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해명 없이..'테라 2.0' 결국 나온다
(지디넷코리아=김윤희 기자)스테이블코인으로 유통됐던 '테라(UST)' 가격이 폭락함에 따라 원상복구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발행사 테라폼랩스가 이를 버리고 새로운 블록체인 '테라 2.0'을 구축키로 했다.
그러나 가상자산 업계는 이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여느 스테이블코인처럼 가치가 유지될 것으로 믿고 매수한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은 점에 대해선 언급을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라 측이 사용한 준비금에 대해서도 해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테라에 몰렸던 투자금 수십조원이 며칠 만에 사라지는 과정에서 준비금이 적절하게 투입됐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국내뿐 아니라 세계 당국에서 테라폼랩스에 대한 제재를 예고하고 있다. 거래소들의 경우 국내외 업체 간 대응이 엇갈린다. 국내 업체들은 테라폼랩스가 발행사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테라 2.0 코인은 상장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반면 해외 업체들의 경우 상장 지원을 예고한 곳들이 다수 나타났다.
■새 '루나' 발행…업계 지적엔 침묵
테라 측은 28일 오후 3시 '테라 2.0'를 출시한다고 밝혔다. 이는 테라 블록체인을 분기해 UST가 없는 새로운 블록체인을 구축하는 것이다. 테라 2.0이 출범되면 기존 UST 가격 유지에 쓰인 가상자산 '루나(LUNA)'는 '루나클래식(LUNC)'으로 칭해지고, 2.0에서 새로운 루나(LUNA)를 발행하게 된다.
이와 함께 새로 발행되는 LUNA 에어드랍도 진행한다. 기존 UST·LUNA 보유자가 대상이다. 테라 측은 새 LUNA를 보유함으로서 신규 테라 체인의 거버넌스에 참여하거나, 새로 출시될 디앱에 사용 또는 거래소에서 거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지난 17일 테라 2.0 출시를 제안한 것에 대해 테라 블록체인 검증인들이 참여하는 거버넌스 투표에서 65.5%의 찬성표가 나옴에 따라 결정된 사안이다.
앞서 진행된 테라 커뮤니티 투표에서 반대가 압도적이었던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는데, 거버넌스 투표의 특성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코인 보유량에 비례한 투표권을 부여하기 때문에 기존 루나를 대량 보유한 주체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기 쉬운 구조다. 루나에 거액을 투자했을수록 이를 바로 포기하기보다, 새 루나를 통한 피해액 보전을 꾀하게 되는 만큼 찬성 비중이 커진 셈이다.
이를 반대하는 투자자들은 테라폼랩스가 UST의 가치 유지 알고리즘을 부실하게 설계해 가격 폭락을 야기했다는 비판을 외면하는 행보로 보고 있다. LUNA와 연동돼 가치가 조절되는 UST 특성상, 모든 가상자산 시세가 떨어지는 하락장에선 이번과 같은 '뱅크런' 사태를 피하기 어려운 구조였다는 분석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즉 이번 사태가 예기치 못한 사고가 아닌, 잘못된 상품을 판매해 나타난 일인 만큼 투자자 보상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준비금 소진 과정에 대한 의혹도 제기된다. 지난 16일 테라 측은 UST에 대해 고정 가치를 유지하지 못하는 '디페깅'이 최초 발생한 지난 8일 전까지 약 2조 8천억원에 준하는 준비금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디페깅 이후 비트코인 약 8만개를 비롯한 준비금을 소진해 약 4천억원 정도만 남았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24일 테라폼랩스가 35억 달러 수준의 준비금 중 상당 금액을 매각하고 UST를 매입하는 데 썼다고 밝혔으나, 암호화폐 위험 관리 회사 엘립틱 분석에 따르면 테라 측이 거래소로 준비금을 옮기면서 구체적인 거래 내역이 공개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 UST 가격 방어에 사용했는지, 개인 거래소 계좌로 옮긴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테라 측이 남은 준비금을 활용해 UST 소액 투자자부터 우선해 보상하겠다고 밝혔으나 아직 구체적인 보상 계획을 밝히지 않은 점도 문제삼았다.
■"테라폼랩스, UST 폭락 대응 미흡"…국내 거래소, 2.0 지원 계획 없다
UST 폭락 이후 각국 당국은 가상자산 시장 점검 및 규제 보완을 서두르고 있다. 이번 사태가 가상자산 발행사와 거래소 등 시장 주체 전반에 대한 규제가 미비해 파급력이 커졌다는 지적에 의견을 같이 하는 분위기다.
국내 상황을 보면 국회는 테라 사태를 계기로 가상자산 업계에 대한 업권법 성격의 '디지털 자산 기본법' 논의를 서두르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해 업계 자율 대응책을 주문했다.
금융 당국은 거래소 대상 LUNA 투자 현황을 조사한 뒤 간편결제 서비스 '차이' 등 테라폼랩스와 연관성이 있는 업체들을 대상으로 현장 점검에 나섰다.
최근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재설치된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도 1호 사건으로 테라 사태를 배당받은 상황이다.
당국이 테라 사태에 대한 엄중한 대응 방침을 보이는 가운데 국내 원화마켓을 지원하는 거래소 5곳은 LUNA 상장 폐지를 결정했다. 테라 2.0 출시 이후 기존 LUNA 투자자 대상으로 실시되는 새 LUNA 에어드랍은 지원하되, 상장은 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테라 사태 관련해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규제 당국도 주시하고 있겠으나 코인 상장 여부는 각 거래소의 고유 권한"이라며 "코인 발행사의 사후 소명 및 대응 조치 측면에서 미흡했던 부분들이 있었고, 이런 것에 대해 '실패했다'는 한 마디만 한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이어 "테라 2.0은 새 코인 배분 계획만 나왔을 뿐, 구체적인 운영 방침도 확인이 안된 상태"라며 "과거 문제가 재발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에 상장은 조심스런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바이낸스, FTX, 크립토닷컴, 후오비, 비트파이넥스, 바이비트, 게이트아이오, 쿠코인, 비트루 등 글로벌 거래소는 테라 2.0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김윤희 기자(kyh@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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