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연 수돗물, 사용해도 괜찮을까 [물에 관한 알쓸신잡]
[최종수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가끔 수돗물을 틀었을 때 물이 뿌옇게 나와 놀랄 때가 있습니다. 소독약 때문은 아닌지, 수도관에서 이물질이 나온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듭니다. 이렇게 뿌연 수돗물은 사용해도 괜찮은 걸까요?
수돗물이 뿌옇게 나오는 현상은 주로 겨울철 온수를 틀었을 때 나타납니다. 온수를 틀었을 때 뿌연 물이 나오다가도 수도꼭지를 냉수로 돌리면 뿌연 색은 사라집니다.
이런 현상의 원인이 소독약이나 수도관 이물질 때문이라면 냉수도 뿌옇게 나와야 하지만 냉수는 맑게 나오는 걸 보면 그런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뿌옇게 나온 온수를 그릇에 담아 두면 잠시 후 뿌연 색은 사라집니다.
온수를 틀었을 때만 뿌연 물이 나온다면 온도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의심해 볼 수 있겠네요.
정말 온도 때문일까요? 그렇습니다. 물이 뿌옇게 되는 원인은 온도 때문이고 뿌옇게 보이는 물질은 아주 작은 공기 방울입니다.
물속에 녹아있던 공기가 공기방울을 만들면서 물이 뿌옇게 보이는 것이고 시간이 지나 공기 방울이 물 밖으로 빠져나오면 물은 다시 투명해집니다. 마치 탄산음료 뚜껑을 열면 물속에 녹아있던 이산화탄소가 작은 기포로 올라오는 것과 비슷합니다.
왜 온도가 달라지면 물속에 있던 공기가 공기 방울로 빠져나오는 걸까요?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기가 물에 녹는 과정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설탕과 같은 고체가 물에 녹는 것처럼 기체인 공기도 물에 녹습니다. 고체는 물의 온도가 높을수록 잘 녹지만 기체는 물의 온도가 낮고 압력이 높을수록 잘 녹습니다.
물에 녹아있던 공기는 온도가 높아지거나 압력이 약해지면 물속에 녹을 수 있는 양이 줄어들기 때문에 작은 공기 방울 형태로 물 밖으로 빠져나옵니다.
우리가 집에서 사용하는 온수가 보일러에서 뜨거워지면 물속에 녹아있던 공기는 작은 공기 방울이 되어 온수 파이프 안에 갇혀 있다가 수도꼭지를 통해 밖으로 나오면서 작은 공기 방울을 만듭니다.
겨울철 10℃ 정도 냉수가 60~75℃의 온수가 되면 물속에 녹을 수 있는 공기의 양은 절반 정도로 줄어듭니다. 냉수인 수돗물에 녹아있던 공기 중 절반 정도는 온수가 되면서 작은 공기 방울 형태로 빠져나오게 됩니다.
겨울철 난방이 잘되지 않으면 보일러의 공기를 빼주곤 합니다. 온수 파이프 내에 공기가 차는 것도 물이 따뜻해지면서 물속에 녹아있던 공기가 물 밖으로 빠져나와 생기는 겁니다.
물속에 기체가 녹을 수 있다는 사실은 물고기와 같은 수중생물이 살아가는데 절대적입니다. 육상에 살고 있는 동물이 산소를 필요로 하듯 물속에 살고 있는 동물도 산소를 필요로 합니다. 육상에 있는 동물은 폐로 호흡하고 물속에 사는 동물은 아가미로 호흡한다는 것만 다르지요.
물속에 사는 동물은 아가미 호흡을 하기 때문에 기체 상태의 산소를 이용하지 못하고 물속에 녹아있는 산소를 이용합니다. 이 산소를 물속에 녹아있는 산소라는 의미로 용존산소라고 표현합니다.
물속에 녹아 있는 용존산소를 필요로 하는 생물에는 물고기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미생물도 포함됩니다. 미생물은 물속에 있는 오염물질을 분해해 물을 깨끗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용존산소를 필요로 합니다.
오염물질을 분해하는데 산소가 쓰이기 때문에 오염물질이 많을수록 산소 소비 속도도 빨라집니다. 산소가 대기에서 물속으로 녹아드는 속도보다 물속에서 소비되는 속도가 빠르면 물속에는 산소가 부족해지게 되죠.
물속에 녹아 있는 산소가 부족해지면 물고기는 수면 근처로 올라와 입을 뻐끔거리게 됩니다. 수면 위로 입을 뻐끔거리는 걸 보면 물고기가 마치 사람처럼 입으로 숨을 쉬는 게 아닌가 싶지만 물고기는 아가미 호흡을 하기 때문에 입으로 숨을 쉬지는 않습니다.
다만 수면 근처는 대기에서 녹아드는 산소가 많기 때문에 물고기가 수면 근처로 몰려드는 것입니다.
물속의 용존산소는 수중생물이 살아가는데 절대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용존산소 농도를 파악하는 것은 수질의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됩니다.
물속에 녹아있는 산소는 대기 중에 있는 산소가 녹아든 것인데 맑은 물에 최대한 녹을 수 있는 산소량은 9mg/L 가량입니다. 보통 용존산소가 5mg/L 이상이면 수질환경기준 상 좋은 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속에 녹아있는 산소가 부족해지면 물고기가 숨쉬기 어려워지는 건 물론이고 미생물이 오염물질을 분해하기도 힘들어집니다. 이렇게 되면 물이 썩기 시작하면서 물속에는 어떤 생명도 살 수 없게 됩니다.
기체가 물에 녹는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체가 물에 녹지 않으면 물속에 있는 생명은 물론이고 우리와 함께 어울려 살고 있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생존을 위협받게 됩니다.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University of Utah Visiting Professor △국회물포럼 물순환위원회 위원 △환경부 자문위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자문위원 △대전광역시 물순환위원회 위원 △한국물환경학회 이사 △한국방재학회 이사
이명철 (twomc@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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