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혀를 왜 내밀고 있지?"..중국, 때 아닌 '교과서 삽화' 논란
중국 초등학생 학부모들이 요즘 수학 교과서를 일일이 들춰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애가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나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시작은 한 네티즌의 문제 제기에서 비롯됐는데요. '교과서가 이상하다'는 겁니다. 무려 9년째 상당수 중국 초등학교에서 사용 중인 수학 교과서가 말이죠.
■ "교과서가 이상해" 실제 찾아보니…
첫 번째로 많은 네티즌이 지적한 건, 어린이들의 얼굴과 시선입니다. 모두 눈 간격이 멀고 시선 처리도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눈을 왜 게슴츠레 뜨고 있냐는 것이죠.
입이 비뚤어졌고 혀를 내밀고 있는 것도 문제 삼았습니다. 과연 표지나 삽화 속 어린이를 중국의 평범한 어린이로 볼 수 있냐는 지적입니다.
굳이 왜 인물들을 '이상하게' 그렸는지, 저런 '추악한' 삽화를 예술이라고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의견들도 많았습니다.
한 어린이가 입고 있는 옷도 문제가 됐는데요. 성조기를 연상시킨다는 이유에서입니다.
2013년 중국 교육부의 승인을 받아 2014년 가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이 수학 교재는, 베이징 등 대부분 지역의 초등학교 전 과정에 걸쳐 사용하고 있습니다. 따져보면 무려 교과서 12개에 '문제'로 지적된 삽화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어린이의 생김새, 표정과 시선 등이 '문제'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사실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문제 삼자고 보면 문제일 수 있지만, 하나의 그림체로 이해할 수도 있기 때문인데요.
과거 교과서에 등장했던 이목구비 뚜렷한 사람들과 비교하면 논란이 된 수학 교과서의 삽화는 확연히 다른 그림체입니다. 학부모들이 생경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성조기를 연상시킨다는 옷차림 역시, 중국인들의 애국주의에서 비롯된 '과하게 민감한 지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어른들이 예민한 것이지, 정작 교과서를 매일 보는 아이들은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봇물 터진 '삽화 논란'…이번에는 동화책까지 논란
하지만 때아닌 수학 교재 삽화로 시작된 논란은 또 다른 교과서 삽화로 보이는 그림들이 문제가 되면서 논란을 넘어 변화를 이끌기 내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생들이 교정에서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한 여학생이 고무줄을 뛰어 넘으면서 치마가 들리고 속옷이 노출된 모습입니다.
네티즌들이 찾아낸 또 다른 삽화는 더 심각합니다.
남녀 학생들이 뒤섞여 잡기 놀이를 하고 있는데, 남학생으로 보이는 학생이 한 여학생을 뒤에서 끌어안고 있습니다. 여학생은 많이 당황한 모습입니다. 한 남학생은 도망가는 여학생의 치마를 붙들고 있습니다. 이 여학생 역시 다른 학생들과 다르게 표정이 어둡습니다.
충분히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장면들입니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신체 접촉은 어린아이여도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라도 바로 잡아야 할 부분입니다.
중국 네티즌도 부적절한 삽화에 대해 비슷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는 그림뿐만 아니라 이런 교과서를 통과시킨 교육 당국을 질타하는 댓글 등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한 번 시작된 '부적절한 삽화'에 대한 지적은 급기야 10년 전 출판된 동화책으로까지 번진 상황입니다. 도마 위에 오른 건 장쑤성 봉황소년아동출판사가 출판한 <땀을 흘렸다>는 제목의 그림책입니다.
땀은 왜 나는지, 어떤 성분이 들어 있는지 등을 설명하는 그림책에 등장하는 두 남자 어린이 모습이 큰 논란을 불렀습니다. 땀에 염분이 섞여 있다는 사실을 굳이 이렇게 표현해야만 했냐는 겁니다. "누나, 정말 예쁘네요."라는 문장도 왜 필요한지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 표지·삽화 결국 다시 그린다
결국, 문제가 된 교과서와 동화책은 사라지거나 바뀔 예정입니다.
인민교육출판사는 5월 26일 '인민교육출판사의 초등학교 수학 교과서 삽화에 대한 설명문'을 발표했습니다. 출판사는 인터넷상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있다며 "관련 수학 교과서의 표지와 삽화를 다시 그리고, 그림체를 개선하며…표지와 삽화의 교육적 역할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림책 <땀을 흘렸다>를 내놓은 출판사는 어제(27일)부터 판매를 중지하기로 했습니다. 속옷 노출 등의 삽화가 들어간 교과서에 대해서는 아직 어떤 조치가 이뤄졌는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중국 교육부는 더 꼼꼼하게 책임을 묻겠다는 안을 내놓았습니다. 국가신문출판서 등 관련 부처들과 공동으로 '교재 업무 책임 추궁에 관한 지침'을 만들었습니다.
부적절한 삽화를 담은 교과서와 동화책 모두 공교롭게도 출판 당시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극소수의 사람들이 잘못을 지적했지만 '고치자!'라는 여론은 커지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교과서 삽화 논란'은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는 사이 부적절한 표현에 대한 중국 시민들의 감수성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엿볼 수 있는 사례로 남게 됐습니다.
이랑 기자 (herb@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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