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태 "트로트에 얽매이고 싶진 않아..우리것 지키며 실험·도전할것"

2022. 5. 28.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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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야생마' 신승태
송가인처럼 국악 전공해 기본기 탄탄
창작판소리단체 '입과손스튜디오' 고수 활동
내달 벨기에문화원서 '판소리 레미제라블' 공개
지금까지 발표한 4곡, 장르 다 달라
음악적 확장보단 재밌는 걸 하는 스타일
정해져 있지 않는 내가 가고싶은 길 갈것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가수 신승태(35)가 탄탄한 기본기로 음악적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국악을 전공한 트로트 가수로서 파워풀함을 보여주며 ‘트로트 야생마’라는 속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그는 송가인처럼 국악을 전공해 기초가 탄탄하다. 단국대학교 국악과에서 타악기를 전공했다. 국악인 송소희가 같은 과 후배다.

“타악기 등 국악을 전공하면 국립국악원 외에는 정규직 자리가 거의 없다. 진로가 녹록치 않았다.”

하지만 신승태는 가만 있지 않았다. 타악기로 연주활동을 펼쳤고, 창작 판소리 단체인 ‘입과손스튜디오’에서 고수로 활동하고 있다.

“판소리 창작 작업을 함께해 온 소리꾼과 고수가 모여 여러가지 창착 작업에 참가하고 있다. 벨기에와 프랑스 공연을 했으며 오는 6월 20일에는 벨기에 브뤼셀 문화원에서 빅토르 위고의 원작 ‘레미제라블’을 판소리로 만들어 소개한다.”

신승태는 그 이전부터 따로 노래를 배웠다. 소리꾼 이자람이 싱어, 자신이 고수로 활동한 팀이 해체된 후 입과손스튜디오를 시작했다. 그는 경기민요까지 습득하며 실력을 쌓았다.

그러다 신승태는 소리꾼 이희문, 추다혜와 장영규(베이스), 이철희(드럼), 이태원(기타)과 함께 혼성 6인조인 씽씽에 들어가 홍대앞에서 무대에 섰다.

“민요 록밴드 ‘씽씽’은 시작부터 잘됐다. 2017년 뉴욕 최고의 월드뮤직 페스티벌인 ‘글로벌페스트’와 공영 라디오 NPR의 간판 프로그램인 ‘작은 책상 콘서트’(Tiny Desk Concert)에서 춤추고 노래했더니 그 사람들이 너무 신나하더라.”

한국민요를 록음악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씽씽은 유튜브로 글로벌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씽씽이 해체되면서 신승태는 토로트 가수로 본격 나섰다. 2020년 TV CHOSUN ‘내일은 미스터트롯’에 참가해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2020~2021년 KBS 2TV ‘트롯 전국체전’에 참가해 최종 4위에 올랐다. 그는 경연중 실력이 크게 향상되면서 매번 전문 평가단의 극찬을 받았다. 그만큼 흡수력이 빠르다는 뜻이다.

신승태는 지난해 11월 ‘낯선이’라는 팝 발라드곡을 발표했다. 감성적인 멜로디에 신승태의 힐링 보이스가 어우러지면서 코로나로 지친 대중을 위로해주었다.

“나는 트로트 가수여서 음악적으로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를 고민하지만 트로트에 얽매이고 싶지는 않다. 지금까지 발표한 4곡의 장르가 다 다르다. 음악적 확장이라기 보다는 재밌는 걸 계속 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그렇게 됐다. 나는 ‘트로트 야생마’라는 별명을 아주 좋아한다. 정해져 있지 않는, 내가 가고싶은 길을 가고싶다.”

신승태는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이 고향이다. 그 인연으로 지난해 속초시 홍보대사가 됐다. 대학생이 되면서 서울에 올라왔다. 하지만 아버지가 속초에서 사업을 하다 잘안돼 집안이 어려워진 상태였다. 그가 일찍이 공연을 하게 된 것도 돈을 벌기위해서였다.

“대학을 힘들게 다녔다. 입학을 했는데, 레슨비는커녕 등록금도 낼 형편이 못됐다. 공연과 행사를 뛰며 등록금을 벌었다. 학교를 다니기 위해 친한 무당이 있는 굿판에서도 알바를 했다. 장구 치고 노래를 받아주는 알바비가 꽤 쏠쏠했다. 이런 알바가 아니었다면 학교를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굿판에서도 너무나 많은 걸 배웠다. 인생에 도움이 됐다.”

신승태가 고생을 하면서 국악을 익혔다는 것은 내면의 깊이를 추구할 수 있는 조건이 됐다. 트로트를 부를 때도 “신승태의 목소리에는 질주하는 힘이 있으면서도 슬프고 느린, 마이너 감성도 섞여있어 잘 어울리는 경우가 많다”고 ‘트롯 전국체전’ 심사위원인 설운도가 말한 적이 있다.

신승태가 주경야독하면서 가수로 사는 동안 집안 형편도 나아졌다. 10년전 서울에 올라올 때만 해도 단칸방에서 시작했지만 부모가 서초구 반포대로에서 오픈한 물회 전문식당 ‘속초항 뱃머리’가 장사가 잘돼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그때보다 훨씬 나은 상태에서 노래하고 있다. 모든 게 감사하다. 팬 카페에도 매일 들어가 자주 뵙지 못해 죄송함과 함께 감사함의 글을 남긴다.”

신승태는 요즘도 민요를 많이 들으면서 음악적 영감을 얻고 있다. 신승태는 “방송을 해보니 무대 공연을 더 많이 하고 싶어졌다. 현대 무용가 안은미 씨의 무대를 본 적이 있는데, 결코 호화로운 무대가 아니다. 공연을 위해, 장면 하나를 위해 ‘영끌’하는 노력에 감동했다. 나도 공연할 때 이런 정신으로 하려고 한다”면서 “최근 ‘국악 교육 축소 반대’ 의견을 전달하는 행사에 참가했다. 우리 것을 지켜나가면서, 대중적 감각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트로트에 대한 새로운 실험과 도전도 하겠다”고 말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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