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시장 폭락 파장 어디까지

주영재 기자 2022. 5. 2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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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 가상자산 루나와 테라USD의 폭락으로 전 세계 가상화폐 약세장이 지속되고 있는 5월 18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에 루나 차트가 띄워져 있다. 연합뉴스

한국산이 ‘케이(K)’라는 이름을 달고 승승장구하는 지금, 가상자산 시장은 반대로 가고 있다. 애플 엔지니어 출신인 권도형 최고경영자(CEO)가 설립한 블록체인 기업 ‘테라폼랩스’가 발행하는 가상자산 테라와 루나의 가치가 폭락하면서 전 세계 가상자산 시장에 충격을 주고 있다. 1코인에 1달러의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한다는 의미로 ‘스테이블 코인’이라는 수식어를 단 테라USD(테라)는 0.1달러 수준으로 90% 이상 떨어졌고, 테라와 맞물린 가상자산인 루나(LUNA)의 가격은 5월 5일 87.69달러에서 12일 0.015달러로 일주일 사이 99.99% 줄었다. 두 코인의 가격 곡선은 절벽처럼 꺾였다.

한때 가상자산(코인) 시가 총액 10위 안에 들던 루나는 한순간에 휴짓조각으로 변했다. 테라의 몰락은 가상자산 시장의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권도형 대표는 가상자산계의 ‘엘리자베스 홈즈’(실리콘밸리 최대 사기 스캔들의 주인공인 테라노스의 최고경영자)로 조롱받고 있다. 루나와 테라의 폭락은 예견된 실패였다.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 코인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모래성 불과한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

스테이블 코인은 법정화폐로 표시한 코인의 가격이 거의 변동 없이 안정된 암호화폐를 말한다. 암호화폐는 가격 변동성이 심해 투자 수익을 노리는 용도 외에는 실생활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현실의 돈과 연동돼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으면 거래의 수단으로 쓰임새가 커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 스테이블 코인이 등장했다.

이를 구현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법정화폐를 담보로 예치하는 것이다. 테더(USDT)와 유에스달러코인(USDC)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발행하고자 하는 코인과 동일한 규모의 미국 달러를 은행에 맡긴다. 10테더를 발행하면 10달러를 은행에 보관하는 식이다. 반대로 10테더를 테더사에 주면 10달러로 돌려받는다. 법정화폐 담보 스테이블 코인은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을 담보로 하는 ‘가상자산 담보 스테이블 코인’과 함께 담보물(자산) 기반 스테이블 코인에 속한다. 전자는 실제 발행량만큼의 가치를 갖는 담보를 예치해놓고 있는지 늘 검증의 대상이 된다. 후자는 전체 암호화폐 시장 변화에 따라 담보물의 가치가 변동된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가장 취약한 방식은 테라가 택한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 코인이다. 상응하는 가치의 담보물이 없이 짝이 되는 가상자산 간의 수요·공급에 따라 가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암호화폐다. 담보를 받을 필요가 없어 규모를 빠르게 키울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담보가 없는 만큼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만 운영이 가능하다.

테라는 1달러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루나와 연동해 유통량을 조절한다. 언제든지 1테라를 1달러에 해당하는 루나로 교환할 수 있고, 반대로 1달러에 해당하는 루나를 언제든지 1테라로 교환해주는 방식이다. 이 과정은 알고리즘에 따라 자동으로 이뤄지는데 차익을 추구하는 이용자들의 거래 참여가 필수적이다.

가령 테라의 가격이 1.2달러로 오르면, 이용자들은 1달러에 해당하는 루나를 1테라로 교환해 0.2달러의 차익을 얻을 수 있다. 알고리즘은 테라를 새로 발행해 시장에 풀린 루나를 구입한 후 이를 소각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자연히 테라의 유통량이 늘면서 테라의 달러표시 가격이 하락한다. 반대로 테라의 가격이 0.8달러로 떨어지면, 이용자들은 1테라를 1달러에 해당하는 루나로 교환해 0.2달러의 차익을 얻는다. 알고리즘은 테라의 가격을 다시 1달러로 올리기 위해 루나를 새로 발행한다. 발행한 루나로 시장에 풀린 테라를 구입한 후 소각하는 과정을 반복하면 테라의 유통량이 줄면서 가격이 1달러까지 오른다.

루나와 테라가 짝이 되어 가격 변동을 흡수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번엔 차익거래로 인한 이득보다 가격 하락으로 본전도 찾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테라와 루나를 대거 처분하는 ‘뱅크런’ 사태가 벌어졌다. 이른바 ‘죽음의 소용돌이’에 빠진 것이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사람들이 두 코인 중 하나는 사고 싶어야 계속 돌아가는 시스템인데 암호화폐 시장이 경직되면서 ‘루나든 테라든 다 필요 없다’는 투매가 일어나면서 가격이 영(0)으로 수렴했다”라고 설명했다.

테라폼랩스가 만든 ‘앵커 프로토콜(Anchor Protocol)’이라는 유인책도 문제였다. 사람들은 루나든 테라든 코인을 갖고 있기보다 그냥 1달러를 갖고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이용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테라를 넣어두면 20%의 이자를 주는 일종의 은행인 앵커 프로토콜을 만들었다. 투자자들이 계속 들어와 돈을 넣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구조라 ‘폰지 사기’(신규 투자자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을 제공하는 다단계 금융사기)에 해당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초기부터 있었다.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의 취약성은 이미 여러차례 제기됐다. 전례도 있었다. 지난해 6월 아이런(Iron)이라는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이 죽음의 소용돌이에 빠져 약 20억달러의 투자 손실을 입혔다. 부분적으로 담보에 기반한 아이런은 1달러에서 담보가치인 75센트까지 떨어졌다. 루나와 유사한 충격 흡수 역할을 했던 타이탄(Titan)이라는 암호화폐가 몇시간 만에 64.04달러에서 거의 0달러 수준으로 추락했다. 김 교수는 “이미 수년 전부터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이 위험하다는 연구 논문과 외신 보도가 이어졌음에도 국내에선 ‘외국에서 알아주는 천재 개발자인데 문재인 정부가 버렸다’는 식의 뉘앙스로 보도했고, 비판적 기사가 거의 없었다. 언론이 투자자를 부추긴 면이 강하다”라고 말했다.

루나의 미국달러 표시가격 변화(2021년 5월 26일~현재) . 코인마켓캡
테라의 미국달러 표시가격 변화(2021년 5월 26일~현재) . 코인마켓캡

■‘묻지마 상·폐’ 거래소는 책임 없나

김 교수는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의 위험성을 무시한 개발자의 만용도 테라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권도형 대표는 지난해 7월 영국의 경제학자 프란시스코 코폴라가 “테라가 사용하는 자기 수정 메커니즘은 당황한 투자자들이 출구를 향해 한 번에 몰려갈 때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하자 “나는 트위터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토론하지 않는다”면서 조롱조로 답했다.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의 위험성을 알고도 상장을 시킨 거래소의 책임도 거론된다. 업비트를 비롯한 일부 거래소는 루나 사태가 불거진 이후에도 거래를 정지하지 않아 막대한 수수료 수입을 챙겼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지금 가장 큰 문제는 거래소가 뚜렷한 기준 없이 깜깜이로 상장·상폐하는 정보의 비대칭 문제”라면서 “일부 거래소는 루나 사태가 불거진 후에도 거래를 이어가 수십억의 수수료를 챙겼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문제가 생기면 자기네만 알 게 아니라 정보를 고객과 공유해야 한다”면서 “주식은 공시제도를 통해서 좋은 점, 나쁜 점을 공시하도록 제도화했는데 코인은 이런 제도가 없어 정보 비대칭으로 투자자가 손해를 보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거래소가 루나 가격 폭락 이후 거래분에 대한 수수료를 투자자 구제에 써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 코빗은 루나를 유의 종목으로 지정한 지난 5월 10일 이후 발생한 수수료 수익 약 1000만원을 투자자 피해 구제를 위한 재원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투자자들을 대리한 법무법인 LKB앤파트너스는 지난 5월 19일 권도형 대표와 테라폼랩스 공동창업자이자 소셜커머스 티몬 설립자인 신현성씨, 테라폼랩스 법인을 사기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소·고발했다. 검찰은 다음날 이 사건을 최근 부활한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에 배당했다. 검찰은 특경법상 사기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 살피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기는 고의성이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천창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권 대표나 회사 관계자들은 20%의 금리 보장을 자기들이 결정한 게 아니라 알고리즘 시스템에 따른 투표로 결정된 것이라 주장할 것”이라면서 “분산형 시스템이라고 해도 권 대표를 비롯한 직원들이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어서 사실상 권 대표의 의사결정이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 교수는 권 대표가 루나를 150% 초과발행한 행위가 고의성을 증빙하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테라 2.0? 반성 없이 기회 줘선 안 돼”

불특정 다수로부터 연 20% 금리를 약정하고 코인을 예치받은 행위를 유사수신행위로 처벌할 수 있을지 여부도 관건이다. 코인을 금전이나 유가증권으로 간주할 수 있을지 여부의 문제이다. 천 교수는 “법을 좁게 해석한다면 가상자산을 주고, 가상자산을 받는 거라 금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지만 다수 대중의 돈을 받아 사기를 치는 걸 막는다는 입법 목적을 생각한다면, 합목적적 해석에 따라 충분히 금전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법적 불명확성을 해소하기 위해 유사수신행위법 제2조 2호와 4호에 있는 ‘금전을 받는 행위’라는 표현을 ‘금전 또는 그밖에 재산가치가 있는 것’으로 바꾸는 입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가상자산 시장 전반의 제도 정비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암호화폐로 자금을 조달하는 ‘암호화폐공개(ICO)’를 허용하고 코인 수익 5000만원까지 비과세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 확 풀어주려다 루나 사태가 나면서 일정 정도 규제가 세게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지난 3월 유럽의회를 통과한 가상자산규제 법안(MiCA)에 담긴 내용도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MiCA는 스테이블 코인 발행 시 백서(일종의 사업계획서) 공시와 당국 제출 의무화 등을 언급하고 있다. 황 교수는 “스테이블 코인은 적어도 1달러 가치를 발행하면 그에 해당하는 지급준비금을 가져야 한다”면서 “가상자산으로 다른 가상자산의 가치를 보전하는, 차익거래형 가상자산은 앞으로 유통시켜선 안 된다”고 말했다. 천창민 교수는 “스테이블 코인 규제의 핵심은 준비자산이라는 담보물 관리”라고 말했다. 그는 “투자자가 언제든 환급을 요청하면 환급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게 우선순위에 있는데 알고리즘형 스테이블은 담보자산 내지 준비자산이 없어서 일반 가상자산처럼 규제하자는 게 과거의 입장이었다”면서 “테라 사태가 터져서 유럽도 단순한 형태의 가상자산으로 취급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테라는 지난 5월 25일 루나와 그 기반이 된 테라 블록체인을 ‘테라 2.0’으로 부활시키겠다고 밝혔다. 기존 테라 블록체인에서 새로운 블록체인을 만드는 ‘하드포크(Hard Fork)’ 과정을 거쳐 새 코인을 발행한다는 계획이다. 이 계획은 당초 테라 리서치 포럼에서 회원들의 90%가 넘는 반대표를 받았지만, 권도형 대표는 블록체인상 거래를 확인하는 ‘검증인’만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며 다시 표결을 강행했고, 결국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원조 블록체인은 ‘테라 클래식’으로, 원조 루나 토큰은 ‘루나 클래식’으로 각각 이름이 바뀌게 된다. 기존 루나와 테라를 보유한 사람은 새 루나 토큰을 받는다.

시장의 신뢰를 잃은 테라 블록체인이 부활에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부활 여부를 떠나 권 대표의 행보가 권력의 분산을 지향하는 블록체인의 정체성에 맞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승주 교수는 “실패한 사업가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지만 전제조건이 있다.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 실패했고, 실패한 후 피해자 보상과 사과를 다 했을 때에야 기회를 줘야 한다”면서 “그게 안 된 상태라면 재기의 기회를 줘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기본적으로 블록체인 정신은 탈중앙화로 구성원의 의견을 듣고 결정한다는 것인데 지금 테라는 주총 때 지분을 많이 가진 회사가 소수 의견을 무시하듯, 지분 경쟁에서 이겼으니 내 맘대로 하겠다는 태도를 보인다”면서 “피해를 본 사람들, 생태계 구성원의 의견을 다 듣지 않으면 신뢰를 얻을 수 없고, 재기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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