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에겐 양반이나 외세나 똑같았다
조선의 헌법이라고 할 <경국대전>은 노비의 값을 정해놓았다. 16~50살 어른 노비 1명의 값은 저화(종이돈) 4천 장이었다. 당시 좋은 말 한 마리 값과 같았다. 사람 값이 너무 싸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고려 말~조선 초엔 말 한 마리 값이 노비 한 명 값의 2~3배였다. <경국대전>에선 노비 값을 올려 말 값과 비슷하게 맞춰놓았다.
16~17세기에 조선의 노비는 전체 인구의 30%를 넘을 정도로 늘었다. 이렇게 노비가 늘어난 이유는 ‘종모법’(어머니를 따르는 법)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노비이면 아버지가 양반이나 양인(평민)이어도 자녀는 노비가 됐다. 이에 따라 양인은 줄고 노비는 늘어났다. 세금과 군역(병역), 공공노동을 제공해야 할 양인이 줄면서 정부는 더 가난해졌다. 반면 사노비가 늘면서 양반은 더 부유해졌다.
임종권 한국국제학연구원장이 지은 <역사의 변명>은 우리가 아는 조선 이후 역사가 지배계급의 관점이라고 비판한다. 예를 들어 조선의 법률상 군역을 면제받는 사람은 현직 관리나 2품 이상 전직 관리, 성균관과 4부 학당 학생 등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배계급인 양반 전체가 군역을 지지 않았다. 지배계급인 귀족과 기사만 전쟁에 나갔던 시민혁명 이전 유럽과는 정반대였다.
따라서 세금개혁인 대동법이나 병역개혁인 균역법의 시행에 양반의 반대가 극심했다. 이 정책들은 모두 토지 소유 규모에 따라 대동미나 군포를 내게 했기 때문이다. 대동법은 100년에 걸쳐 전국으로 확대됐지만, 균역법은 양반이 제외되고 지주가 소작인에게 세금을 전가함으로써 실패했다.
극단적인 양반 중심 정책은 민심 이반을 가져왔다. 지은이는 그 근거로 임진왜란 때 적잖은 민중이 왜군 편에서 싸웠다고 주장한다. 조선 3대 의적인 홍길동과 임꺽정, 장길산의 전설도 민중의 분노에서 나왔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그 절정은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었다.
농민들이 새 세상을 꿈꾸며 혁명을 일으키자 조선 정부는 외국 군대를 불러들여 막으려 했다. 외국 군대는 동학농민군을 막아냈지만, 조선 멸망을 앞당겼다. 심지어 지은이는 “한일합방이 발표됐을 때 경성 시가지는 평온했다”고 말한다. 민중의 처지에선 양반 지배나 일제 지배나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해방 뒤 분단과 6·25전쟁도 양반-민중 충돌로 본다. 양반 세력은 자본주의를, 민중은 사회주의를 선호했다. 조선 양반들이 최소한의 공익을 확보하지 않고 근대화를 거부함으로써 한반도는 망국과 식민지, 분단, 내전으로 치달았다. 지은이는 ‘친일파’는 양반한테서, ‘빨갱이’는 민중에서 나왔다고 본다. 문제의식엔 공감이 가지만, 조선 이후 역사를 양반-민중의 이분법으로만 해석하는 데는 조금 무리가 있는 듯하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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