면서 말을 바꿨습니다. 대통령 출근시간에 따른 다른 직원들의 출근시간을 걱정하며 “대통령의 출근시간만 따질 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대통령실이 제대로 굴러가는 문제를 따져야” 한다고 주장한 겁니다.
요즘은 출퇴근 시간 자기가 정한다?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맨 처음 “대통령의 24시간은 그냥 다 열려 있는 시간”이라며 대통령 지각논란을 반박하더니, 출근시간을 앞당기는 게 좋겠다는 제안에 “대통령의 출근시간만 따질 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대통령실이 제대로 굴러가는 문제를 따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요. 급기야 대통령이 집에 있어도 재택근무를 한다며 출근시간을 문제 삼는 것이 구시대적이라는 주장을 내놨습니다.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 : (다른 출연자들이 자꾸) '국민들의 걱정', '걱정' 하시는데, 대통령이 집에 있으면 뭐, 노십니까? 대통령이 요즘 집에서 재택근무도 하고 모든 시스템이 다 갖춰져 있습니다. 근데 꼭 자리에 나와야 일하는 것처럼, (제시간에 출근해야 한다는) 그 생각 자체가 옛날 생각 아닌가요? 요즘 저 회사원들한테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면요, 웃습니다.
“대통령이 요즘 집에서 재택근무도 하고 모든 시스템이 다 갖춰져” 있고, “꼭 자리에 나와야 일하는 것”이 아니며 “(제시간에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옛날 생각”이라고 한 것입니다.
유연근무제 활용 근로자 16.8% 불과
이현종 논설위원은 '대통령 지각논란'을 문제 삼는 시각을 반박하는 내내 “요즘 세상에 진짜 나인 투 식스를 이야기하는 분이 있다는 게 이 시대에 맞지도 않다”, “요즘 직장인들 기본적으로 출퇴근 시간 자기가 정한다”, “제시간에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옛날 생각 아닌가”라고 주장했는데요. 이현종 논설위원 주장처럼 '나인 투 식스'는 정말 시대에 맞지 않는 걸까요?
통계청은 매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를 실시해 같은 해 10월 말경 결과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 조사결과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합친 임금근로자 중 유연근무제를 활용하는 근로자 비율도 나와 있는데요. 유연근무제란 근로자와 사용자가 근로시간이나 근로장소 등을 선택조정하여 일과 생활을 조화롭게 하고, 인력활용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를 말합니다. 시차출퇴근제나 재택근무제 등이 해당됩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임금근로자 중 유연근무제 활용 근로자 비율을 살펴보니, 2017년부터 차츰 상승하긴 했지만 2021년 기준 16.8%로 20%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임금근로자 전체 10명 중 2명도 유연근무제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데요. 이마저도 대기업과 정규직에 한정돼 코로나19를 계기로 증가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따라서 “요즘 직장인들 기본적으로 출퇴근 시간 자기가 정한다”, “제시간에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옛날 생각 아닌가”라는 이현종 논설위원 주장이야말로 사실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통령 일정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는가
5월11일부터 13일까지 3일간 대통령의 출근시간이 점점 늦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출퇴근을 포함한 취임 이후 동선은 온 국민이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 “대통령의 업무는 24시간 중단되지 않는다”는 대통령실 반박이 온전한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데요. 대통령 동선을 온 국민이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지만, 공개된 모습은 출근길에 이어 출근길 기자와 짧은 질의응답, 언론에 공개된 공식일정, 사진으로 공개된 주말쇼핑 등이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시민들의 의문은 '대통령이 출근시간을 제대로 지키고 있느냐'보다 '대통령 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는가'일 겁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대통령 후보 시절 '전직 대통령 박근혜 씨 세월호 7시간 논란' 대책 차원에서 “대통령의 24시간을 공개해 대통령의 일과가 국민께 투명하게 보고되도록 하겠다”고 공약했고, 2017년 10월23일부터 와대 홈페이지에 대통령 일정을 1주일 단위로 사후 공개했습니다. 장소와 시간은 구체적으로 명기했지만 참석자는 회의일 경우 '비서실' 또는 '내각'으로 통칭했으며, 그 밖의 사안은 참석자나 목적이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출근시간 정치공방 소모적, 투명한 일정 공개가 중요
미국의 경우, 매일 오전 9시 백악관 대변인이 당일 대통령 일정을 언론에 배포합니다. 대통령 활동을 집계·분석하는 사이트인 팩트베이스(Factbase)에는 현재도 바이든 대통령 일정이 공개돼 있는데요. 분 단위로 식사나 보고 자리에 배석한 참모들 실명까지 공개합니다. 일정을 증명하는 영상과 사진도 공개합니다.
일본의 경우 총리 일정이 다음 날 아침신문에 공개됩니다. 분 단위로 면담자의 정확한 직책과 이름이 기재되며, 외부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 호텔과 식당 이름도 공개합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정도 공개됩니다. 다만 총리 일정은 관저에서 공개하는 게 아니라, 총리 관저 출입기자단에서 총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취재하고 기록해서 공개합니다. 미국과 일본이 대통령, 총리 일정을 상세 공개하는 것은 '국민을 대표하는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는 인식이 형성돼 있기 때문입니다.
종편 시사대담은 대통령 지각논란을 주제로 대담하며, 진행자는 “대통령의 출퇴근 시간을 문제 삼는 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출연자들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가 맞다” 둘로 갈려 소모적인 공방만 이어갔는데요. 다른 나라 사례를 살펴보고, 우리나라의 경우 대통령 일정 공개를 어떤 방식으로 해야 국민의 의문과 우려를 줄일 수 있을지 논의했다면 더 생산적 대담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 모니터 대상 : 2022년 5월16~17일 JTBC <정치부회의>, TV조선 <이것이 정치다>, 채널A <뉴스TOP10>, MBN <뉴스와이드>
※ 미디어오늘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의 '민언련 종편 모니터 보고서'를 제휴해 게재하고 있습니다. 해당 글은 미디어오늘 보도 내용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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